Sunday, May 31, 2009

민주주의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을 29일날 끝냈다 마음이 슬프고 아프고 없어져 버린 보석이 너무나 안타가워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 해 보게 한다
한 나라는 국민이 주인이고 그나라의 땅은 국민의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된 통치자는 국민의 일꾼일 뿐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인 민주주의 개념중의 한가지 이라고 생각 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을 양심적으로 지킨 사람이라고 다들 이야기 한다
그는 국민을 주인으로 섬겼다
이에 반해 다른 대통령들은 자기가 그 나라의 왕이고 나라의 주인이다
서울 광장은 우리국민의 것이고 우리나라의 것이다 주인들이 그 광장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왕이 되어버린 국민의 종이 그것을 몽둥이로 막고 있다 얼마나 무서운 현실이고
복장 터지는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일을 보고 나니 이제야 민주주의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민주주의가 살아있고 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가
그리운지 모르겠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그러니 대통령 선거할때 자기 권리인 투표를 하지 않은것은 이것 또한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 자기자신과 자식들의 장래를 남에 손에 맡기는 것과 같다
민주주를 보호 하는 첫 발걸음은 투표를 해야한다고 생각 하게 되었다

Tuesday, May 19, 2009

진실에 갈급한 우리들




거액의 돈을 주인에게 돌려준 아르헨티나의 한 택시기사가 같은 금액의 포상을 받게 됐다. 하지만 양심 바른 그에게 상을 주기로 한 건 정부가 아니다. 선행을 포상하는 재단 같은 단체도 아니다. 감동한 아르헨티나 민간사회, 보통 사람들이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州)의 한 도시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이 기사는 지난달 20일 경 한 노부부를 태웠다. 거동이 불편했던 이 부부는 4블록(약 400m)을 택시로 이동한 후 뒷좌석에 13만 페소(약 4400만원)가 든 가방을 놓고 내렸다. 가방을 발견한 택시기사는 가방에서 이름을 발견, 전화번호부를 뒤져 노부부를 찾아냈다. 그리곤 돈을 전액 돌려주었다. 노부부는 사례금이라며 1만2000페소(약 400만원)를 건넸다. 기사는 이 돈을 받아 자동차할부금을 앞당겨냈다. 하지만 '대박'이 터진 건 그 후다. 미담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광고회사에 다니는 두 청년이 "선행을 한 바른 양심 운전기사에게 사회가 포상을 하자."면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 것. 인터넷을 통해 이 소식이 빠르게 번지면서 사이트에는 소액기부자나 현물·서비스를 무료로 선행 기사에게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이트를 개설한 지 1주일이 채 안돼 7만 페소(약 2300만원)가 모였다. 사이트 개설에 참여한 청년은 "택시기사가 돌려준 액수만큼 소액기부금을 모아 바른 양심을 격려하자는 취지로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호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사이트 개설에 힘을 보탠 또 다른 청년은 "남의 것을 발견하면 돌려주는 게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게 요즘의 현실 아니냐"면서 "기사의 정직함이 분명한 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이트에선 돈만 걷히고 있는 게 아니다. "운전을 하고 나면 피곤할 텐데 무료로 마사지를 해주겠다." , "자동차 오일을 무료로 교체해주겠다."는 제안은 물론 "피자를 무료로 제공해주겠다." , "관광지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데 무료 숙박권을 주겠다."는 사람까지 등장하고 있다. 올해 49세인 택시기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일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놀라울 뿐"이라면서 "상금을 모아준다는 것도 기쁘지만 사람들이 알아보고 격려를 해줄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 위의 기사는 감동 뉴스에서 뽑아온 이야기)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추구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면서 살고 있다 요즈음은 물질을 가지고 인간의 모든것을 거의 척도로 삼는 시대가 되었다 학력도 최고여야 한다 그 학력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를 잘 만나야 된다 돈이 많고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해 뒷바라지 잘 해주는 부모를 만나면 그것은 행운이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이 풍부하면 집이 훌륭해 진다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은 인격은 상관 없이 그 자체가 귀한 사람처럼 보인듯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물질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 기사에는 그렇게 큰 힘을 가진 돈을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젊은 두 청년이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서 그 기사에게 상을 주기로 하고 알렸더니 일주일만에 많은 사람들이 그 뜻에 동의 하여 너도 나도 보내준 돈이 2천 만원이 넘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스 스테이션 과 각종 음식점에서 그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또 호텔도 무료로 제공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진실에 목말라 하고 있다 이 정직한 기사 이야기를 전해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환해졌고 세상도 밝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진실한 마음에 다 같이 동행 하고 있다
그기사도 상금이 중요 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이 된다고 했다 그 돈의 주인도 그에게 4백만원 정도를 감사표현 했다고 한다
정직한 마음 하나가 등불이 되어 세상을 밝혀주고
조그마한 진실 하나가 세상에 작은 샘물이 되어
더러운 흙탕물을 제거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맑은 샘물에서 마시고 씻으며 기뻐한다
어렸을때와 청년 시절엔 피아노를 배울 관심이 없다가 이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나의 목표는 내가 좋아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피아노를 칠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놓고 있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면서 두뇌를 사용하고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게 됨으로 늙어서 건강에 좋다 한다 그래서 내가 피아노를 배우는 목적이 이제 두가지가 되었다
기초 단계를 지나서 조금 어려운 체르니를 시작 했고 난 시간이 없어서 매일 조금씩 친다
마음은 더욱 피아노 연습을 하고 싶지만 내가 정작 해야 할일이 있어서 늘 연습량을 다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체르니를 치면서 엄청 어려움을 느꼈다 머리로는 내가 악보를 볼수 있는데 손가락이 전혀 말을 안들어서 늘 다른 건반을 두드리게 된다 연습을 하면서 늘 그렇게 실수하면 내 마음에서 화가 몹시 나서 내스스로 내 손가락을 때릴때도 많다
한 악보를 거의 한달 연습 했다 물론 연습 못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 매일 했고 또 매일 손가락은 실수 하고 또 하고 실수 하고 또하고 이렇게 얼마나 반복을 많이 했는지 이젠 그 한 악보가 거의 외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그 악보를 연습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매일 연습 했더니 금새 나의 손가락 움직이 몹시 부드러워 졌다 그래서 내 마음에 화도 금새 날아가 버렸다
어느 봄날에 낮은 앞산 너머로 봄바람이 사뿐히 미끄러지듯 와서는 내 피부를 휘감고 간지럽히더니 다시 사뿐히 가버린 바람과 같다
이제 그 가파르던 악보 도저히 내 힘으로는 못 넘어 갈것 같은 그 봉오리를
오늘은 가벼히 넘었다 이제 힘이 돋아 난다 노력 하면 되는 것을 느낀다 연습을 계속 하면 언젠가 어느새 내가 그 산을 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무엇이든지 노력 하면 될까?
내가 시에 관심이 많아서 시를 분석해 놓은 책을 보는데 내가 시를 공부 하기 전보다 공부 하고 있는 지금이 시를 쓴다는 것이 더욱 어렵고 내갸 도달하기 힘든 높은 하늘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니 내가 노력 한다고 그 꿈이 이루어질까 ?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Sunday, May 17, 2009

나에게 있어서 지각은 처음에 명료한 일정한 목적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중에 형성되는 것입니다 나의 어느 음악적인 무우드 (기분) 가 우선 있어서 그다음에 시적 사상이 나에게 다가옵니다 -쉴러

이미지의 발생 진전 설정은 예를 들면 태양의 광선이 자연히 그에게 도달하여 - 그의 위에 빛나고 다음엔 냉정히 더구나 장려하게 기울어 가라앉아가며 그를 호화스러운 황혼 속에 혼자 남기는 현상에 흡사하다 -J 키츠

Thursday, May 14, 2009

옥토 밭

오늘 아침에 운동을 하지 못해서 저녁녁에 집을 나서서 마을길을 걸었다
시원해진 저녁 시간이라 청소년들은 나와서 모두 농구를 하고 아이들은 길가에서 서로 놀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가들은 엄마 혹은 할머니 혹은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보모에 의해 길거리에 나와서 시원한 저녁 공기를 마시고 얼굴들이 상기되어 있었다

어느 길에 들어서니 한곳에는 나뭇잎 태우는 연기가 피어나고 냄새가 향긋 했다
어떤 집앞을 지나가자니 조그마한 터밭을 잘 정리하여 풀을 다 매어내고 검으스레한 색갈과 보드러운 흙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돌맹이도 없고 잡초도 없고 이미 무엇인가를 심으려고 준비를 해놓은 터 밭이었다
나에겐 그 터밭이 너무 정겨워서 저기에 무엇을 심을것인가를 상상 하며 길을 걸었다
그 밭을 보았을 때 발밑에 느껴졌던 부드러운 촉감이 지금 마치 내 발에 닿은듯 했다 보드런 흙을 밟으며 쟁기질 하던 소를 뒤따라 가면 검으티한 흙 두렁 에 주렁 주렁 드러나던 뽀얀 감자들
핑크빛 하얀빛 살을 드러내며 주렁 주렁 달려 나오던 고구마들
그 것을 손에 쥐는 기쁨과 내 발에 밟히던 보드런 흙
그것은 내 마음에 그 수확하던 모습이 그림처럼 남아 있어서 나는 가끔 그것을 꺼내 보곤 한다
오늘도 이 밭을 보면서 벌써 내 마음은 멀리 내고향의 고구마 와 감자를 수확하던 해질녘 시간들을 바라보았다
그 수확을 하던 엄마 동네 아저씨들 황소 언니 그리고 오빠들 지금은 모두 어디에 있는지 모두가 그리운 나의 고향의 얼굴들이다

저 밭의 주인은 그 포근하고 아늑한 밭에 무엇을 심을까 생각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의 밭을 생각 해 보았다 살람들의 마음의 밭이 저렇게 무언가를 심을 준비가 이미 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들은 참 좋아 할것이다
선생님들은 저런 좋은 마음의 밭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난 오늘도 나의 마음의 밭에 시를 심어보려고 이밭을 옥토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Monday, May 11, 2009

언어에 대한 감각 훈련과 구체성

시는 언어의 예술이며 시인은 언어의 직공이다
시인은 언어를 매 만저 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자면 언어에 대한 감각적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어떤 언어가 적합하고 어떤 언어가 적합하지 뫃한가 어던 언어가 부드럽고 아름답고 어던 언어가 거칠고 투박하고 아름답지 못한가 어떤 언어가 거칠고 투박하고 아름답지 못한가 어던 언어가 감각적이고 생페가 있고 어던 언어가 관념적이며 어두운가 어떤 언어가 날렵하고 경쾌하며 어떤 언어가 둔하고 장중한가 하는것을 식별할줄 알아야 한다
언어는 음성 의미 이미지 이 세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세요소로 복합체는 실제로 천차 만별의 미요한 느낌을 준다 빛깔 음상 무늬 감촉 무게 리듬 이러한 여러가지의 미감각을 식별할줄 모른다면 언어감각에 대한 훈련이 모자란다는 증거이다
언어에는 민족의 특성이 있다
언어에는 그 민족의 역사와 생명이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그 민족의 특성 그 민족의 감정과 정신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언어가 민족의 특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민족 문화의 길이 열린다

언어에대한 감각이 없거나 둔감한 사람은 시를 쓸일차적인 자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시인의 언어감각은 그 민족의 생활 풍습 그 민족의 역사와 영혼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언어 훈련
순수한 우리말 / 토착어의 발굴 / 2) 언어가 가지는 민족의 생활 풍습 역사 사회적 배경등르 깊이 꿰뚫어 볼줄 알아야 한다
3) 언어의 지시적 / 정서적 혹은 환정적 / 묘사 혹은 상징적 /기능을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
언어의 시시적 기능은 주로 과학적 일상걱인 산문적 의미를 말하고
정서적 묘사적 혹은 상징적 기능을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
정서적 상징적은 -함축 내표

작시 기술
작시 기술을 향상 시키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을 보는것" 에서 부터" 보지 않으면 안된것을 보는 "

일본 시인 이토호 케이이치 가 말한 시의 발상 과정의 차원
1. 나무를 그대로 본다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를리고 있는가를 본다
4.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 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ㄹ본다
8.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초현실주의 시
의식의 흐름을 아무런 다시 시정함 없이
그저 써나간다

( 오늘의 시 작법 일난 책에서 뽑음)

내가 학교에서 교수님께 시을 쓸때나 읽을때의 주의점은 구체적인것을
쓰고 그리고 시를 읽음에 있어서도 먼저 구체적인 언어 그대로 먼저
감상을 시작하고 그리고 그 후에 의미와 추상적인 그 피안의 세계 까지
읽어가는것이 순서라고 했다
시를 쓸때 주의점은
추상적이고 형용적인 말을 많이 상용하지 말것을
가르쳐 주셨다

정형시

정형시 부터 써보고 그래서 정형시의 구조와 구성을 익힌 다음에 자유시를 서보는 과정을 밟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유시에도 관념시 상징시 초현실주의시 이미지즘시 (사물시) 주지시 (형이상시 ) 등이 있으므로 이런 유형의 시들을 일단 다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조 3444( 4음보)
3444 ( 4음보)
3543( 4음보)
이것은 기준이 되는 자수울이고 실제의 작품은 다소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종장의 둘째 음보만은 5음절로 되어 있어서 호릅이 길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시조 짓기에 있어서 종장 초구 3자 는 반드시 그 다음에 5자는 되오록 지키도록 되어 있다

정형시

4.4조 7.5조 8.5조 이런 자수율을 지키면서 시를 써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이경우 행수를 미리 정해 놓고 써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가령 4.4조 4행시 7.5조 10행시 8.5조 5행시 따위와 같이 또 서양시의 14행시, 곹 소네트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을 써보는 일도 형식의 훈련에는 도움이 될것이다
정형시 부터 먼저 써보고 그 다음에 자유시로 넘어가는 것이 바른 순서 인데 이러한 순서를 밟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1) 율격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율격이라는것은 음수의 제한이 있고 리듬의 제한 속에서 상상과 감정과 리듬의 조화 그것이 리듬에 미치는 영향 반대로 리듬이 사상과 감정에 미치는 영향 이 두요소의 구조적 관계를 유기적으로 터득하게 된다
2) 압축과 생략의 묘미를 터득하게 된다
3) 운율의 묘미를 체득 함으로써 비로소 그다음 단계인 자유시를 효과적으로 쓸수 있다는 점이다

( 오늘의 시작법이란 책에서 발췌)


자유시를 쓰기에 앞서 정형시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경험을 해보니 알겠다 시는 압축과 생동감 긴장이 묘미라고 하는데
정해놓은 틀에 에 내가 가진 감정과 생각과 사상을
거기에 맞추어 넣는 훈련을 하다 보면 리듬과 함축 생략들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 시를 다듬어 내는 훈련이 되는 것을 느낌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에
동의를 하고 다시 시조를 써보려고 한다
저번 학기에 시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너의 나라 전통시에 맞추어서
시를 쓰는 연습을 해보라고 숙제를 내 주어서
그 숙제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시조를 써 보았더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창작 과목에서 일본 시의 형식인 하이꾸도
숙제를 하기 위해 써 보았는데 있었다

Friday, May 8, 2009

시와 이미지

시를 짓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과 상상력이라고 한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것
직유나 은유와 같은 비유를 만들어 내는것
통합적 마술적 상상력

시란 이미지다 시란 메타퍼다
시각적 이미지의 중요성은 20 세기 부터 시작 되었다
이미지즘과 주지주의시 ; 에즈라 파운드( 1885-1972) " 수많은 작품을 쓰는것보다 일생동안 단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 하는 것이 좋다" 라고 말할만큼 시에서 이미지를 중요시 하였다

이에 반해
김소월 시는 비유 없는 이미지들이 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깅에 뿌리오리다 ( 김소월 시중에서 2 연 ) ( 오늘의 시 작법 중에서)

내가 좋아 하는 시중의 하나가 김소월의 엄마야누나야 이다
시에서 화자는 소년이고
이 소년은 이야기 중에서 엄마와 누나와의 애뜻한 정다움과 평화로움이 묻어나고 있다
아마도 이 소년의 집은 바다 혹은 강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앞뜰에는 금 처럼 반짝이는 모래가 많은 마을 에 있는 집임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 강변의 물은 아주 아주 맑아서 소년의 마음과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뒤에는 얕은 산 혹은 작은 언덕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갈대가 많으며
갈대 잎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수 있는 소년의 마음은 아주 순전하고 고운 느낌이 든다

맑은 물 갈대 소년 강변 엄마 누나 그리고 갈잎이 바람에 살랑이는 노래 소리
이모든것이 때묻지 않은 소년의 마음과
사랑과 온유함 그리고 장다움이 묻어나는 누나와 엄마라는 이미지가 한데 어울려서
맑음을 눈으로 보는듯 하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기에 이 정경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Saturday, May 2, 2009

생각의 중요성

"시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예민한 감수성 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거나 약하거나 보통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하면 그런 사람은 시와 소설을 쓸수가 없을 것이다."

"맨 처음에 붙잡은 시의 종자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를 흔히 우리는 착상 이라고 말한다
착상은 어디까지나 착상에 지나지 않다."

"착상된것 첫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여 과거에 경험
했던 여러가지 이미지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여러가지 이미지가 어떤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찾아 서로 관련을 맺고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비로소 한편의 시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오늘의 시작법" 중에서 )

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착상이 필요하고 그 착상 '시의 종자'를 찾기 위해서는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동원되어 이미지를 발견해야 한다고 한다
예민한 감수성 이라는 것은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움직일만한 그 어떤 것인데 이것은 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순간에 발견하고 느끼게 되는데 지나온 나의 시간을 보면 시의 종자를 많이 만났어도 그것을 키워내지 못했던 것이 많은듯 하다
이제는 그 시의 종자를 찾고 싶다
내 마음과 정신과 영에 파도를일으키는 씨를 보려고 하며 찾으려 하고 있다
전에는 모든 사건과 환경을 보면 그것이 내 마음과 정신과 영을 움직여서
저절로 시의 씨가 되었는데 이젠 그것이 드물다
아마도 시를 쓰기위해서는 혼자의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고 일상 생활에서
육신의 좋은것들만 찾다 보면 앞서 말한 부분이 무디어 진듯 하다 먹고 입고 마시고 등등

그리고 요즈음은 귀찮은 생각이 있다
난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을 좋아 하지 않는다 애완용이든 아니든 난 동물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민경이 에게 토끼 한마리를 사주었는데 그 토끼가 이제 많이 컸다 그래서 사료 외에 풀을 먹인다 그런데 민경이는 너무 어려서 그것을 못하니 내가 그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리속엔 항상토끼 먹이를 찾느라 풀을 찾다 보니 거의 매일 내 생각 한쪽에 토끼가 자리 하고 있다
난 이것이 너무 싫다 내가 늘 생각 하는 것은 사람들 ,사회, 사역, 세계 그리고 책과 문학 음악 이모든 것들만으로 그리고 좋은 것들로 가득히 채우고 싶은데 내 머리 한쪽에 매일 토끼 먹이를 생각 하고 있으니 이것이 나에겐 너무 귀찮은 생각이 되었고 이생각의 신경을 내 머리에서 떼어 내 버리고 싶다
우리집에서 토끼가 없어져야 내 생각속에 쓸데 없는 일을 두지 않을것 같다 조만간 이 의미없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토끼를 정리했으면 한다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것이 무엇이냐가 이렇게 큰 영향이 되는지는 이 토끼가 우리집에 있기 전까지는 몰랐다 왜냐 하면 난 쓸데없고 의미없는 일을 내 생각에 쌓아두면서 살아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의미를 두는것으로만 생각을 담고 살아 왔다 쓸데 없는 것들이 잠깐 들어와서 금방 없어지는 생각들이 있긴 했어도 이렇게 장기간 내게 의미 없는것들이
나의 뇌를 차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토끼 먹이를 준비하는 일 토끼가 배고프겠다는 생각 그래서 먹이를 줘야지 그 먹이를 찾으러 풀이 어디 있는지 알아 놓아야지 그리고 언제 그 풀을 뜯으러 가야지 하는 이런 쓸데 없는 생각들 이 내 생각에 자리 하고 있다 그리고 길을 걸어 갈때 풀섶을 보면서 하는 생각은
저 풀은 토끼가 먹을까 하는 이런 생각들이 차지 하고 있다 저 풀은 토끼가 좋아 하는데 뜯어 갈까 하는 이런 등등의 생각이다 내가 토끼를 좋아 한다면 이 일이 내게 의미가 있고 또 민경이가 토끼와 논다면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겠지만 이젠 민경이는 토끼 보지도 않는다 민경이는 아이들과 사람을 좋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일이 내게 얼마나 쓸데 없는 일인가 단지 바라기는
이 일이 쓸데 없는 일만 된다면 내가 나의 에너지가 너무 아까워서 내가 글을 쓸때
이런것들을 다른 소재에 적용하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 이고 토끼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난 이것이 너무 귀찮고 나에겐 이 일이 일말의 가치가 없다

결국 난 이것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내 생각을 항상 좋고 선한것 그리고 내게 의미 있는 것으로 채워야 겠다는 것을 알았고 내 생각에 있는 것을 가지고 내가 미래의 소망을 쫒아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꿈이 머리속에 있는 자는 성공과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을것이다
머리속에 꿈을 따라 행동하고 살기 때문이다

Tuesday, April 28, 2009

돼지 인풀루엔자가 세계각국으로 퍼져 가는가운데 걱정이 된다 지구는 일일권이 되었고 모든 물자들이 왜국에서 자국에서 수입과 수출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아침에 뉴스를 보니 더 많은 환자가 늘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숫자가 사망했다
음식에 위험이 있다면 안 먹으면 되는데 음식과는 상관 없이 공기를 통한 바이러스에서 감염 된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감염이 되니 얼마나 급한 상황인가

이런 가운데 오늘 아침 신문에서 왜 이런 질병이 생기게 되었는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결국은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난 전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많은 생산을 이끌어 내기 위해 동물을 사육 하는데에도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넣어 놓고 그들에게 자연적 먹이를 먹이지 않고 만든 사료를 먹여서 빨리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물들이 병이 걸리면 인간에게만 쓸수 있는 항생재를 동물에게도 쓴다고 한다
물론 인간에게 쓰는 항생재는 동물에겐 금지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도 상관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병을 유발 시키고 그래서 그 이상한 바이러스가 발병되는 경우라고 한다
모든 유기농작물 그리고 자연스럽게 먹기 위해서만 사육 하는것이 아니고 사람의 욕심만을 위해서 모든 자연을 다스려온 결과라고 본다

Monday, April 13, 2009

대화의 기술

한여자 아이의 경희대 합격수기중 논설 부분에서 최 우수점수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녀는 친구들이 수능을 준비 할 때 자기는 늘 논설 쓰기를 준비 했다고 했다 주로 논설과 칼럼을 읽으면서 논지르 파악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빈노트에 글을 썼다고 했다
또 시를 읽고서 그저 암송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되어서 그것을 이해 했다고 했다
어느 장르에 상관 없이 글을 많이 읽었고 또 신문을 즐겨 읽었다고 했다
그 신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자기가 글을 쓸때도 그것들을 예화로 혹은 그 신문에서 읽은 것들이 자기 안에 내재 되어서
사시금 자기의 글로서 다시 나온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글 쓰기를 좋아해서 자기가 스스로 훈련을 했고
또 또 그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독서를 장르에 상관 없이 그리고
신문을 읽었다고 했다

나도 역시 이것을 참고로 읽고 쓰려고 한다


영구에서는 7살 먹은 여자 아이가 어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주는데 인기가 대단 하다고 한다 어느날 그 여자 아이가 방송에 나왔는데 거기에서 순간 위트와 재치를 너무 잘 발휘해서 그 방송국에서 이 여자 아이를 dj 로 채용해서 지금 진행하는데 인기가 폭발 이라고 한다
이 아이의 상담의 대답의 제일 초점은 직설법으로 대답을 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한다
23 살 먹은 여자가 자기 남동생이 잘 씻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남동생에게 이야기 하세요
여자들은 냄새 나고 더러운 것을 싫어 하니 만약에 계속 씻지 않으면 여자 친구가 없을 거라고 동생에게 알려 주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모두들 그녀의 직설 화법에 놀라고 재미 있어 한다고 한다

때로는 우리 대화의 기술이 직설법이 더 재치 있고 힘이 있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면 민경이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특히 같이 놀 사람을 너무 좋아 한다
어제는 세실이 (13) 이 민경이와 함께 집에 왔는데 엄마가 한국 말로 민경이 에게 이야기 했다 언니랑 같이 놀이 동산에 놀러 갈래? 민경이는 너무 좋아 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물어 보았다 do you want playhouse ? 물론 언니는 대답을 못했다 몇번이고 물었지만 겸언쩍어서 대답을 못 했다
자기는 그냥 같이 가고 민경이 엄마가 모든 비용을 져야 하니 그래도 중학생이라 미안 함도 있는듯 했다
내가 민경이에게 이야기 했다 너의 의사를 먼저 이야기 해라
민경이가 다시 물었다
아때 I want to go playhouse with you so can you go with me?
언니가 즉시 대답 했다 yes
이런 이야기 인듯 하다 내가 상대방과 대화 할 때 나는 이러한데 너는 어쩌니? 먼저 나의 의사와 마음과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다
난 이것을 선생님 에게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나역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내가 먼저 나의 의견과 그 아이를 향했던 나의 진실을 이야기 해서 다시금 그 아이의 결정을 듣곤 했었다
어쩔땐 내가 먼저 이야기 할 필요가 없지만 이것이 상대방과 대화 하는 직설 법으로서 그 상대의 마음문을 열고 또 간사함 없이 일을 처리 하고 제자를 양육 하는 길이라고 본다

Thursday, April 9, 2009

international 행사가 fath academy 에서 열리는데 선교사님이 가르치는 사물놀이 팀이 초대를 받아 갔다 그래서 나도 같이 동행 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세워진 학교인데 지금은 많은 세월이 지나서 여러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거기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학생들의 부모는 선교사 그리고 일반 가정의 자녀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 학교는 안티폴로 가는길 vally golf 라는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가 없는 집 자녀들은 그 학교에 다니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것도 그러거니와 학비가 보통 학교에 비해 좀 비싸니 차가 없을정도로 경제력이 안되는 집의 자녀들은 당연히 그 학교에 다닐수가 없겠다 싶었다
숲속에 있기 때문에 학교주위의 공기는 신선하고 학교에서 내려다 보면 필리핀 마닐라 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 여러나라 별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필리핀 국기가 꽂아 있는 코너에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준비 하고 있음이 보였다 벽에는 예쁜 장식을 달고 아이스크림 장사도 무료로 주문 했고 판싯 케익 그리고 많은 종류의 필리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미국 음식은 어떤거나 하고 가 보았더니 파스타 종류가 많았고 과일도 있었다 많이 있는 것중에 피자 비슷한 것과 여러가지를 고기와 해물을 넣어서 만든 볶은 밥
그리고 한국은 김치 김밥 그리고 팥죽이 있었으나 제일 정성이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 주 메뉴인 불고기와 잡채 떡도 없고 더욱기 장식은 더욱이 없고 부채와 코리아 라는 글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데 너무 썰렁해서 참 맘이 좋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사물놀이 팀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스케줄 소식을 들었고 어디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지 장소를 보게 되었다 공연 시간은 식사 시간 그리고 장소는 리셉션을 차려놓은 홀에서 하기로 되어있고 무대는 없이 그냥 바닥에서 하는걸로 되어있었다
단원들은 어처구니 없는 그들의 준비에 좀 놀래고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정도의 수준인가 하고 그공연을 바닥에서 그리고 남들이 밥 먹고 즐기는 시간에 할것인가가 그들의 갈등이었고 고민 이었다
예술가의 자존심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다고 했다
지도 하는 선생님도 단원주에 한국 무용과 창을 하시는 분을 생각 하니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지만 단원들은 선생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 자기들 표현을 했다 “우리는 괜찮으니 우리 환경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맘것 우리의 문화를 가지고 즐기며 사람들에게 보여 줍시다” 하고 의견을 전달해서 선생님은 그내용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회원 중에 자녀들이 거기에서 공부를 함으로 그 회원의 소개로 초대를 받았으니 그 회원의 얼굴을 보아서 공연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금새 모든 언짢은것들을 털어 버리고 밝고 즐겁게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그러는 가운데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거기도 역시 무대가 없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스코틀렌드 falkdance 를 선보였다 그리고서 다시 오디언스중에 참가 하고자 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모두 함께 즐겼다 그 행사의 취지를 알수가 있었다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을 만끽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알고자 하는 뜻이 청중인 나에게 전달되어왔다

그리고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오디언스 중에 다른 나라 사람끼리 짝을 지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짝을 찾아서 앞으로 나갔다 난 즐겁긴 하지만 항상 무언가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히 거기에 동참 할 수가 없어서 구경만 했다 그 사회자는 점점 그룹을 섞었다 세명이서 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 그룹을 만들어라 이렇게 계속 하여 9명까지 만들어서 한그룹에 9개의 나라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고 우승한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작 했다 ‘너의 나라의 가장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냐 였다 ‘
어리지만 똑똑 하게 잘들 대답한 사람도 있지만 쭈삣 쭈삣 대답을 못하고 자기나라와는 상관도 없는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다 이 필리핀이란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살고 있지만 자기 나라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그 한마디만 가지고도 알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겐 외국 생활에서 부모의 철학과 부모의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다음은 식사시간이 되어서 모두 홀안으로 들어 왔고 우리 사물놀이와 한국 무용 그리고 창의 순서가 되었다
한국 춤이 시작 되었다 한국 춤을 추시는 분은 한국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한 분인데 지금(주부가 된지 20년이 다됨) 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춤을 추신다 ‘마음은 하늘을 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은다고 했다 ‘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늙어간다는 흔히 있는 우리 말이리라 생각 했다
손 과 발 동작 그리고 급히 돌기고 하고 천천히 돌기도 하고 가볍게 뛰기도 하고 사뿐히 뛰기도 햇다 이 모든 동작들과 리듬이 한복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또한 무용수의 몸매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 서양춤과는 달랐다
모든 감성과 열정과 뜻과 우리나라 조상들의 한이 동작과 얼굴 표정 손짓 몸짓 속에 있으면서도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표현되고 있음을 느꼈다
가늘고 가냘픈 손끝의 떠림은 종달새가 나무 가지에서 날개 짓 하는듯 하고 그 속에 우리 조상들의 그리움과 아픔의 흐느낌이 있는듯 했다 그러다가 휙돌아 가슴을 조이는듯한 자태는 독수리가 먹이를 휙 물어채고 비행함과 같고 짥은 박자 긴 박자 그리고 사뿐히 뛰고 내려와 앞으로 갈 듯 다시 뒤로 돌아서는 걸음은 자기의 뜻을 쉽게 나타내지 않은 옛날 여인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귀엽고 앙징스런 아기의 모습과 같았다 무용수는 한복속에서 감추어진 리듬을 타고 밟는 육체는 우리의 한과 그 한이 승화된 조상들과 서민들의 마음이 춤속에 녹아진듯 했고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나타나는 듯 했다
고난을 몸으로 노래하며 승리한 승화가 빙빙돌기도 하고 휙돌며 또 사뿐히 뒤는 정열을 통하여 우리에게 한국인의 얼을 이야기 해주는듯 했다

그 다음은 창이 시작되었는데 서민들과 이웃들 그리고 어쩌면 양반들의 평화로히 자연과 하나 되어 인생을 즐기려는 풍류가 ‘뱃노래’ 에서 묻어나왔다
포수가 비둘기를 잡으려 할 때 노래하는 자는 자신을 비둘기에 비유해서’자기의 님을 잃은 서러움을 토해 내었다 ‘ 저건너 저 관솔 밭에 슬슬 기는
저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 나와 같이 님을 잃고 헤메노나’
나는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장구를 치면서 노래부르던 모습이 생각 났다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엄마는 장구를 메고 노래하던 그 모습이 어렸을때는 참 싫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즐거운 풍류 였는지 그 멋과 맛을 이제 깊이 느끼고 내 마음과 몸에서도 그 흥이 동화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하며 나도 북을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솔솔 일어났다

저번에도 사물놀이 선생님의 선배가 여기를 방문 했었다 그는 국립 예술단 에서 창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창을 들으니 오장 육부와 온 정신과 마음과 고뇌에서 우러 나오는 듯한 노래 였다
그의 노래 가락은 마치 긴 루프에 잘잘한 매듭이 맺혀져 있듯이 마디 마디 깊은 장에서 목에서 흘러나오고 때로는 매듭을 푸는듯 했다 그 창의 가사들은 우리들의 오장 육부와 가슴과 머리에 쏘나기를 시원히 쏟아 부은듯 해서 온신심이 샤워 하고 난 다음 처럼 개운해지고 시원했다
우리나라의 창이 이렇듯 깊고 깊은 맛이 있고 온몸을 음률과 가사로 씻어 내려주어서 속이 후련하고 심신이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다음은 사물놀이가 시작 되었다 박자와 리듬이 사람들의 흥을 매료시키었다 넓은 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사물놀이에 귀를 기우리더니 나중엔 모두가 숨을 죽인듯 조용하고 그 연주에 빠져 들엇다 그 홀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별히 노랑 머리 파란 눈을 가진 장정들의 얼굴엔 신비한 음악에 웃음과 환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 그 사물놀이의 박자와 리듬의 힘은 엄청난 것임을 그 청중들과 나 자신의 감흥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 아쉬운듯이 끝이 났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잘 들었다고 기쁘고 좋고 즐겁다고 연주자들에게 와서 정중히 표현 했다 그런한 관객들은 또한 기쁨과 즐거움의 공연과 행사를 같이 만들어 내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 중의 미국 할머니가 있었다 그의 명찰을 아주 특이해서 기억에 생생 하다 그녀는 I am American but in my heart a Filipina 이렇게 써있었다 난 그 명찰을 보면서 저 할머니가 얼마나 필리핀을 사랑하고 좋아 하는지를 단번에 알아 볼수가 있었다
사물놀이 한국 춤 그리고 우리의 창이 이 사막과 같은 이민 생활 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민족정신 한국인의 얼 그리고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더없이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문화 연구 회가 크게 발전하고 자리를 확고히 하여 이 필리핀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가치 그리고 정신과 예술을 을 바로 알리고 필리핀에 있은 후세들에게 자기 아이덴티티를 심어주어서 세계에서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이 없도록 일조를 할수있다는 장래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이일은
반드시 여기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새삼 느꼈다
특히 요즈음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자기나라의 문화 정신 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확한 확신이 없이는 세계의 넓은 바다에서 정처 없이 헤메고 떠다니는 나뭇잎과 같고 우뚝히 설수가 없다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빛이 되기위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 이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나라 말과 문화 정신 얼을 다 확실히 소화하고 영어도 잘하고 실력이 좋은 전문인이 세계의 정상에서 남의 문화와 예술도 존중하고 그래서그것을 잘 조화해 내는 인물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리라고 본다 아마도 세계가 오바마를 좋아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일것이라고 본다
그역시 청소년 시절에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자기는 흑인임을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나니 그때 이후부터 삶의 힘과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필리핀을 사랑하는 한 외국인으로서 장래의 모든 희망을 후손들에게 걸어 본다.
‘우리의 후손들 필리핀에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자기의 것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가진 재능들을 마음껏 키워 나가길 바라며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본다 ‘

Monday, April 6, 2009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클래식 앨범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한테는 정말 의미가 큰 앨범이지요.” KBS 1FM '송영훈의 가정음악'의 진행자로, 예술의 전당이 매달 둘째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여는 '11시 콘서트'의 공동 진행자로 대중에게도 친근한 첼리스트 송영훈(35). 그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몇 번씩 약속을 옮겨 3주 후에야 겨우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180cm의 훤칠한 키, 단추를 두어 개 푼 셔츠에 청바지, 녹색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은 ‘미남 첼리스트’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았다. 그가 2006년 처음 낸 음반이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곡을 담은 '탱고'. 두 번째 음반이 브라질 음악가들의 명곡을 미국의 기타리스트 제이슨 뷔유와 호흡을 맞춰 연주한 이다. 송영훈은 피아졸라의 탱고에 내재된 관능미와 비애를 첼로의 깊은 소리로 절절히 살려 내 우리나라에 ‘탱고 열풍’을 몰고 온 연주자이기도 하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누가 들어도 마음 깊숙이 와 닿죠. 클래식, 팝, 재즈, 록 애호가 모두가 좋아하니까요.” 첫 클래식 음반에 어떤 곡을 담을까 고민하던 그가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를 들고 나온 데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음악으로나 삶으로나 저의 영원한 스승이신 차밍 로빈스 선생님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곡입니다. 제가 마지막 제자인데,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곡이기도 하고요. 그분께 바치는 마음으로 녹음했습니다. 음악가로서 처음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세이지요.” 아버지가 비올리스트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던 그. 한국일보 콩쿠르, 이화경향 콩쿠르 등 한국에서 치를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 1위를 하고, 열한 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하면서 ‘음악신동’으로 불렸다. 예원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들어갔고,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했다. 이때 만난 스승이 차밍 로빈스. “92세에 돌아가셨는데, 임종 직전까지 링거를 꽂은 채 하나라도 더 전해 주려고 하셨어요. 내가 떠나면 누구한테 가서 배워라, 누구를 만나라 등 세세하게 미래 계획을 세워 주시고.”


선생님의 유언대로 영국 노던 왕립음악원으로 옮겼는데, 그때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자신의 연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콘서트나 음반을 통해 좋은 연주를 들어온 ‘귀’가 있으니 스스로 어느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대치가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다섯 살 때부터 맹목적으로 달려온 길. ‘내가 왜 음악을 해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부닥쳤다. 그때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 “열세 살 때 집을 떠났으니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요. 10여 년 밀려 있던 이야기들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누었죠.” 아버지는 “세상에 나가서 연주하라”고 유언하셨다. “너는 세계적인 보물(International Treasure)이니 그 사명을 잊지 마라”라고 했던 스승의 유언과 같았다. 8개월 후 그는 정상급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의 멤버가 돼 뉴욕으로 갔다. 그리고 1년 6개월 후 핀란드 시벨리우스음악원에 들어갔다. “연주하다 보니 더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그때 시벨리우스음악원의 아르토 노라스 선생이 ‘난 전 세계에서 5명만 가르치는데, 나한테 지옥훈련을 받아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하셨어요. 그분한테 배운다면 아프리카라도 갈 생각이었죠.” 핀란드에서 그는 그야말로 ‘지옥훈련’에 들어갔다. 춥지, 아는 사람 없지 오로지 방 안에 틀어박혀 연습만 거듭했다. “뭐든 미치기 바로 직전까지 도전해야 새로운 경지로 넘어갈 수 있나 봐요.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하는 시기를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제가 머릿속에 그리던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양탄자를 타고 공중에 뜬 것 같은, 마술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연주할 때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 황홀한 쾌감을 느낍니다.” 런던 연극무대에 여주인공으로 서는 아내 제니퍼 림그 후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활동을 펴 온 그는 지난해 4월 <송영훈의 가정음악> 진행을 맡으면서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연주와 방송진행, 음악수업 등으로 바쁜 일정인데도 그가 “내 모든 스케줄 가운데 최우선 순위”라며 주말이면 절대 시간을 바치는 데가 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해피뮤직스쿨’. “음악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활동은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해야 하는 거지요. 그 아이들이 ‘저도 커서 선생님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게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첼로를 연주할 때처럼 무아지경에 빠져요.” 20~30대 젊은 여성 팬들 사이에는 그가 결혼을 했는지, 했다면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도 관심사. 그는 “홍콩 출신인 아내와 5년 전 결혼했는데, 지금 미국과 영국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라고 말한다. 영화 '27 dresses'와 에 출연한 제니퍼 림. 송영훈 씨의 새 음반이 발매되는 2월 17일, 아내는 런던 소호 시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에 여주인공으로 선다. “사귄 지 8년, 결혼한 지 5년 됐는데,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지난 설 연휴, 정말 오랜만에 사흘을 쉬게 돼 당장 런던으로 날아가고 싶었죠. 그런데 안 갔어요. 아내가 맡은 역할이 정신분열증을 앓는 어두운 캐릭터인데, 제가 가면 몰입에 방해될까 봐서요. 아내나 저나 예술하는 사람이니 먼저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부분이 많지요.” 이렇게 삶이 하나하나 쌓여 음악이 되어 나온다는 것. 그래서 “연주는 그 연주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연주에 대해 “감성적 표현이 풍부한 것 같다”고 하자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에요. 연주할 때 딴 생각은 안 해요. 오로지 어떻게 감정을 담아낼지에만 집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또 “음악은 서비스업이고, 저는 청중에 서비스하는 ‘뮤지컬 서번트’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한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비싼 티켓값을 내고 음악회를 찾아온 청중에게 무얼 선물해야 하나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회 전 애피타이저로 ‘청중과의 만남’ 시간을 만들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1시간 30분 전, 그를 미리 만나 그날 공연에서 연주할 곡과 작곡가, 연주자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대답하는 시간. “저 자신도 청중으로 음악회에 가면 너무 엄숙한 분위기에 눌리는 기분”이라며 “조금 더 편안한 음악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촬영을 위해 그가 활을 들고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을 꽉 채우는 깊고 풍부한 소리. ‘삶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악기가 아니라 그 자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그와 음악은 혼연일체가 되었다.
( 이사람의 걸어온 예술가의 길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기에 한국 신문에서 스크렙을 해서 여기에 옮겼다 물론 가는 길은 다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해보지 않는다면 그 분야에서 열매를 딸수가 없다는 것이 이사람들 통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세계의 정상에 선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이야기이다 이근래에 승리한 김연아도 그렇고.
우리 옛말에 호랑이라도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했듯이 좋아 하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온 심혈을 기울여 노력해야만 그것의 열매를 따서 모두가 먹을수 있는 즐거움을 맛 볼수가 있고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리라 본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사람의 결과는 단 열매를 많이 딸수가 있다 )


피아노 콘서트를 보고 나서 (after watching a piano concert)

지난 금요일 피아노 콘서트에 갔었다 우리 교회 학생이 이제 14살인데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와 함께 나도 피아노 콘서트에 초대해서 가서 보게 되었다 대학교 일학년 학생이 하는 콘서트 였다
연주 시간은 거의 한시간 반이었는데 악보 없이 다 외워서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그 프로그람은
Prelude and Fugue in Bb minor WTCI -J.s Bach
Sonata No. 10 in G --------------------J. Haydn
allegro Innocente
presto


Etude Tableau Op. 39. No. 6 -----------S. Rachmaninoff
April Morning ---------------L. Kasilag
Scherzo No. 1 in B minor --------F Chopin
Pagodes (from Estampes) ---C. Debussy

Piano Concerto no. 2. in G minor --------C. Saint-saens
Andante
Allegro Scherzando
Presto
그 학생은 이 곡들을 다 연주 했다 처음에 이 연주는 나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음악에 대히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고 난 피아노에 대해 꿈이 없고 단지 나의 학생이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하니 동참 한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계속 지켜보고 들었다
거의 한시간이 지나 가는데 그녀의 연주는 서서히 나의 무딘 마음에 대화의 힘을 발휘 했다
한시간 반을 연주 하는데 그 어려운 악보들을 다외워서 책이 필요 없고 또 피아노 건반 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그녀의 손가락은 나의 마음에 대화의 문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노력을 가히 상상 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하는지 알수가 있었다 그녀의 전공이 피아노 이기 때문에 그녀는 피아노에 프로 페셔날이 되기 위해서 저토록 노력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면 난 피아노가 전공이 아니지만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고 나의 전공이다
그렇다면 내가 몇개의 시를 외우고 있는가 얼마나 시를 읽고 외우고 쓰기 연습을 했나 내 자신에게 물어 볼때 너무 턱없이 부족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전공을 한다고 말할까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녀의 열정과 노력이 나의 길에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노력에 대답 했다 그래 나도 시에 대해 프로페션날이 되기 원한다면 저보다 더한 노력을 하자 이렇게 정리하며 저절로 그녀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마지막 곡은 두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것인데 한사람은 그녀를 도와 주려고 나왔다 그 역시 손가락이 안보이고 바람 같이 빨랐다 너무 놀라서 으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피아노를 조금 배운다 그런데 악보를 연습 해보지만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매끄럽게 안되는 데 저사람들은 한 곡을 몇천번 쳐 보았기에 손가락이 안보이고 바람 같은가 하는 짐작이 나도 노력에 도전 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날 피아노 콘서트 장을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를 도와주던 파트너가 그녀의 삼촌 이었다 이나라에서 피아노 혹은 악기를 친다 치면 부자집이다 그리고 그 악기를 어렸을때부터 배웠다는 것은 더욱기 부자다 그 아이는 부자부모를 둔것과 좋은 환경에서 훈련 받은것 또한 크겠다 싶었다 그러나 주님은 살아 계시니우리 교회 학생은 모든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단지 꿈과 자원 봉사하는 선생님을 가졌는데 그 역시 시작은 늦었지만 가히 그만한 노력이 있고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 해야만 그의 길이 열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아이의 장래를 생각 하니 참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믿으니 하면서 그아이와 콘서트를 보고난 감상을 이야기 나누며 기도 했다 진실로 피아노를 하고 싶냐고 했더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기도하고 계속 그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 그에게 꼭 성공 하기를 오늘도 바라며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 하지 않고 계속 힘있게 가게 해 달라고 기도 하며 마무리 했다

Sunday, March 29, 2009


Kim Yu-na clinches her first World Championship title
Kim Yu-Na took the gold at the 2009 World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on Saturday with an overwhelming victory in the free skate.
The 18-year-old, recording 131.59 points in the free skate of the championship held at Staples Center, Los Angeles, topped the overall standing with 207.71 points. Kim became the first to receive over 200 points in the women's single event.
“To perform this well at the World Championships was my dream," said Kim, who earned 45,000 dollars in prize money. "I did it here and it is just amazing."
''I'm sure the whole globe shook,'' said Kim's coach, two-time Olympic silver medalist Brian Orser. ''The whole country of Korea must be elated.''
Canadian Joannie Rochette registered 191.29 to rank second, while Japanese Miki Ando, the 2007 world champion, finished third with 190.38.
Saturday's win is Kim's first world championship title since she appeared in the senior stage in 2007. She obtained two bronze medals in the 2007 and 2008 world championship tournaments.
Kim, who received a record 76.12 points at the short program on Friday, entered the free skate at the top with an 8.22-point lead over Rochette.
The Four Continents champion skated to Rimskii-Korsakov's "Scheherazade" and earned high marks for her trademark triple flip-triple toe loop combination jump and flawless triple lutz and double axels. She also performed dazzling spins and spirals.
The only blemish was a triple salchow she bailed out on and turned into a single salchow.
Canada's Rochette also skated a superb routine, attempting six triple jumps. She landed all but a triple loop and had another slight wobble on a triple Lutz.
Heading into the Worlds, Japan's Asada was considered Kim's main rival. Kim won the Four Continents Championship last month in Vancouver and Asada won the ISU Grand Prix in South Korea in December.
They had been going head-to-head over the past year but Asada faded in Los Angeles and never really posed a threat to Kim, who just keeps setting the bar higher each time out.
Her rival, Mao Asada of Japan, the 2008 world champion, earned 122.03 points in the long program to come in fourth with 188.09 points. She made a crucial mistake on her second triple axel jump.
''I was thinking about being a champion again, but instead of thinking about that, I needed to have concentrated on completing my elements,'' said Asada, who had clearly been crying.
(from news reports)
2009.03.29
( from the Korean newspaper)

Saturday, March 21, 2009

Connections 이란 책


《14세기에 유럽에서 천을 짜는 직기가 발달하면서 리넨(아마로 만든 직물) 생산량이 증가했다. 리넨 사용이 늘자 예상치 못한 분야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종이 제조업이다. 리넨 넝마는 질긴 고급 종이를 만드는 데 좋은 원료였다. 그 무렵 흑사병의 고통에서 벗어난 유럽에선 무역이 활발해졌고, 계약서를 쓸 일이 많아졌다. 리넨으로 만든 종이는 비싼 양피지를 대체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직기의 발달이 종이 제조업의 번창으로 이어진 것처럼 인류사에서 기술의 발명, 발달은 뜻하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가 ‘빠른 덧셈을 하는 기계’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예측을 위한 도구’의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비행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가 발달하자 포병 장교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비행기의 속도를 감안해 어느 시점에, 어디를 향해 포탄을 발사해야 하는지 계산하는 일이었다. 포탄의 무게, 바람의 방향과 속력, 포탄의 궤적 등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1940년대 미국 육군은 포병 장교에게 가능한 모든 상황의 조합을 알려주는 포격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더욱 정교한 컴퓨터를 만들었다.》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발명과 발견, 아이디어 및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연결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연결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추적하는 형식으로 기술의 역사를 말하고, 신기술의 등장으로 달라진 인류의 생활사까지 포괄적으로 서술한다.저자는 쟁기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쟁기가 만들어진 근원을 기후 변화에서 찾았다. 기원전 1만 년경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높은 초원 지대의 강수량이 줄어들었다. 초원에서 사냥을 주업으로 하던 방랑자들은 물을 찾아 떠난 짐승들을 쫓아 강가로 내려왔고 농경 생활을 시작했다. 손으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짓던 그들은 인구가 늘면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방법을 찾다가 쟁기를 고안해냈다.저자는 기술의 퇴보도 관련 요인을 통해 설명한다. 13세기 영국에선 1.8m짜리 큰 활이 최고 무기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다. 그러나 마구(馬具)의 발달로 말을 농사에 이용하면서 큰 활은 금세 쇠퇴했다. 말을 이용한 농사는 생산성이 높았고, 말을 타고 멀리까지 갈 수 있어 경작 토지도 증가했다.쓰고 남을 만큼 곡물이 생산되자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주로 일요일에 하던 활쏘기 훈련은 점점 시들해졌고, 궁수가 부족해지면서 큰 활은 자취를 감췄다.전화기의 발명 과정은 개별 기술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획기적인 발명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820년 덴마크인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지 모른다고 추론했다. 영국인 마이클 패러데이는 말굽 모양의 코일 안에 자석을 넣어 코일에 전기를 흐르게 했다. 프랑스인 레옹 스코트는 이와 별도로 소리에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막을 움직이는 실험을 했다.스코틀랜드인 그레이엄 벨은 이 3가지 아이디어를 합친 장치를 고안해 냈다. 소리가 막을 건드리면 막과 연결된 도선(導線) 막대가 움직인다. 막대가 움직이면서 생긴 자기장이 새로운 진동을 만들면 연결된 두 번째 막에서 이 진동이 다시 소리로 재생됐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기술사와 인류사를 넘나들며 세세한 부분까지 서술했다. 그 세세함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저자가 정작 말하려는 요지를 놓치고 단순한 기술사 책으로 읽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가 일어나는 터무니없이 우연적인 방식 때문에 오늘 중에 당신이 하는 어떤 일이 결국에는 세계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한다.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위의 기사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의 내용 처럼 때로 는 과학자들이 발견 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분야에서 그들 연구의 발명이 나타나곤 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어떤 분야에 촛점을 맞추고 보느냐에 따라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이 통합 되어서 나타나는듯 하다 . 예를 들어 난 20대 이후로 문학의 꿈을 뒤로 하고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그 생각을 접은후의 삶의 그 현장에서 어떠한특별한 프리즘이 없었기에 보고 생각 하는 것에 어떤 특별한 통합과 발전이 없었다 그야 말로 색갈이 없는 것이다
이제 중년이 되어서 문학이란 꿈을 다시 꺼내어 이 길에 접어드니 이제 현장에서 만나고 보고듣고 생각 하는 모든것이 문학이란 프리즘 촛점을 가지고 통합 하게 된다 내 머리와 감각은 현장에서의 삶을 가지고 작품이란 열매를 맺으려고 그 생명력이 나의 전 분야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떠한 색갈이 없던 과거도 이제 문학이란 터널을 통과 하여 작품으로 생산되어지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것과 연결 하여서 모든것이 움직이는 것을 알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어야 그것에 도달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호랑이를 그려야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이끌어 가는 키 인 것이다
오늘 아침도 학교를 가기 위해 매가 택시를 탔다 모두들 씻고 단장하고 길을 나선듯 하다 어떤 사람이 들어 오면 향수 냄새도 나고 어떤 사람이 차안에 타면 샴프냄새가 아침을 상쾌하게 할때도 있다 오늘 아침엔 긴 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탔다 그 여자는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머리가 젖어 있었다 . 동시에 내가 상상 할수 있는 것은 필리핀 여자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대부분 여기 여자들은 머리를 말리지 않고 샤워 하고 금새 외츨을 해서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일이다
성인 여자의 젖은 머리를 보면 무엇이 먼저 생각 나는지 궁금 하다
나에게 즉시 떠오르는 것은 그여자가 금새 목욕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오고 목욕을 했으니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생각 하게 된다 그러니 약간의 섹시함을 풍기게 하는 느낌을 받느다
그다음은 저 여자는 일부러 그 섹시함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머리를 안말린 건가 ? 아니면 날씨가 더워서 필리핀 여자들은 그냥 머리를 안말리고 외출하는 것이 보편화 된것인가? 아니면 그 여자들의 집은 가난 하여 드라이 가 없다든지 있어도 전기세 때문에 사용하지 드라이를 사용하지 않는지 ? 난 여러가지로 궁금증을 가지고 뒤에서 그 여자의 머리를 보면서 간다 어찌하든 같은 여자인 나에겐 시원한 느낌 그리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싱그런 아침을 연상 하게 한다
그리고서 학교에 도착 했다 정원사가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있다 어으때와 같이
잔디를 깍을때 나느 풀냄새는 또한 싱그런 아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난 교실을 향해서 정원을 지나 걷고 있었다 꽂과 작은 나무들의 잎새 위에 금새 정원사에게 샤워를 받고 물망울들이 맺혀 있었다 역시 싱그런 아침 그리고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와 동시에 내 머리 속에는 오늘 아침 그 여자의 젖은 머리를 보면서 느꼇던 감성을 연상 하며 하나로 통일이 되었다
이같은 일은 내가 문학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보여진 프리즘이다 전에는 이런 것들을 보았어도 글을 쓰고 생각 하는것에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이 이러한 감성들을 느끼며 또 그것을 어떻게 시로 만들어 볼까 생각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저녁에는
내가 그 생각과 감성들들 풀어서 글을 써보고 있다 이것은 내가 작가가 되려는 노력을 기울리고 있는 내 인생의 항해 인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무슨 생각과 목표를 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가
그 꿈을생산해 낼수 있는 수확을 소산 하는 밭이되고 열매를 내는 나무가 되고 색갈이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문학이란 색갈로 나의 현재를 색칠해보는 것이다 )

Friday, March 20, 2009

작은 텃 밭 ( a vegetable garden)

나는 집안에 있는 작은 화단에 야채를 가꾸기를 좋아 한다 오이도 심어서 따 먹었고 오크라도 심어서 매일 따 먹었다 그리고 이나라 배추를 심어서 국도 끓여 먹고 상추 쌈도 때때로 밥상에 올리곤 했다 밭에서 금새 뽑아온 배추 오이 오크라를 쟁반에 담아와서 씻을때면 기분도 너무 상쾌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구마를 심었다 몇달이 지나도 실 뿌리 그대로 이고 큰 고구마를 찾아 볼수가 없다 어렸을때 고구마를 캐는 날이면 쟁기가 먼저 앞에 가고 뒤에 밭고랑을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은 즐거히 쫒아 가면서 그 고구마들을 고르곤 햇었다
부드런 흙을 밟는 느낌 그리고 그 큰 고구마들이 줄줄히 땅속에서 나오던 즐거운 기억을 잊을수가 없어서 난 민경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가꾸기를 더 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밭에 ㅊ풀이 우거져 있으면 주님 보시기에 그리고 내 양심에도 그것을 허락 할수가 없다 내가 너무 게으른 사람 같아서 조금만 수고 하면 좋은 것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생각 땜에
어쨋든 고구마를 심은지 오래 되었지만 수확을 할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꿈속에서 몇번이고 큰 고구마들을 보았었다 사진도 찍고 또 그것을 민경이에게 보여 주려고 소리쳐 부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깨어 보면 여전히 꿈이었다
이제 기다리다 지쳐서 잊어 버렷다

오늘 신문에 보니 오바마 대통령도 백악관에 텃 밭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유기농 생산물을 먹고 아이들에게도 보인다고 한다 국민학생들이 참석 하게 한다고 한다
그들의 정서와 정신이 나의 마음에 와서 닿는다

요즈음 도시에 사는 부모들도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또 참관 하기 위해서 도시 근교에 텃밭을 만드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아파트에 살지만 자기들의 조그만 텃 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등을 심어서 이웃들과 나누는 즐거운 모습들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많이 보았었다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운가 보다 나도 더 열심히 텃 밭을 가꾸어서 집안 식구들과 이웃들과 그리고 나의 글에 늘 등장하게 만들어야 겠다

난 복잡한 현대에 살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텃 밭을 만들어 자연의 정서를 느끼고 누리게 할수 있는
작물을 많이 만들어야 겟다고 생각 하며
또 무엇을 심을것인지 생각하고 연구 하고 찾아야 겠다

Tuesday, March 17, 2009

Turning Point at 40 years old


[중년의 터닝포인트]<5>정한진 씨- 미학도에서 요리사로



Before: 프랑스 파리8대학 미학 전공 박사과정 After: 요리사 Age at the Turning Point: 40정한진 교수(47· 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는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내 인생전환은 극적이지 않으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도 했다. 한번 만나만 달라고 졸라 겨우 만난 뒤에도 계속 그는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자신의 성격을 탓했다.그는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미학 전공 박사과정을 밟던 2002년 진로를 바꿔 요리사가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르 코르동 블뢰' 요리 과정을 수석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요리사로 일했고 지금은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친다.그는 "인생전환은 결코 멋지고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엄혹한 결단"이라면서 "모든 현실적 문제를 다 따져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때 선택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일을 향해 떠나는 행위를 낭만적으로 상상했다면, 현실을 환기시켜주는 그의 말을 기억해둘만 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단, 그 때부터가 더 어렵다." ● 몸을 쓰는 세계에 매혹되다1996년 파리 유학길에 오를 때 그는 부부유학생이었고 딸아이는 만 두 살이었다. 그간 저축한 돈으로 5년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졌다. 1프랑에 150원이던 환율이 340원까지 올랐다. 생각보다 더 빨리 돈이 축나는 상황에서 그는 "내가 정말 공부 체질인가" 회의하기 시작했다."중학생 때부터 미학에 매료됐고 대학에 갈 때에도 부모와 싸워가며 미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랬는데 한국과 달리 어느 누구도 밀어붙이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면서, 내게 과연 학문적 자질이 있는지 심각한 회의가 들었어요.""계속 책상물림으로 사는 게 즐거울까" 자문하던 그의 눈에 요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서 유학생들이 모일 때마다 그가 족발, 잡채, 양장피 같은 요리를 척척 해내는 것을 보고 선후배들이 '박사 말고 요리사를 해보라'고들 농담하던 터였다."요리를 배운 적은 없는데 어디 가서 맛있는 걸 먹으면 집에 돌아와 그대로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해서 어머니가 장을 담글 때도 메주 찧고 손질하고 엿기름 곱는 일을 같이 했거든요. 오죽하면 고3때 시험이 내일모레인데 김장을 같이 담갔겠어요. 그게 제겐 자연스러웠어요. 결혼 이후에도 김치는 계속 제가 담갔으니까요."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아내도 반대하지 않았다. '르 코르동 블뢰'의 제과제빵, 요리, 와인 3가지 과정을 동시에 등록해 다니면서 "몸을 쓰는 다른 세계"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길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돌아와 한 달 간 설득 끝에 부모의 허락을 받았다."요리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나이 마흔에 무슨 환상이 있겠어요. 저는 가장이고 잘못하면 가족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불안하지요. 게다가 어떤 일이든 늦게 시작하는 건 절대로 유리한 고지가 아닙니다. 직업을 바꾸면 정말로 죽자 사자 매달려야 해요."● 항로를 바꿔도 갈등의 본질은 여전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요리를 배우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내 본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몸을 쓰는 구체성의 세계로 옮겨오니 자신이 오래 속해있던 추상성의 세계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그는 9개월 만에 요리 과정을 1등으로 졸업한 뒤 곧바로 파리 레스토랑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며 도제식으로 요리를 배웠다. 아침마다 도마 수십 개와 요리 도구를 제 자리에 배치하고 수십만 마리의 닭 뼈를 씻어 기름 떼고 피 빼고 목욕탕 욕조 크기만 한 냄비에 넣어 육수를 끓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하루에 10여시간 서 있느라 자다가도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고 욕설이 끊이지 않는 거친 주방에서 자식뻘 되는 요리사들에게 욕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배수진을 친 그에겐 물러설 곳도 없었다.6개월 실습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는 강남의 부티크 레스토랑인 '라미띠에'와 '일 마레' 등을 거쳐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해보고 싶은 내 요리가 있는데 자본도 없고 독립의 어려움을 뛰어넘지 못했다"면서 "나는 모험을 피한 셈"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전환을 결심할 때의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자신만의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과 생계를 위해 마뜩치 않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은 이전에 공부할 때 느꼈던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인생의 항로를 바꿔도 여전히 맞서야 하는 과제였다.● 삶 속에서 맛과 멋을 통합인생전환 이후 그는 "이전보다 더 오기가 생겼고, 자기 기술에 대한 애착을 갖고 일하는 사람,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요리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토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 전공자의 해석, 그럴만한 여유는 잃었다.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생애의 경험들이 결국은 통합되어 간다고 느껴지진 않을까. 그는 요리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향신료 이야기'등의 책을 썼다. 미학 공부를 할 때에도 예술품을 미적 대상이라기보다 사회적 산물로 다뤘듯, 그는 음식 역시 문화적 산물이라고 믿는다. "별 볼 일 없는 음식에도 생애의 추억, 개인의 정서가 담겨 있고 시대, 문화를 볼 수 있잖아요. 음식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 작업이 내 삶에서 경험의 통합이라면 통합이겠지요."그는 '맛있다'는 개념을 시골에서 뜬 된장 같은 맛으로 정의했다. 발효식품처럼 기다리는 음식, 느린 삶이 후퇴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맞물려가는 삶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음식문화 개선을 위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슬로 푸드와 연관된 삶을 사는 방식을 현실화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 이기사를 읽고 실감이 났다 무엇인가 자기가 진실로 하고 싶고 좋아 하는 세계로 길을 바꾸어 감에 있어서 겪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고통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길에 들어 섰다고 해서 그 전의 삶이 다 쓸데 없는 쓰레기가 아니라 그 모든 경험과 공부 했던 것이 이제 새로운 안목으로 보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문에서 이야기 하기를 통합 한다는 것으로 이야기 했다 이것이 나에게 참 실감이 난다 이제 나이 40 중반을 넘어서 가는데 좋아 하는 길을 찾았다고는 하나 그 길에서 기초가 너무 부족 하다고 생각 하는데
지나온 삶을 새로운 길에서 새롭게 통합 할때 그것은 하나도 버릴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만 늦게 시작 했으니 엄청난 노력과 훈련 그리고 그 분야의 지식 습득이 보충이 되어야 그 하고자 하는것을 열매로 만들어서 생산 할수 있으리라고 본다 )

Thursday, March 12, 2009

손님 맞이(preparing for welcome to our vistors)

내일은 한국에서 세명의 손님이 온다 그래서 우리집 식구들은 각자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사모님은 4살 된 딸 아이에게 인사를 가르쳤다 " 안녕 하세요 우지용씨? 하고 윙크를 하도록 가르쳤다 민경이는 그대로 흉내를 내었다 얼마나 귀엽고 우스운지 모른다 민경이가 그 연습을 할때 마다 우리는 모두 웃으며 즐거워 한다 그런데 내일 민경이의 아빠 친구 우지용씨가 오면 정말 그대로 인사를 할수 있을지 우리는 모두 의심을 하고 있다
연습은 잘 해도 실제 닥치면 수줍어 하면서 그 인사를 하지 못하고 엄마 뒤로 숨을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난 정원과 마당 청소를 했다 요즈음에 바쁘다고 꽃들에게 물을 주지 못했었다 알로에나 그리고 다른 꽃나무 들이 따가운 햇빛에 말라 있었다 난 꽃들에게 미안 했다
우리집에 나 자신의 꿈으로서 시인인 내가 살고 있는데 자연이 이렇게 메말라 있으니 어떻게 내 영혼과 마음이 우주 만물의 소리를 들을수 있을까 생각하니 시인의 자격이 안된듯 싶었다
내 마음에 생각 하기를 진짜 시인이 살고 있는 집안 분위기는 어떨까?
내가 마당을 쓸고 정리 하는 동안 우리 집 정원은 아주 활기가 넘치고 시들하고 황량 했던 곳이 이제 봄을 맞은듯 여름을 맞은듯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마당과 정원으로 변했다
난 이렇게 항상 주위 사람들과 환경에 생기와 활력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고 싶었다
내가 청소를 할떼 주위에 활기와 생기가 솟아 나고 있음을 느끼며 귀빈이 온다고만 정리 하고 청소 할것이 아니라 늘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 자연 그리고 내 자신에게 이런 활력소가 우리의 주위에 공기가 되고 비가 되도록 해야 겠다고 생각 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사모님은 집안 방정리 옷장 그릇 정리들을 했다
헌옷들도 많이 정리 했고 방안의 가구들도 바뀌고 새로운 메트리스도 샀다 민경이가 좋아 하는 그림이 있는 메트리스다
그래서 집안이 더욱 밝아 졌다
선교사님은 내일 새벽에 시장에 가신다고 한다 식사를 대접 하려고

그들 중에는 국립 예술단에서 창 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는 토요일은 up 대학교에서 창을 하기로
계획이 되 있다 기대가 된다
나도 가서 잘 듣고 느껴서 시로 만들어 내려고 생각 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시를 공부하고 시인의 꿈을 갖다 보니 모든 것을 창작할 목적으로 생각이 움직이고 나의 안목이 글을 창작할 방향으로 보여 진다

Wednesday, March 11, 2009

즐거움과 힘이 있는 사람

나의 친구가 필드 리서치를 갔을때 극진히 도와준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마닐라에 올라 왔다고 했다 정부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 하기 위해서였다
호텔 로비에서 얼마를 기다렸다 30분쯤 지나서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그가 왔다 옆에서 나이가 30은 넘어 보이는 긴머리 여자분이 같이 들어 왔다
얼굴은 30이 넘어보이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스처럼 보였다 얼굴이 피곤해 보이고 생기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가 우리에게 인사 했다 그리고 그 여자도 소개 시켜주었다
자기 남동생 여자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 친구 오늘 만난 분의 남동생은 이미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형이 그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도 그 여자는 그것과는 상관 없다는 듯이 이야기 했고 이미 서로 알고 있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듯이 공공연히 자기 남자 친구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다
도한번 필리핀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놀랐다

어쨋든 그는 아주 총기 보이는 스포츠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건강한 장년 으로 보였다 친구가 나도 소개 시켜서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 문예창작을 공부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방에 한번 방문 오셔서 글을 쓰세요 그리고 거기에 내 자서전도 조금 넣어 주세요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도 난 글 쓰는 사람의 눈과 귀를 소유했다
어디서든 남의 이야기든 나에 이야기든 난 귀담아 듣고 이미 그자리에서 난 글을 쓰고 있다
그 시간에도 역시 그가 내 친구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글로 옮기도 있었다
그가 이야기 했다 내가 5살때 난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었다 거리서 난 아주 인상에 확들어오는 형믈 만났다 그 형은 멋진 줄바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넙무 좋아서 어린 내 마음에 나도 ㄱ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이 나에 꿈이 되었고 훗날 난 그 이미지를 찾아서 나도 그대로 갖추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난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9년 전에는 내가 그 지방에서 부시장에 출마 했엇다 그런데 난 덜어졌었다
그러나 난 그 때에 그 부시장 자리를 보면서 다음엔 내가 거기에 꼭 앉을 거라고 다짐 ㅇ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는 그 의자에 앉아서 그 일들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한가지 그는 거기에 앉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그 부서에 처음 서류를 낼때에도 자기는 그 많은 서류 중에서 자기가 꼭 될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그 심사 위원들에게 면접 보면서 이야기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게 그렇게 될것을 알았냐고 했더니 자기의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고 말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 줍니다
꿈이 네 속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에 나에 몸과 마음은 어느새 그의 자신에 차고 신념에 찬 말을 들으면서
그의 힘이 내 마음과 몸으로 서서히 선해 옴을 느끼며 진실고 그의 작은 자서전을 쓰기에 넉넉한 자료와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발견 했다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졀해 졌다
그는 마음에 힘이 있는 사람이어서 우리들이 그의 옆에 있으면 힘이 전해져 오고
그 분위기는 즐거움으로 팔짝 팔작 살아 있음을 느끼고 다시 만나보고 실은 사람으로
내 기억에 담아졌다 난 생각 햇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한국 사람 이야기

Tuesday, March 10, 2009

동아일보 중에서 발췌


영어 말하기대회에서 우승한 ‘국내파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렸을 때 영어동화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한다. 조기유학 대신 집에서 영어동화책을 읽고, 듣고, 따라 말하며 영어를 배웠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영어동화책 읽기를 지도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언제부터, 무슨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30년간 미국 정규학교 교사로 일하며 유치원∼8학년까지의 학생들을 가르친 재클린 래드니액 씨(58·사진)를 만나 미국식 영어동화책읽기 지도법을 들었다. 퇴직 후 미국 23개 주에 있는 공·사립학교에 온라인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교육기업 K12에서 일하던 래드니액 씨는 1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세워진 ‘K12 인터내셔널 아카데미’의 교수부장이 됐다. K12 인터내셔널 아카데미는 미국에 가지 않고도 미국 버지니아 주 학위 인증서를 딸 수 있는 온·오프라인 정규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하루 15분 온 가족이 책 읽는 ‘디어(DEAR)’ 시간 가져라○ 언제부터?“생후 한 달부터 영어동화책을 읽어주세요. 언어는 일종의 ‘자극’이라 일찍부터 자주 들려줄수록 효과가 크거든요.”래드니액 씨는 영어동화책 읽어주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부모가 영어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 아기는 영어 단어나 영어 문장을 그대로 따라 말한다. 부모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계속해 듣던 아기가 자연스럽게 옹알이를 하고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자녀가 말을 잘하게 됐다면 영어동화책을 자녀와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자. 부모의 발음을 듣고 따라 말해보면서 자연스레 영어 듣기, 말하기 실력이 자란다. 미국에서는 책을 잘 못 읽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방문해 영어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자원봉사자가 흔하다. 래드니액 씨의 아들도 고등학교 때 이런 자원봉사를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 자원봉사자도 있을 정도다. 영어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 영어로 읽고 쓰는 데도 도움이 된다.직접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지만 발음에 자신이 없는 학부모나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며 쉬고 싶은 학부모라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영어동화책에 딸린 CD를 틀어주거나 영어동화책을 읽어주는 무료 사이트(그래픽 참고)에 올라 있는 플래시 영어동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슨 책을?영어동화책을 고를 때는 아이의 레벨에 맞지 않는 책이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미국 엄마들은 아이가 자기 수준에 안 맞는 책을 골라도 “그건 네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읽어준다.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책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도 화려한 삽화를 보고 엄마에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용까지 이해하게 된다.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책을 읽어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래드니액 씨는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해 같은 영어동화책을 500번쯤 읽어줘도 질릴 줄을 모른다”며 웃었다. 연령대별로 적절한 영어동화책을 참고해도 좋다(그래픽 참조). 취학 전 자녀에게는 최대한 색상이 다채롭고 그림이 많으며 글이 거의 없는 영어동화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 그림을 보며 “이건 무슨 내용인 것 같아?”,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 거 같니?”, “이 장면에 없는 내용을 상상해볼까?”, “네가 이야기를 다르게 바꿔보면 어떨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게 하면 아이의 상상력이 높아진다. 이런 질문을 던지려면 시리즈물로 된 영어동화책을 사주는 것이 좋다. 한 캐릭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시리즈물은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초등학생 자녀에게는 교과연계독서를 시키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는 모든 과목 수업시간에 교과서 내용과 동일한 주제의 동화책을 읽는다. 래드니액 씨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아이들은 역사를 가장 싫어하는 과목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역사 시간에는 스페인에 관한 동화책을 읽는 등 교과서 주제에 맞는 오디오 영어동화책을 수업에 적극 활용한다. 이런 식으로 미국 초등학생이 한 해에 한 과목을 통해 읽는 영어동화책이 적어도 10권이다.○ 어떻게 읽힐까?미국 학교에는 ‘디어(DEAR·Drop Everything And Read)’라는 독서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만 되면 청소담당 직원부터 교장까지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읽는다. 하다 못해 잡지를 읽는 등 반드시 뭔가를 읽어야 한다. 미국 가정에서도 이 ‘디어’ 시간을 정해두는 일이 많다. 알람을 켜놓고 15분 동안 모든 걸 정지한 채 책만 읽는다. 텔레비전도 이때는 자동으로 꺼지게 설정해둔다.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따라한다. 매일 반복하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반사 작용처럼 책을 집어 들고 읽게 된다. 가족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북 클럽(독서 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한 달 동안 읽을 책을 정하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 독서 감상문을 발표하는 가족 북 클럽을 만들어 참여하는 가정이 많다. 미국 학교가 진행하는 ‘쇼 앤드 텔(Show&Tell)’ 수업을 응용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쇼 앤드 텔은 미국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순서를 정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영어동화책을 학교에 갖고 와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책에 대해 애정이 생기고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래드니액 씨는 “영어동화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면 부모들끼리 영어동화책을 서로 교환해 보는 ‘쇼 앤드 텔’ 그룹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그가 가르치는 반의 학부모 5명도 이런 쇼 앤드 텔 그룹을 만들어 효과를 보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서로의 집에 돌아가며 모인다. 엄마와 아이가 한 조를 이뤄 연극하듯 그날 가져온 영어동화책을 사람들 앞에서 읽어준다.
**이 기사를 읽고서( My impression of this article) ***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4살 짜리 아이가 있다 나도 아이에게 늘 책을 읽어준자면 좋겠다 싶어서
내가 우리 책읽을래 하고 물어보면 곧 그 아이는 그러자고 한다 그래서 책을 가져 오면
결코 읽어주는 책을 수동적으로 듣고 있지 않다 몇분 지나지 않아서 자기가 읽겠다고 한다
아직 책을 읽을줄 모르는데 자기가 선생님 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좋은 동화 책의 내용을 못 읽혀주고 만다 부모님과 읽을때는 곧잘 듣지만 그러나 이 아이의 성품은 워낙 독립적이어서 자기가 수동적으로 받고 있는것을 좋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남에게 하기를 좋아하는 능동적인 성품이다 이런 아이는 어떻게 책을 읽혀야 하는지 참 궁금하다어쨋든 미국에서는 이렇게 다른 책읽는 습관이 가정과 학교마다 있다고 하니 놀랍다 나도 창작을 공부 하고 좋아 하다 보니 이런 그룹을 만들어서 책읽고 대화 나누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교회 유치부 아이들과 일주일에 두번 정도 시도 해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새로운 일을 시도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은 나에게 즐거운데 꾸준히 할수 있을지가 문제다
아마도 내가 즐거우면 할수 있을 것이다 )

the way of creative writing from newspaper(동아일보 )




《“고등학교 2학년 때 개인 홈페이지에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었어요. 교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상상을 가미한 ‘황당한 스토리들’이었는데 300여 명의 동급생이 매일 접속해 읽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죠. 선생님과 학생 몇 명의 실명을 거론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할 뻔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겐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됐어요(웃음).”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본명 이선웅·29·사진)는 대표적인 ‘엔터라이터(연예인과 작가를 각각 뜻하는 Entertainer와 Writer의 합성어)’다.》베스트셀러 소설 낸 가수 작가 타블로 “난 이렇게 썼다”사업하는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미국 홍콩 스위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19세 때부터 3년 동안 미국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썼던 10편의 단편을 모아 자신의 첫 소설책인 ‘당신의 조각들’(달)을 펴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책은 넉 달 만에 16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미국 스탠퍼드대 창작문예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타블로는 “자신의 진솔한 생각이 담겨있다면 낙서도 랩도 한편의 시(詩)가 된다”고 말한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쓰면 ‘글쓰기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놀이’처럼 글쓰기를 즐기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타블로는 도대체 어떻게 글을 즐기는 사람이 됐을까? 4일 오후 그를 인터뷰했다.○ 셜록 홈스를 흉내 내다


타블로에게 글쓰기는 즐거운 놀이였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작가의 문체와 주인공의 말투를 흉내 내며 모방작품을 쓰곤 했다.일기도 즐기며 썼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죽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밤 꿨던 꿈이나 로봇들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의 장면을 글로 표현했다. 그에게 일기장은 조물주처럼 세상을 마음대로 만들고 움직일 수 있는 마술공간이었던 셈이다.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창작문예반에서 활동한 그는 공상과학 판타지소설 시 수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 이렇게 쓴 글은 감춰두지 않았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초등학교 3학년 때 캐나다의 학교를 다녔는데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친구들과 숱하게 싸웠죠. 하지만 그런 친구들도 제가 쓴 판타지 소설엔 열광했어요. 그 때부터 글쓰기라면 자신이 있었어요.”그에게 글은 장기이자 세상과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窓)이었다.○ 말 대신 글로 수다 떨어라“쉬는 시간에 친구와 수다 떨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까 고민하지 않잖아요?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예요. 말처럼. 자꾸만 억지로 꾸미려 하기 때문에 글쓰기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거죠.”타블로는 문법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글은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라고 믿어서다. 문장에 최대한 형용사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떤 글이든 쓰다보면 어휘력과 표현력이 늘기 마련. 글쓰기를 ‘지옥 같은 경험’으로만 여기는 학생들에게 타블로는 말한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를 원고지 대신 활용해보라고.“장르는 상관없어요. 좋아하는 글을 쓰세요. 글쓰기 자체를 즐기다 보면 글 쓰는 실력 자체가 길러져요. 그러면 논술처럼 형식이 정해져 있는 글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어요.”○ 메모는 ‘정신의 준비운동’타블로는 늘 메모를 한다. 책을 읽을 때나 수업을 들을 때, 그리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쭉 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할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언뜻 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이 메모는 글쓰기를 위한 그만의 ‘준비운동’이다. 그는 치밀한 개요를 세우기보단 이미지와 단어로 구성한 마인드맵을 기초로 글을 쓴다.“책을 읽을 때도 주인공의 이름이나 역사적 배경 같은 ‘사실’은 메모하지 않아요. 대신 나의 생각이나 느낌, 순간 떠오르는 단어, 이미지를 묘사해 놓죠. 그런 다음 메모한 종이를 훑어보며 필요한 내용들을 뽑아내 작사를 하고 글도 만들어 나가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타블로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사람과 사물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그 이미지를 다시 언어로 풀어내 글을 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이런 과정으로 태어났다. “문학시간이었는데 선생님한테서 술 냄새가 났어요. 선생님은 왜 이 시간에 술을 마셔야 했을까? 왜 수업에 늦게 들어오셨을까? 궁금했죠. 그 이유를 상상하다보니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 지더군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제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글쓰기가 재미없다고? 원문을 비틀어봐!하긴, 그에게도 글쓰기가 끔찍하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타블로는 “글쓰기가 재미없다면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다.“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작가 에밀리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고 논문을 제출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책에선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죠. 너무 하기 싫었지만, 이왕 할 일이라면 재미있게 하자고 생각을 바꿨죠. 책 자체에서 재미를 찾기보단 재미있게 논문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발상을 바꿨다. 왜 이 작가들의 책을 읽어선 안 되는지, 왜 그들의 작품이 재미가 없는지를 매섭게 꼬집는 글을 쓰기로 타블로는 작정했다. ‘그들의 작품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자기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선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더 꼼꼼히, 더 철저히 내용을 분석하며 책을 읽게 됐다.노래가사를 쓸 때도 그는 신화나 성경에 등장하는 비유를 활용하곤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신 ‘제우스’에 맞서다 하늘을 두 어깨로 떠받치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거인 신 ‘아틀라스’, 그의 모습에서 이 시대 아버지들의 고된 자화상을 읽어낸 타블로는 이를 가사로 옮기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과 ‘햄릿’의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는 가사도 있다. “음악도 문학도 모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창작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세요. 이 세상에 좋은 글은 없어요. 솔직한 글만 있을 뿐이죠.”:타블로는 누구?:힙합그룹 ‘에픽하이 (Epik High)’의 리더.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DJ로도 활동 중이다. 3월 말엔 에픽하이의 새 앨범과 멤버들의 글이 수록된 책이 함께 묶여 나올 예정. 책 속엔 멤버들이 예술적 영감을 음악이라는 구체적 예술형태로 현실화시키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꿈꾸고 창조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놀이”라는 멤버들의 메시지는 에픽하이의 홈페이지 ‘mapthesoul.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내가 기억 하고 싶은것( Remind myself for the writing from this article)***


( 무엇이든지 글 쓰기를 훈련 하려고 그리고 이글에 나도 동의 하고 또 쓰는데에 비슷한 경험도 해보았다 그러나 난 이 사람에 비하면 아직 글 쓰기 시작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노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creative non fiction 과목의 과제물들의 경험을 통해서 이사람이 말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볼수 있고 즐길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그래서 이시간도 내가 쓰기를 연습한다 내일도 ...)

Sunday, March 8, 2009

동아 일보 기사 중에서 발췌 '신화는 인간을 단련시킨다'

Kim, Yong-ho 'Myth makes the people who is a soldier'
i copied this article from Korean newpaper.
신화 전사를 만들다/김용호 지음/·휴머니스트《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렵고 기댈 곳 없는 시절일수록 역경에 영웅적으로 대처한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법이다. 수천 년 전 신화 속에는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의 사람들도 새겨듣고 힘을 얻을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신화를 주제로 강의했던 저자가 동서양 신화 속에서 찾아낸 인생의 통찰은 전사(戰士)적 삶이다.》신화 속 주인공들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계시나 꿈이 비록 황당할지라도 목표를 실현할 의지로 승화시켰다. 꿈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고 고난의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사사로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상을 위해 몸을 던졌다.

저자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 책은 위기가 난무하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신화가 건네는 행동지침서로 읽힌다.신화 속 전사들은 꿈을 삶의 의지와 결합했다. 신라시대 문희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황후가 된 것은 단지 언니의 꿈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신화 속 꿈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거나 예측이지만 그 자체로 실현되지 않는다. 서쪽 산에 올라 소변을 봤더니 경주에 소변이 가득 찼다는 꿈은 언니에게는 희한한 꿈 이상은 아니었다. 황후가 되겠다는 문희의 의지와 실력이 꿈과 합쳐져 목표에 대한 비전으로 변한 것이다.전사들은 꿈을 단단히 붙든 뒤에는 결코 놓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 물의 요정 키레네의 아들인 아리스타이오스는 꿀벌을 치는 데 달인이었다. 어느 날 그의 벌 무리가 전멸하자 아리스타이오스는 좌절한다. 어머니는 예언자 프로테우스를 찾아가면 이유를 알 수 있지만 쉽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테우스를 잡아 사슬로 묶고 이유를 알려줄 때까지 사슬을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테우스는 아리스타이오스에게 잡힌 뒤 불, 강, 무서운 짐승으로 변신하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아리스타이오스는 죽을힘을 다해 사슬을 붙들었고 결국 벌이 죽은 이유를 알아냈다. 저자는 “예언자나 하늘은 해답을 쉬이 알려주지 않으며 쉽게 얻는 대답은 금방 잊혀진다”고 말한다. 전사는 또 고난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극복한다.그리스 신화 티탄족의 여신 레토는 제우스와 하룻밤을 보냈다가 헤라의 분노 때문에 임신한 채 곳곳을 방랑해야 했다. 온유한 그는 방랑 과정에서 겪은 거절, 추방, 모멸 상황에서 화를 내는 대신 온유의 힘을 훈련한 덕분에 해(아폴로)와 달(아르테미스)을 낳아 세상에 선물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전사의 또 다른 덕목은 무엇을 버려야 할지 안다는 것이다.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지혜의 샘을 찾아갔지만 샘을 지키는 거인 미미르는 샘물을 내주지 않았다. 샘물을 마시기 위해 오딘은 한쪽 눈을 내놓아야 했다. 오딘은 기꺼이 눈을 뽑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샘물을 마음껏 들이켰다. 오딘은 애꾸눈 신이 됐지만 눈을 버린 대신 사물의 본성과 진리를 아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극한의 정성을 다하는 것도 전사의 특징이다. 신라 승려로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는 비구가 되기 전인 사미 시절 스승에게서 미륵과 지장 두 성인 앞에서 직접 계를 받으라는 말을 듣는다. 열두 살인 진표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물일곱까지 명산을 다니며 수행했지만 두 보살을 만나지 못한 진표는 절벽에서 몸을 날리고 돌로 몸을 두드리며 참회를 계속했다. 손과 팔이 부러져 땅에 떨어지자 그제야 지장보살이 나타나 계를 받을 수 있었다.저자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라는 측면에서 동서양 신화의 공통 요소를 찾은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휴머니스트)도 함께 출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사람들의 삶에 귀감과 영향력을 주는 영웅의 이야기를 우리는 좋아 하고 배운다
사람들이 절망하고 불간능하다고 할때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를 믿지 않고 오히려 꿈으로 바꾸어서 희망을 만들고 그리고 그 희망을 향해 가는 자가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내가 꾸고 있는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고
희망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기어히 이루어 가야 겠다고 생각 하며 이 기사를 스크렙 하여 놓고 나자신이 읽으며 힘을 기르려고 한다 )

Saturday, March 7, 2009

Last blog for Assignment

At first time, to write on the blog was so exciting then I was eager to find topics and I tried to apply the principle of writing through learned every non-fiction classes.
Everyday when I woke up, I thought what I will write today? Or in the bed at night what I will write tomorrow?
I realized that through this practice; it makes me more sensitive thinker; my soul of ears always inclined to my mind and heart, and voice of peoples and overheard conversation in the house, in the commutes, news, and other people of stories.
As I practiced to write story, I became speaker in the story because I learned non-fiction, which can write base on true story but can create lie for literary genre. Also I strived to listen through my heart of ears to animal, natures and places.
I look back over my childhood stories and I tried to find the meaning of metaphors through conversation with other people for the writing.

And I must to write everyday I had time or no more time and I was tired or not tired nevertheless, I must to enter on the blog and must to write. It was just like war against writing world.
In the result, I discovered it was very interesting to me so I convinced more my life be a writer. Every day and when I was write, my senses, mind, and my soul of sight were become more sensitive.
It was just like puzzle game so I played with words, clause, and language. And also I discovered the problem, which is my writing through English it was discouraged me but I found good solution through teachers’ advice, ‘you write by your mother language’ because I want be not a English writer but I want be a creative writer. Then, I thought by oneself; ‘I have comfortable language or mother language so I can express freely on my creative writings. So language is no problem to write and no more discouraged me. But I will more study creative writing so I need English but for the writing is no language problem because I have language, which can feel sense and express freely through my mother language.’

Now I am imagine; this practice is like a first learned swim and I am a poor swimmer and I am swimming near the finish line for the swimming exam.
I could not swimming when I was college, swimming was my requirement subject, PE teacher taught us every classes how to swimming but I did not understood, sometimes I was falling down in the deep water so I did not breath for a while, I felt almost die. It was afraid on the water and I drank so much water of the swimming poor.

Teacher explained us for the midterm; ‘I will test all in the deepest water of the swimming poor.’ The length of water was over my head; at that time still I did not floating on the water but it was my requirement. It was so discouraged and afraid to me.
So I asked my friend to help for survive “Min He, who is my friend! Teach me how to swim?” So we went my school and other swimming pool to teach and learn but I could not still.
At last, she taught me; ‘you must inhale the air like fish if you contain air in your chest or mouth and you throw your body on the water. At first time you do not move and wait for your body will be floating on the water and plunge your head into the water.’
So I followed her instruction and at that time, immediately the miracle happened to my body. Wonderful! My body was floating on the water and I moved my hands and feet and I moved on the water like a fish or ship! Wou! That was wonderful for my lifetime.

To write on the blog is like learn to swimming; teacher brought us into the deepest water and he teaches us swimming on the water, where the water of length is over the our height and some are very good swimmer and i am not jet know very well swimming, perhaps no matter what it was very good practice to everyone; discipline own self for writing craft and training to sharpen thinking and sense.It is last day of writing on the blog for assignment, but I will continually write on the notebook and my blog.

Friday, March 6, 2009

Growing Pains

민경이라는 5살 짜리 조그만 여자 아이가 한시도 쉬지 않고 잘 뛰어 놀았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 언니들 오빠들이 다 민경이의 친구 였고 우리집은 늘 아이들의 동산 이었는데 요즈음은 너무 한적하다
늘 아프다고 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고 다리와 팔 그리고 배가 아프다고 한다 무슨 병은 아닌지 참으로 걱정 된다 이런 가운데 민경이는 늘 놀기를 좋아 했으니까 나도 여전히 늘 함께 놀아줄것만 생각 했었다

그러나 민경이는 밖에도 나가지 않으려고 하니 걱정이되어 인터넷을 찾아 보았는데 이런 증상은 주로 성장통이며 5-10살 사이에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증상이 계속 되면 질병이 오는것일수도 있으니 잘 살펴 보고 병원에 가서 체크도 해보야 한다고 했다

민경이가 아프다고 할때마다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난 인터넷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나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 사람의 전반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 당연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난 처음으로 성장통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도 어렸을 적 몹시 아팠던 기억을 상기해 볼때 아마 나도 그때가 성장통으로 심히 아팠던 때 였다는 것을 지금 알게되었고 그 당시 엄마의 손길과 마음이 생각 났고 이젠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남았다

성장통은 뼈가 급히 자라는것에 비해 근육이 그 성장에 미쳐 따라가지 못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칼슘이나 단백질 영향 섭취를 잘 해야 하는데 식품으로는 우유 멸치 야채 고기 콩종류 두부 당근 사과 포도 등이 좋다고 한다

난 이것을 보면서 내가 너무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면
그 나이에 대한 특성과 심리적인것 신체적인것 그리고 필요한것들이 무엇인지 늘 공부해서
내가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것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난 옛날 그대로 변화가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젠 또다른 방법의 사랑 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늘 놀아줄것과 그리고 어디에 데리고 가는 것만을 가지고 사랑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 이 아이는 밖에서 놀지 않고 어디 가기도 싫어 하는데 맨날 2-3살적 해주었던 스타일만 가지고 사랑을 한다고 하면 이것은 그 아이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이는 모든 면에서 성장 하는데 난 항상 옛날 2살 3살 때 놀던 방법 을 사용 하려고 하니 이것은 벌써 과거가 되며 낡은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분명 연구가 필요하고
우리가 누군가 사람을 사랑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것을 알아야 하는것이 당연 함을 알았다 이제야 난 이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이며 휴식을 갖도록 도와 주어야 하며 따뜻한
온수로 몸을 맛사지 하여 주어야 한다는 지식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은 멸치 그리고 야채 콩 등의 식단을 좀더 열심히 챙겨 주지만 잘 먹지도 않는다
제발 이것은 민경이 에게 성장통일 뿐이지 절대 다른 질병은 아니것이라 믿고 이 성장통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고 도와 주고 있다
물론 민경이에게 더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있지만 나도 민경이를 사랑하니 내 스스로 나도 그 아이의 아픔에 안타까워 하며 돕는다
아프다고 울며 몸에 열이 있을때마다 내가 심난해 지며
마음이 다시금 근심에 잠긴다
민경이가 아프다고 말할때 마다
조그만 것이 그 아픔이 얼마나 힘들까 마음 조리며
내 몸이 저려온다


주여
민경이를 제발 도와 주소서
이것은 절대로 질병이 아니고
단지 성장통이며
속히 이 성장통이 지난 후에는
몸이 더욱 튼튼해져서
키가 자라고
마음과 지혜가
더욱 자라서
보다 큰 민경이가 되도록


주님
제발 민경이를 전적으로 도와 주소서
다시금 민경이가 아이들과
매일 즐겁게 뛰어놀며
자기가 좋아하는것들을 더욱 많이 배우며
사랑스럽게 자라나는 모습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우리에게도 씩씩하고 유쾌하게
잘 노는 민경이를
속히 볼수 있는 기쁨을 주소서

Thursday, March 5, 2009

Dr. Jose Antonio Abreu

Born in Valera, Venezuela in 1930, Dr Jose Antonio Abreu pursued a dual career in music and economics. 30 years ago the conductor, composer and economist Jose Antonio Abreu had the vision of combining social work and classical music. Abreu's goal was to tear down elitist structures in music education and make music a fundamental right of all the country's children.
In 1975, he began the work for which founding the Simon Bolivar Symphony Orchestra, and the National Symphony Youth Orchestra. His aims are “ the majority children and juveniles belong to the group, that are most vulnerable and excluded in all of Venezuelan Society.” Participating in the Orchestral movement has made it possible for them to set up new goals plans projects, and dream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way of creating meaning and helping them in their day-to-day struggle for better conditions of life through the variety of opportunities that the orchestral movement offers them.
For archiving a unique cultural renaissance, bringing the joys of music to countless disadvantaged children and communities.
Perhaps the most remarkable element about this orchestral System is that it is explicitly oriented towards lower-income social strata. It has been described as "a social movement of massive dimensions, that works using music as the instrument that makes the social integration of different Venezuelan population groups possible and supports the strata with low income."
National Symphony Youth Orchestra, which has given hundreds of thousands of Venezuelan children of low-income families access to music and education that improves their lives. All of this is help to create a positive self-image, a strong self-esteem a sense of confidence. And his efforts have inspired similar initiatives in other Latin American countries."
.

Wednesday, March 4, 2009


Visionary leader
Jim Yong Kim, M.D., Ph.D., has been elected the 17th President of Dartmouth by the College's Board of Trustees. Ed Haldeman '70, Chair of the Board, announced the appointment on Monday, March 2. Dr. Kim, 49, will take office on July 1, 2009. He will succeed James Wright, who previously announced that he is stepping down after 11 years as President of the College in June. "As a leader in the field of global health, Jim has helped to transform efforts to bring health care to the world's poor," Haldeman said.


Biography of Jim Yong Kim, M.D., Ph.D.

Dr. Jim Yong Kim, an internationally recognized physician and humanitarian and an accomplished educator and anthropologist, will become the 17th president of Dartmouth College on July 1, 2009.
Dr. Kim, 49, has had a profound impact on a wide range of organizations throughout his distinguished career, including, among others, the Harvard Medical School,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and Partners In Health, a non-profit organization that supports health programs in poor communities worldwide. He is widely respected for his leadership in the fight against HIV/AIDS, tuberculosis and other diseases.
Dr. Kim’s academic, humanitarian and global health work has earned him widespread recognition. He was awarded a MacArthur “Genius” Fellowship in 2003; was named one of America’s 25 “Best Leaders” by US News & World Report in 2005; and was selected as one of TIME magazine’s “100 Most Influential People in the World” in 2006. Dr. Kim is married to Dr. Younsook Lim, a pediatrician at Children’s Hospital Boston. The couple have two young sons.
Experienced and Visionary Leader
Dr. Kim brings to Dartmouth more than two decades of successful leadership experience at leading U.S. and global institutions. He is currently Chair of the Department of Global Health and Social Medicine at Harvard Medical School; Chief of the Division of Global Health Equity at Brigham and Women’s Hospital in Boston, a major Harvard teaching hospital; and Director of the François-Xavier Bagnoud Center for Health and Human Rights at the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He also currently leads a new Harvard University-based initiative in Global Health Delivery designed to discover and widely share knowledge about the effective implementation of health programs in poor communities.
Prior to holding these positions, Dr. Kim was appointed Director of the HIV/AIDS department at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in March 2004. He had previously served as Advisor to the WHO Director-General. As the head of WHO’s first major effort to promote treatment for AIDS patients worldwide, Dr. Kim oversaw all of WHO’s work related to HIV/AIDS, focusing on initiatives to help developing countries scale up their treatment, prevention, and care programs.
Dr. Kim also was a founding trustee and the former executive director of Partners In Health, which supports a range of health programs in poor communities in Haiti, Peru, Russia, Rwanda, Lesotho, Malawi and the United States. He co-founded the organization in 1987 with Dr. Paul Farmer and other colleagues while they were students at Harvard Medical School, and he continues to serve on its Board.
Committed and Accomplished Educator
Dr. Kim has been committed to educating young people since his first teaching experience more than 20 years ago at Harvard University. Since that time, he has taught undergraduate and graduate courses in anthropology, social analysis, social medicine, and global health.
Dr. Kim currently holds appointments as Professor of Medicine and Social Medicine at Harvard Medical School and as François-Xavier Bagnoud Professor of Health and Human Rights at the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In 2004, in recognition of his outstanding professional achievements and commitment to service, Dr. Kim was elected to the Institute of Medicine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 one of the highest honors in the fields of health and medicine.
He has published widely over the past two decades—authoring or co-authoring articles for leading academic and scientific journals, including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Lancet and Science, among others. He also has contributed to books on topics ranging from the global impact of drug-resistant tuberculosis to the inequality of medical access for the world’s poor.
Internationally Recognized Humanitarian and Anthropologist
Dr. Kim is renowned for his leadership in the global fight against HIV/AIDS, tuberculosis, and other diseases that disproportionately affect the world’s poorest people. While at WHO, Dr. Kim led an unprecedented initiative to expand access to HIV/AIDS treatment worldwide. By 2007, the initiative had helped provide lifesaving antiretroviral therapy to more than three million people worldwide and accelerated global efforts to fight other diseases such as tuberculosis and malaria.
While working in Lima, Peru, in the mid-1990s, Dr. Kim helped to develop a treatment program for 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 (MDR-TB) which was the first large-scale treatment of this disease in a poor country. Dr. Kim also spearheaded efforts that were successful in reducing the price of the drugs used to treat this form of tuberculosis by more than 90 percent. Prior to the efforts of Dr. Kim and Partners In Health in Peru, MDR-TB was a death sentence in developing countries. Today, treatment programs for 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 are in place in more than 40 nations around the globe.
♦♦♦
Born in Seoul, Korea in 1959, Jim Yong Kim moved with his family to the United States at the age of five and grew up in Muscatine, Iowa. His father, a dentist, also taught at the University of Iowa, where his mother received her Ph.D. in philosophy. Kim attended Muscatine High School, where he was valedictorian and president of his class and played quarterback for the football team. He graduated magna cum laude with a B.A. from Brown University in 1982. He was awarded an M.D. from Harvard Medical School in 1991, and a Ph.D. from Harvard University, Department of Anthropology, in 1993. He is actively involved in a variety of sports including basketball, volleyball, tennis and golf.
( i , dreamgrow, read the topic about 'Dr.Jim Yong Kim' from the Korean newspaper. He inspired me so i researched and copied his story from Dartmouth University's home Page.
He said to the Korean University students or young people "you do not look up or focus on only a prestige university, first of all ,you consider and service for the poor and alienated people. " Dr. Jim Yong Kim was influenced by Dr. Lee Jong-Wook, who was called 'Asia's Schweitzer.' They had beautiful relationship so i added Dr. Lee Jong -Wook's story a little )
김용 하버드대 교수, 한국인 첫 아이비리그 총장 내정
5세때 美 이민… 개도국 질병퇴치 활동 명성
2006년 타임지 ‘영향력 미국 아이비리그에 첫 한국인 총장이 탄생했다.


다트머스대 재단이사회는 2일 김용(미국명 짐 용 김·49)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사회의료과장을 1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임기는 7월 1일 시작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대 등 미 동부 8개 명문 사립대를 가리키는 아이비리그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계가 총장에 선임된 적은 없었다. 240년 역사의 다트머스대는 작년 6월부터 400여 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선임 작업을 벌여왔다.김 교수는 다트머스대 총장 내정 발표 직후 뉴욕특파원들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5세 때 미국으로 이민왔는데 이제 아이비리그 총장을 맡게 돼 한국 이민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매우 영광스럽다”고 말했다.그는 한국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충고를 묻는 질문에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아시아계 가정이 딱 2가구에 그칠 정도로 낯설었던 미국 중부 아이오와 주 머스커틴으로 이민을 온 김 내정자는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의학 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년 넘게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그는 학자로 머물지 않고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서 에이즈와 결핵 등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 퇴치활동을 주도하며 인도주의적 활동과 국제 의료활동으로도 명성을 쌓아왔다.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으로 임명돼 전 세계적인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확대를 주도했다. 2005년에는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그를 ‘미국의 최고 25인 지도자’로 선정했고, 2006년에는 타임이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았다.김 교수는 ‘앞으로 질병퇴치 활동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 몸을 던져 질병퇴치 등에 나섰지만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차세대들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그는 2일 다트머스대에서 연설을 통해 “누구보다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가장 실질적인 직업인 치과의사로 일했던 아버지는 내게 근면의 미덕을, 철학을 공부한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2006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개발국 의료 지원에 너무 인색하다”며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김용 총장 내정자는△1959년 서울 출생 △1964년 미국으로 이주 △1982년 브라운대 졸업 △1991년 하버드대 의대 졸업 △1993년 하버드대 박사(인류학) △1996년 하버드대 ‘감염질병 및 사회변혁 프로그램’ 공동과장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 △2005년 하버드대 ‘국제보건·사회의료과’ 과장 △2006년 타임, ‘2006년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2009년 3월 2일 다트머스대 17대 총장에 내정




Former Director-General: Dr LEE Jong-wook

LEE Jong-wook was nominated on 28 January 2003 by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s Executive Board for the post of Director-General of the agency and elected to the post on 21 May by the Member States of WHO for a five-year term.
Prior to his work as Director-General, Dr Lee was a world leader in the fight against two of the greatest challenges to international health and development - tuberculosis, and vaccine preventable diseases of children.
Dr LEE Jong-wook, WHO Director-General, died on the morning of 22 May 2006 following a sudden illness.
故 이종욱 박사-金 교수 ‘아름다운 인연’
李 박사 WHO 총장 재직때 WHO 에이즈국장 임명
金 교수 “李박사의 숭고한 삶 내인생에 많은 영향”▼

김용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다트머스대 신임 총장에 내정되면서 그와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사진)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2006년 타계한 이종욱 박사는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의 수장을 지낸 첫 한국인으로 전 세계 빈민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면서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명성을 쌓은 인물.김 교수와 이 박사의 만남도 의료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페루에서 내성결핵 퇴치 활동을 벌였는데, 이때 페루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이 박사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를 만나게 된 것. 젊은 의학도의 봉사정신과 열정을 높이 산 이 박사는 2003년 1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그를 총장 자문관으로 발탁했고, 이듬해에는 WHO 핵심 요직인 에이즈국장으로 임명했다. 이 박사는 뒤늦게 한글을 열심히 배우려는 김 교수의 모습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이 박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혁혁한 성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2006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박사의 숭고한 삶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다.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Tuesday, March 3, 2009

Selecting Paragraph from the book of Creative Nonfiction

Forgetting about Correctness

Grammar, spelling, punctuation. none of these counts in a notebook as long as the writer can read the entries and remember what happened. If others read the notebook, they have no right to ask for clarity, full sentences, or sense. For works -in -progress headed for a public audience, yes. But in a notbook words are private, for the writer only.
In the notebook, we give ourselves permission to play with language in a kind of stream-of -consciousness prose that Peter Elbow calls "free writing" in a headlong , pell-mell rush into unforeseen meaning.

Recording plenty of details
Details, at the heart of all good writing, often fade with memory, so notebook entries need to be filled with specifics that can bring the experience back in all its fullness.

Capturing the small moments
The small moments of our lives- the anomalies the ironies - are often recast in conversation with friends and then forgotten. The notebook preserves them for future use. Even an everyday trip to the supermarket can become a springboard for an essay if you jot down what happened.

i selected above paragraph from Sondra Perl &Mimi Schwartz 'Writing True'
The Art and Craft of Creative Nonfiction

Monday, March 2, 2009

from Korian Drama 'Beethoven Virus'


우리나라에서 성황리에 종료한 베에토벤 바이러스 드라마를
cd 로 보았다 밤을 새서 꼬박 하루 만에 다 보았다 너무 재미 있었다
모두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에 요약을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고 그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을 써보고 싶다
석란시의 시장이 바뀌면서 그 시장은 자기 취임식때 강마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 해주기를 바라고 요구 했다 그러나 강마에는 아첨 할줄 모르는 인품인데 더구나 정치인이 자기 예술을 그렇게 사용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 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장은 이것을 알고 그의 단원들의 생활에대한 어려운 부분을 들고나와 요청을 했다 그래서 강마에는 연주를 하기로 약속을 해주었다
그런데 단원들과 그누구도 취임식 10분 전까지 악보를 받은 사람이 없고 전혀 연습도 없었다 그래서 그 시장 부하들은 난리 했지만 10분전에 악보를 나누어 주며 걱정 하지 마라 했다

취임식이 시작 되었다 강마에가 지휘봉을 들고 지휘 자세를 폈고 사람들은 숨죽인듯이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게 조용히 3분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 연주회는 끝을 맺었다
그 악보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없는 곡이었다
시장은 화가 나서 난리가 났다 시장님 3분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평화 부드러움? 화 욕설 ?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음악 입니다 강마에는 지휘단상을 내려왔다
그후 시장은 가마에와 둘이서 마주 앉았다
강마에가 말했다 시장님 내가 30초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3가지를 답 하시오 그래 무엇을 들었습니까 시장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강마에가 이야기 했다 내가 해 보겠습니다 30 초 후에 강마에는 수도 없는 비전을 이야기 했다 맑은 숲속에 바람이 일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새들이 노래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엄마 아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진을 찍고
그리고 어떤 소녀가 어느집 대문 앞에서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 여러가지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 낭만을 이야기 했습니다
보십시오 시장님 나는 이렇게 많이 들리는데 어찌하여 시장님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미움 증오 욕심 권력 이런 매마른 것들만 보입니까
당신 혼자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괜찮겠지만 당신이 사는 시의 모든 시민들을 그렇게 만들게 될까봐 난 그것이 두렵습니다
하고 강마에는 그 시장 앞을 떠났다
그렇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영혼으로 수도 없이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보고 만질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메마른 사람은 마음과 영혼의 눈이 장님이 되고 귀가 먹어서 암흙 속에 있게 되는 거나 마찬 가지란 것을 느꼈다
이젠 메마른 나에 마음과 영혼과 귀를 잘 훈련하여
아주 많이 그리고 세심하게 아이처럼 잘 듣고 보고 만지고 느껴야 됨을 알았다
( i searched some informations of the drama from wikipedia and then i copied the informationin from Internet to here.
it was so inspired me and it was tremendous popularity in the society and the masses . it was impressed to the people.)
Title: 베토벤 바이러스 / Beethoven Virus
Genre: Romance, drama, comedy
Episodes: 18
Broadcast network: MBC
Broadcast period: 2008-Sep-10 to 2008-Nov-12
Air time: Wednesday & Thursday 21:55
Synopsis
Kang Gun Woo is an orchestra conductor in his 40's. He is an elite workaholic conductor who has a very bad reputation. He is known as someone who will do absolutely anything in order to create the very best music. However, due to his self-righteous and stubborn personality he thinks that only his thoughts are correct which makes him unable to form good relationships with those around him. He meets Du Ru Mi, a violinist, and a trumpet player who has the same name as him, and together they form a love triang
Awards
2008 21st Producers Awards of Korea: Best TV Drama
2008 The 45th Baeksang Arts Awards: Best TV Actor Kim Myung Min
2008 MBC Drama Awards: Grand Prize Kim Myung Min
2008 MBC Drama Awards: Drama of the Year Award
2008 MBC Drama Awards: Male Newcomer Award Jang Geun Suk
2008 MBC Drama Awards: Special PD Award Lee Jae Kyu
2008 MBC Drama Awards: Golden Acting Award - Supporting Actor Park Chul Min
2008 MBC Drama Awards: Golden Acting Award - Mid-level Actor Song Ok Sook
2008 MBC Drama Awards: Writer of the Year Award: Hong Jin Ah and Hong Ja Ram
2008 The 2008 Grime Award: Special Award Song In-hyuk and Hong Sung-wook
2008 The National Assembly Society of Popular Culture & Media Award: Most Popular Drama in 2008
2008 The 9th Broadcaster Awards: Best Performance in Broadcasting Kim Myung Min
2008 The 3rd Korea Drama Festival: Grand Prize Kim Myung Min

Sunday, March 1, 2009

기다림 (In Proper Time)

농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씨를 심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되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흙을 거름지게 하고풀을 메고 땅을 갈아 엎어서
고르고 부드런 좋은 땅으로 먼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시기를 보며 기다렸다가 씨를 뿌린다
그 씨가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싹이 난 후에는 김도 메주고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약도 쳐주어서
추수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모가 아이를 갖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리고
자식이 태어나면 온갖 좋은것으로 다 양육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한다
그래도 어느정도 포기 햇는데 점점 아이가 철이 들기 시작하고 부모 말씀을 순종하고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낸다
그러니 아이가 그렇게 크기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오늘 4살 짜리 아이가 내가 집에 들어 오니 하는 말이 "이모 비 안맞았어 ?했다 " 이때까지
말 안듣고 고집 피워서 때때로 나를 삐지게 했는데 이 한마디가 나를 다 풀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생각 하기를
그래 우리는 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사랑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Saturday, February 28, 2009

꽃 (flower)

꽃 (flower) by Ko, Eyn (Korean poet )

봄이 왔다 해도
봄이 와서 갔다 해도
욧골이나 황골 산사골에는
꽃 하나 없네
그 흔해 빠진 목련도 벚꽂도 없네
( spring has come / even spring is over/ Yon Gol, Hoyong Gol , which is name of place in speaker's hamlet, have no flowers/even a flower is no more there / magnolia and cherry blossom also is not there /)

다행이야 남새 밭에 노란 장다리꽃 있네
이 얼마나 넘치는 기쁨이냐
산 모퉁이 돌자
아 거기에 산싸리 꽃 무더기 피어 있네
그러고 보니 밭 묵은 데
눈꼽같은 냉이꽃 자욱하게 피어 있네
암 피어있네, 피어 있네

fortunately the field of Nam Se, which name of place in the hamlet, has yellow flower stalk /
it is how lucky and precious / let us going around the corner of mountain/ Oh! there is a lot of flowers which unknown name/ so little white flowers are in full densely there/blossom ! sure blossom!/

우리 산사골 꽃구경이야 이로서 족하구만
꽃도 쓸만 한건 다 뽑혀 갔네
서울로 서울로
이나라 산천에서 뽑혀갔네
Have a look over flowers , it is enough to see flowers in our San Sa Gol /
All famous flowers are selected / toward Seoul , toward Seoul/
The most beautiful flowers are uproot from our mountain , hills, and nature.


어디 꽃뿐인가
여자 뿐인가
면사무소 마당 큰 나무 몇구루
그 놈들도
88 올림픽에 어디에 뽑혀 가려고
밑둥돌려 놓았다네

flowers, ladies, and big trees , which is in the office of court in hometown/
all those are selected for the 88' the Korean Olympic/

봄이 와서 갔다 해도
허허 꽃하나 없네
텔레비전만 있네
텔레비전만 있네

spring is over
허허 no more flowers
only have TV
only have TV


( This poem written by a very famous Korean poet, Ko, Eyn. i tried translate in English it is imposible; the sense , emoution , the mood of countryside , the secne of rural in Korea. For me this poem; speaker express the idea, which is idelogy in Korean - maybe this time is from middle of 1960 to 1980 or 1990-. In the result of industral society, natural worth and beauty especially the beauty of countryside is gone. Instead of it only there is
contemporary culture, technique, technoplis , and machine. )

Friday, February 27, 2009

Open Sesame by Joel M Toledo

It could happen that you end up facing a wall,
Thinking yourself cornered and utterly doomed.

It is then that you begin with an absent mind, feeling
Your pockets, all sorts of dark and hidden possessions

brushing against your fingers- crumpled paper,
a pen, some sticky stuff, loose change. It’s fairly fantastic,

This ancient ritual of hide and seek, the awkward fumbling
for the key that is never there. Only that very instant

You notice it: the faint passing of voices, a breeze teeming
with incantations. So that suddenly everything is ready,

that even now the wall is beginning to shudder, ready
to give up its solid, impossible nature. And you sense

that all you need is the uttering of a phrase for entry.
Or a belief in some complex, senseless syntax

That would haunt your dreams after and all of forever,
well into your recurring waking, that spell of magic,

so vivid and so old. You are afraid because the wizard
is not there and the runes are too archaic. But look:

how the stone obliges, grinding and splitting and granting
passage just for you. And let me tell you now

why wings and doors and flowers really open, why
this wall, once non-negotiable, had let you in.

It is because all things want to open, that often
all you need do is ask. So that when. Desperate

And despairing, you had said please, the hard heart
of the stone melted quickly, without much enchantment.

Naturally generous, simply pleased.


When I saw this title, automatically "magic spell"came to my mind and Alabama forty thieves. Cavern in the story open or close by magic word “open sesame”
For me it was clue to understanding this poem; persona met “facing a wall” in the first stanza it means could not open or blocking the way generally it’s mean ‘frustration forward dream’ or people who closed their heart to the other people.
Up to five stanzas, have no key to open forward the wall, frustrate to the dream, and closed heart.

In Six stanza the wall is beginning to shudder; the wall is moving to open but it is still no more open.
Seven stanza, speaker said to ‘you’ try all the ways to open locked the wall or closed heart of the people. Eight and nine stanzas there is no ‘the wizard’ and ‘rune.’

But the speaker said ‘ but look’; how the stone is splitting.
Flowers and nature all things are all ‘open’ but the people don’t like negotiable or open.

In thirteen stanza, really do you want see ‘open’? Then you use and keep “please” if you use it, even people have heard heart like stone but their heart will melt it means ‘ open.’ At lastly the key or magic spell to open is “ please”

This poem ‘ open sesame ‘ for me; if you want open to other people’s of heart, you should be use magic spell “ Please.” Then even the wall or stone and heard heart will be splitting, melt.
Also I had experience, which is I went immigration for my visa extension it was lunch time so went Choking and I ordered as I paid the food, that time casher said me forcedly “ you pay smaller money” that time I closed my heart and would like to pay the biggest money from my wallet, but when I opened my wallet there is small and big money, my finger almost pick the biggest money up but religiously I did not. So truly i agree the magic spell ‘Please’ in this poem. If she used please’ then, my heart was very joyful and helpful for their busy working.

According to the cover of design in this book, ‘chiaroscuro’ I discovered the meaning from Dr. Marj’s forward and Internet.
‘Chiaroscuro’ is light and dark; I saw the poem ‘open sesame’; in my sight open is light and clear but close is dark or secret so these are related to chiaroscuro technique. When I saw cover of this book, light and dark colors were used on the cover of book, it is 17-century technique style to drawing. Also
So I researched that is related this poem, chiaroscuro, this term used drawing in 17 century; chiaroscuro, this term originated from a type of renaissance drawing on
coloured paper, where the artist worked from this base tone towards light and dark. Dr. Marj said us you study what related the poem, so I tried research that it was so interested me.

Thursday, February 26, 2009

I am Yearning for My High School Classmates.

I am writing an event for my requirement.
My topic is related my high school time as i finish the writing, it is touching my heart and I am yearning for my youthhood so I entered Mokpo woman's high school home page it is first time to visit there.

The campus and uniform are changed. But still there is wisteria vine and benches. There is a lot of news not only present students but also alumnae; some graduated students are became a professor in Japan, information of association of the alumnae, meeting time and places, graduated students are successful exam for universities, law and literature etc in 2008. Two of graduated students became judiciaries in 2008.
i thoughts that these news are a little, how many graduated students are working in their professional fields and they are living as an ordinary peoples. with mearningful life. It doesn’t matter, only I yearn for at that time and my classmates in high school.
I want to know for my classmates’ news but I did not discover any news on the homepage in my high school. I will write to my friend who one of my classmate and best friend in high school time.

Wednesday, February 25, 2009

One of High School Student with Piano

She entered our classroom and walked toward the piano, her fingers ran on the piano. Her fingers are white and long, her fingers are seems smooth. Her face is very white and shining long brown hair. If I will put my hands the top of the hair maybe my hands quickly slide down. She came from heaven so maybe she will not go to rest room.
At that time our classroom seems no body in there only melody made by her fingers, flowing in the room. I thought surly I want learn how to play the piano.
After finish play the piano she stood up and greeted us with smile, her teeth were white and canine tooth but it was very quite.

I came back home, Mommy and Daddy “ I want learn piano “ Mommy said we have no money because your elder brother, two younger brothers and, you are students. So how we will support you except schooling. You know the pool family has no chance to learn art. So you must forget it. That is not our world. The art is only for the rich. Mommy said.
I angered to mother’s thoughts so I said “ no Mommy, why we have no chance to learn art? “ “ Mommy! I will show you, your idea is wrong!” immediately mother said “you are young so you do not know money and our society”
I angered to money and my mother so I came out from my house. I walked without mind then already I stood up in front of the store where to sell music instrument in the SM.
I entered the shop and I saw piano’s price, my mouth open and no more shut up. And I asked the owner how much pay a month to learn piano? He answered P 5000 and has lesson two times a week.
I slipped away the shop and wandered. I thought about poverty. My father has no money so I cannot learn piano. I hate money! I hate poverty too! Why my father’s income is not enough for our family. I angered to somewhat but I do not know I am anger to what to whom.
I discouraged deep in my heart and I go back to my daily life after class I went basketball court and I pass over and running with my friends. The sweat all over our body. Everyday I played basketball, did assignment and I draw because one of my favorite is drawing.
Even I played very joyfully but I cannot forget my desire when I heard song, I wanted play piano.

One day I heard the good news from my mother “ our church will buy a big keyboard and teacher will come to teach the people who want to learn play keyboard”
Wou ! Mommy that is for me I will learn, when teacher will come? Next week!
Following day I went to church to see keyboard but not yet come. Somehow I eager to waiting Keyboard, my favorite.

The day, I went church as usually, as I open the door in the church then I surprised the big keyboard already was there. Hi! Keyboard! My dream, and my heart! I close to the lover and sit down in front keyboard and my hands put on the keyboard as if I am already a pianist. And I recalled her, my teacher, and angel

On Wednesday piano teacher came there, she is a foreigner. Her voice was clear and sonorous voice. She is a dimpled face. Some of our church members those who are want learn play keyboard; mothers, high school girls and boys and me. Maybe all members were 10 peoples.
Teacher greeted us “good morning everybody?” I know you are all want learn piano but we have no piano so we will learn keyboard first then someday piano will come us.
Who know how to read musical piece? No body answered. If you want learn keyboard, you should be practice everyday. Can you? We said “yes”.

It was my turn I sit down in front of keyboard with nerves. She teaches me do re mi and also high do re mi fa sol la ti do and how to read musical piece.
Every day I memorized where is do re mi on the keyboard also how to find do re mi on the musical piece. One beat two beat four beat three beat 1/4 beat 1/16 1/8 1/36 all beats.
Rest one beat rest two beat rest ….

Pass the time she gave me many musical pieces when I read music and followed with my fingers but my eyes can read music but my fingers were did not follow the music paper. Sometimes it was discouraged me and I anger to my self. I practiced ten times more or 20 times one music piece everyday. So naturally, I memorized all my assignment. It was interesting me. At first time my finger and brain did not work together but after 20 times practice already my fingers can follow musical piece smoothly and fast It was so exciting so I applied this practice to other subject. At lastly after learn keyboard my entire subject grade were upgrade.
When teacher check up my assignment, that time my memorization was inspired her. So she encouraged my talent. I was so happy. Every Wednesday was my precious day and everyday with play keyboard it was my happy. I realized gold saying, “ Practice makes perfect”

One day I went church as usually for practice and I turn on switch and played keyboard
Oh my God! That was already broken! Oh! No my lover! Even I tried many times my lover already died. As if my breath stopped. So my piano lesson was stopped.

When I second year high school, I explained my first impression about piano and desire to church teacher. The teacher asked me “ do you want really learn piano? Why?” I answered I want learn piano because I want be a music teacher and I want service for Philippine people.
I know that most our people want to learn music and like to singing but many people cannot read and play music. So I want teach music to the people and especially the poor.
Ok so nice vision! I want together with your vision. I will buy keyboard again only for you. And let us talk music teacher who she taught already one years ago.

The music teacher, foreigner came again our church and she is very busy so she cannot teach all peoples. So the pianist came to only for me once a week.
One day the pianist asked me “do you want really be a pianist or piano teacher?”
Yes! I also explained my all hope to her then after listen to my hope she decide ok keyboard is not enough for your practice so you will come once a week my house then you can practice on the piano.

Wou! I catch piano!
Mommy you see even we have no money but I am learning piano and I am going to the art world.
You see mommy! I will be a great pianist in the world. Wait mommy!

Tuesday, February 24, 2009

Go back to the Way

접수하고 다시돌아 가기

이 길은 가려다 그만 두었던 길이었지요
그래서 한번 꼭 가 보고 싶었어요

그 길을 가려고
찾았던 약도를 들고
설내는 맘으로 밤을 새우고
연장을 잔뜩 준비하여
길 을 나섰습니다

마지막 산 하나 나를 가로 막았습니다
가다듬었던 마음
몇길 낭떠러지를 구르다가
잘 자란 소나무에
걸려
기진해 하는데

등반하던 이
한손에 밧줄 한손에 나 를 잡고
그 낭떠러지를 올랐지요
그 산을 마지막 넘어
이제 내가 가고 싶었던 길에
들어 서니
고향에 온듯 평안하고
뭉게 구름 지붕삼아
초원에 누운듯 향기롭고
봄 볕 아래 누운듯 따스하여
온몸과 마음이 센치해 집니다

아 이 길에선 그 분이 그립습니다
그분 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나 뵈며 걷고 싶습니다

나 여기에 와서
그 분과 아주 가까이에 매일 걸어 가고 싶습니다
하늘 맣닿은 거기
그리로 들어가는 여기에서
매일 그분과 걸어 가고 싶습니다

Monday, February 23, 2009

Two Fairy Tales

Still i remember two fairy tales, which i read in the book of elementary in Korea. it was grade 3 and 5. There was two brother's story. at that time just i memorize the story but now i understood the stories what want say.

Sunday, February 22, 2009

THE FASTEST RUNNER

우리 교회의 사람들 중에는 몹시 하고 싶어 하던것을 하는 사람이 5명 있다
두명은 국민학교 4학년 이고 또 두명은 하이스쿨 그리고 한명은 대학생이다

또한 유치부 선생님이 말씀을 가르치면서 기도를 해라 하면서
너희들 각자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봐라 했다
20명 가량 되는데 모두들 옷 먹을것 그리고 장난감을 원했다
그중의 한 6살 먹은 여자 아이가 있는데 자기는 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했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왜냐 하면 모두가 옷 음식 그리고 장난감을 원하는데 그아이만 유독히 잘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니 그것도 6살 짜리 아이가
그래서 우린 다 웃었다

그런데 나도 달리기를 잘한다 내 생각은 벌써 그아이가 마라톤 너가 되어서 세계에서 일등나가지고 상 받는 꿈을 그 시간에 꾸고 있으니 난 얼마나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인가
그런데도 그때 쯤이면 내가 얼마나 늙게 될까 하는 상상은 전혀 없고 나는 지금 그대로 있고 그아이만 달리기를 잘 해서 선수가 되어 있는 모습을 생각 하니 참 아이러니 하다

어쨋든 난 오늘 마라토너에 대한 꿈을 내 가슴에 담아가지고 집에 돌아 왔다

또 다른 아이는 경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태권도를 열심히 배운다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그 아이의 걸음 걸이 눈초리 얼굴 표정이 달라 졌다 아주 생기가 넘치고 활기가 넘친다 멀리서 그아이가 와도 벌써 활활 타오르는 의욕이 느껴진다
우리에게 인사도 너무 잘한다 그리고 코치 선생님을 너무 좋아 한다
항상 그 선생님 옆에 활짝웃으며 의욕에 찬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아이 가 경찰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내면서 부터 난 또 벌써 거기에 가있다
그아이가 훌륭한 경찰이 되어서 나라와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멋진 지도자 끝내는 정계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있는 모습 그래서 누군가 인터뷰를 할때를 상상 한다
조그마한 교회에서 태권도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을 만나서 그 꿈을 이렇게 이루었노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난 벌써 보고 있다
그러니 난 얼마나 달리기르 잘 하는 사람인가

다음은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 아이를 향한 나의 달음질이 또 시작 된다
이 아이는 나에게 이야기 했다 파스토라 내가 국민학교 4학년 이어었어요 어느날 난 우리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면서 아주 멋지게 노래 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래서 전 그때 생각 하기를 나도 피아노를 잘 치고 싶었어요 하고 이야기 했다
난 그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워주고 싶엇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난 기도 하고 또 아는 사람에게 부탁도 많이 해 보았다 그러나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아이는 하이 쿨 2학년이 되었다
어느날 피아니스트가 꿈처럼 나타 났다 그 피아니스트는 너무 바쁜 사람이었으나 그는 주님께서 들려주는 음성을 들었다 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언급 하면서 자기의 자녀 이니 바빠도 가르치라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무료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나는 ㅇ또 벌써 세계의 무대에서 연주하고 지휘하는 모습을 생각 한다 그래서 그가 필리핀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예술을 이루어 갈수 있는 모델이 되고 그 또한 예술과 가난한곳에 다리를 놓아 주는 역할을 하는 큰 인물이 되리라고 생각 한다
그러니 이 또한 얼마나 잘 달리는 선수 이냐
이 모든 일에 난 늙어 있는 모습을 상상 하지 못 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 도 하다
어쨋든 난 현재에 제일 잘 달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