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9, 2009


Kim Yu-na clinches her first World Championship title
Kim Yu-Na took the gold at the 2009 World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on Saturday with an overwhelming victory in the free skate.
The 18-year-old, recording 131.59 points in the free skate of the championship held at Staples Center, Los Angeles, topped the overall standing with 207.71 points. Kim became the first to receive over 200 points in the women's single event.
“To perform this well at the World Championships was my dream," said Kim, who earned 45,000 dollars in prize money. "I did it here and it is just amazing."
''I'm sure the whole globe shook,'' said Kim's coach, two-time Olympic silver medalist Brian Orser. ''The whole country of Korea must be elated.''
Canadian Joannie Rochette registered 191.29 to rank second, while Japanese Miki Ando, the 2007 world champion, finished third with 190.38.
Saturday's win is Kim's first world championship title since she appeared in the senior stage in 2007. She obtained two bronze medals in the 2007 and 2008 world championship tournaments.
Kim, who received a record 76.12 points at the short program on Friday, entered the free skate at the top with an 8.22-point lead over Rochette.
The Four Continents champion skated to Rimskii-Korsakov's "Scheherazade" and earned high marks for her trademark triple flip-triple toe loop combination jump and flawless triple lutz and double axels. She also performed dazzling spins and spirals.
The only blemish was a triple salchow she bailed out on and turned into a single salchow.
Canada's Rochette also skated a superb routine, attempting six triple jumps. She landed all but a triple loop and had another slight wobble on a triple Lutz.
Heading into the Worlds, Japan's Asada was considered Kim's main rival. Kim won the Four Continents Championship last month in Vancouver and Asada won the ISU Grand Prix in South Korea in December.
They had been going head-to-head over the past year but Asada faded in Los Angeles and never really posed a threat to Kim, who just keeps setting the bar higher each time out.
Her rival, Mao Asada of Japan, the 2008 world champion, earned 122.03 points in the long program to come in fourth with 188.09 points. She made a crucial mistake on her second triple axel jump.
''I was thinking about being a champion again, but instead of thinking about that, I needed to have concentrated on completing my elements,'' said Asada, who had clearly been crying.
(from news reports)
2009.03.29
( from the Korean newspaper)

Saturday, March 21, 2009

Connections 이란 책


《14세기에 유럽에서 천을 짜는 직기가 발달하면서 리넨(아마로 만든 직물) 생산량이 증가했다. 리넨 사용이 늘자 예상치 못한 분야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종이 제조업이다. 리넨 넝마는 질긴 고급 종이를 만드는 데 좋은 원료였다. 그 무렵 흑사병의 고통에서 벗어난 유럽에선 무역이 활발해졌고, 계약서를 쓸 일이 많아졌다. 리넨으로 만든 종이는 비싼 양피지를 대체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직기의 발달이 종이 제조업의 번창으로 이어진 것처럼 인류사에서 기술의 발명, 발달은 뜻하지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가 ‘빠른 덧셈을 하는 기계’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예측을 위한 도구’의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비행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가 발달하자 포병 장교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비행기의 속도를 감안해 어느 시점에, 어디를 향해 포탄을 발사해야 하는지 계산하는 일이었다. 포탄의 무게, 바람의 방향과 속력, 포탄의 궤적 등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1940년대 미국 육군은 포병 장교에게 가능한 모든 상황의 조합을 알려주는 포격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더욱 정교한 컴퓨터를 만들었다.》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발명과 발견, 아이디어 및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연결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연결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추적하는 형식으로 기술의 역사를 말하고, 신기술의 등장으로 달라진 인류의 생활사까지 포괄적으로 서술한다.저자는 쟁기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쟁기가 만들어진 근원을 기후 변화에서 찾았다. 기원전 1만 년경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높은 초원 지대의 강수량이 줄어들었다. 초원에서 사냥을 주업으로 하던 방랑자들은 물을 찾아 떠난 짐승들을 쫓아 강가로 내려왔고 농경 생활을 시작했다. 손으로 땅을 파서 농사를 짓던 그들은 인구가 늘면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방법을 찾다가 쟁기를 고안해냈다.저자는 기술의 퇴보도 관련 요인을 통해 설명한다. 13세기 영국에선 1.8m짜리 큰 활이 최고 무기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다. 그러나 마구(馬具)의 발달로 말을 농사에 이용하면서 큰 활은 금세 쇠퇴했다. 말을 이용한 농사는 생산성이 높았고, 말을 타고 멀리까지 갈 수 있어 경작 토지도 증가했다.쓰고 남을 만큼 곡물이 생산되자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주로 일요일에 하던 활쏘기 훈련은 점점 시들해졌고, 궁수가 부족해지면서 큰 활은 자취를 감췄다.전화기의 발명 과정은 개별 기술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획기적인 발명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820년 덴마크인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지 모른다고 추론했다. 영국인 마이클 패러데이는 말굽 모양의 코일 안에 자석을 넣어 코일에 전기를 흐르게 했다. 프랑스인 레옹 스코트는 이와 별도로 소리에서 발생하는 진동으로 막을 움직이는 실험을 했다.스코틀랜드인 그레이엄 벨은 이 3가지 아이디어를 합친 장치를 고안해 냈다. 소리가 막을 건드리면 막과 연결된 도선(導線) 막대가 움직인다. 막대가 움직이면서 생긴 자기장이 새로운 진동을 만들면 연결된 두 번째 막에서 이 진동이 다시 소리로 재생됐다. 저자는 각 주제에 대해 기술사와 인류사를 넘나들며 세세한 부분까지 서술했다. 그 세세함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저자가 정작 말하려는 요지를 놓치고 단순한 기술사 책으로 읽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가 일어나는 터무니없이 우연적인 방식 때문에 오늘 중에 당신이 하는 어떤 일이 결국에는 세계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말한다.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위의 기사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의 내용 처럼 때로 는 과학자들이 발견 하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분야에서 그들 연구의 발명이 나타나곤 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이 어떤 분야에 촛점을 맞추고 보느냐에 따라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이 통합 되어서 나타나는듯 하다 . 예를 들어 난 20대 이후로 문학의 꿈을 뒤로 하고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그 생각을 접은후의 삶의 그 현장에서 어떠한특별한 프리즘이 없었기에 보고 생각 하는 것에 어떤 특별한 통합과 발전이 없었다 그야 말로 색갈이 없는 것이다
이제 중년이 되어서 문학이란 꿈을 다시 꺼내어 이 길에 접어드니 이제 현장에서 만나고 보고듣고 생각 하는 모든것이 문학이란 프리즘 촛점을 가지고 통합 하게 된다 내 머리와 감각은 현장에서의 삶을 가지고 작품이란 열매를 맺으려고 그 생명력이 나의 전 분야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떠한 색갈이 없던 과거도 이제 문학이란 터널을 통과 하여 작품으로 생산되어지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것과 연결 하여서 모든것이 움직이는 것을 알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꿈을 꾸어야 그것에 도달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호랑이를 그려야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이끌어 가는 키 인 것이다
오늘 아침도 학교를 가기 위해 매가 택시를 탔다 모두들 씻고 단장하고 길을 나선듯 하다 어떤 사람이 들어 오면 향수 냄새도 나고 어떤 사람이 차안에 타면 샴프냄새가 아침을 상쾌하게 할때도 있다 오늘 아침엔 긴 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탔다 그 여자는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머리가 젖어 있었다 . 동시에 내가 상상 할수 있는 것은 필리핀 여자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대부분 여기 여자들은 머리를 말리지 않고 샤워 하고 금새 외츨을 해서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일이다
성인 여자의 젖은 머리를 보면 무엇이 먼저 생각 나는지 궁금 하다
나에게 즉시 떠오르는 것은 그여자가 금새 목욕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오고 목욕을 했으니
옷을 입지 않은 모습을 생각 하게 된다 그러니 약간의 섹시함을 풍기게 하는 느낌을 받느다
그다음은 저 여자는 일부러 그 섹시함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머리를 안말린 건가 ? 아니면 날씨가 더워서 필리핀 여자들은 그냥 머리를 안말리고 외출하는 것이 보편화 된것인가? 아니면 그 여자들의 집은 가난 하여 드라이 가 없다든지 있어도 전기세 때문에 사용하지 드라이를 사용하지 않는지 ? 난 여러가지로 궁금증을 가지고 뒤에서 그 여자의 머리를 보면서 간다 어찌하든 같은 여자인 나에겐 시원한 느낌 그리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싱그런 아침을 연상 하게 한다
그리고서 학교에 도착 했다 정원사가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있다 어으때와 같이
잔디를 깍을때 나느 풀냄새는 또한 싱그런 아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난 교실을 향해서 정원을 지나 걷고 있었다 꽂과 작은 나무들의 잎새 위에 금새 정원사에게 샤워를 받고 물망울들이 맺혀 있었다 역시 싱그런 아침 그리고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와 동시에 내 머리 속에는 오늘 아침 그 여자의 젖은 머리를 보면서 느꼇던 감성을 연상 하며 하나로 통일이 되었다
이같은 일은 내가 문학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보여진 프리즘이다 전에는 이런 것들을 보았어도 글을 쓰고 생각 하는것에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이 이러한 감성들을 느끼며 또 그것을 어떻게 시로 만들어 볼까 생각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저녁에는
내가 그 생각과 감성들들 풀어서 글을 써보고 있다 이것은 내가 작가가 되려는 노력을 기울리고 있는 내 인생의 항해 인것이다
결국은 사람이 무슨 생각과 목표를 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나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가
그 꿈을생산해 낼수 있는 수확을 소산 하는 밭이되고 열매를 내는 나무가 되고 색갈이 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문학이란 색갈로 나의 현재를 색칠해보는 것이다 )

Friday, March 20, 2009

작은 텃 밭 ( a vegetable garden)

나는 집안에 있는 작은 화단에 야채를 가꾸기를 좋아 한다 오이도 심어서 따 먹었고 오크라도 심어서 매일 따 먹었다 그리고 이나라 배추를 심어서 국도 끓여 먹고 상추 쌈도 때때로 밥상에 올리곤 했다 밭에서 금새 뽑아온 배추 오이 오크라를 쟁반에 담아와서 씻을때면 기분도 너무 상쾌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고구마를 심었다 몇달이 지나도 실 뿌리 그대로 이고 큰 고구마를 찾아 볼수가 없다 어렸을때 고구마를 캐는 날이면 쟁기가 먼저 앞에 가고 뒤에 밭고랑을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은 즐거히 쫒아 가면서 그 고구마들을 고르곤 햇었다
부드런 흙을 밟는 느낌 그리고 그 큰 고구마들이 줄줄히 땅속에서 나오던 즐거운 기억을 잊을수가 없어서 난 민경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가꾸기를 더 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밭에 ㅊ풀이 우거져 있으면 주님 보시기에 그리고 내 양심에도 그것을 허락 할수가 없다 내가 너무 게으른 사람 같아서 조금만 수고 하면 좋은 것을 만들어 낼수 있다는 생각 땜에
어쨋든 고구마를 심은지 오래 되었지만 수확을 할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꿈속에서 몇번이고 큰 고구마들을 보았었다 사진도 찍고 또 그것을 민경이에게 보여 주려고 소리쳐 부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깨어 보면 여전히 꿈이었다
이제 기다리다 지쳐서 잊어 버렷다

오늘 신문에 보니 오바마 대통령도 백악관에 텃 밭을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유기농 생산물을 먹고 아이들에게도 보인다고 한다 국민학생들이 참석 하게 한다고 한다
그들의 정서와 정신이 나의 마음에 와서 닿는다

요즈음 도시에 사는 부모들도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또 참관 하기 위해서 도시 근교에 텃밭을 만드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아파트에 살지만 자기들의 조그만 텃 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등을 심어서 이웃들과 나누는 즐거운 모습들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많이 보았었다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리운가 보다 나도 더 열심히 텃 밭을 가꾸어서 집안 식구들과 이웃들과 그리고 나의 글에 늘 등장하게 만들어야 겠다

난 복잡한 현대에 살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텃 밭을 만들어 자연의 정서를 느끼고 누리게 할수 있는
작물을 많이 만들어야 겟다고 생각 하며
또 무엇을 심을것인지 생각하고 연구 하고 찾아야 겠다

Tuesday, March 17, 2009

Turning Point at 40 years old


[중년의 터닝포인트]<5>정한진 씨- 미학도에서 요리사로



Before: 프랑스 파리8대학 미학 전공 박사과정 After: 요리사 Age at the Turning Point: 40정한진 교수(47· 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는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내 인생전환은 극적이지 않으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도 했다. 한번 만나만 달라고 졸라 겨우 만난 뒤에도 계속 그는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 자신의 성격을 탓했다.그는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미학 전공 박사과정을 밟던 2002년 진로를 바꿔 요리사가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다. '르 코르동 블뢰' 요리 과정을 수석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요리사로 일했고 지금은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친다.그는 "인생전환은 결코 멋지고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엄혹한 결단"이라면서 "모든 현실적 문제를 다 따져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때 선택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일을 향해 떠나는 행위를 낭만적으로 상상했다면, 현실을 환기시켜주는 그의 말을 기억해둘만 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단, 그 때부터가 더 어렵다." ● 몸을 쓰는 세계에 매혹되다1996년 파리 유학길에 오를 때 그는 부부유학생이었고 딸아이는 만 두 살이었다. 그간 저축한 돈으로 5년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환위기가 터졌다. 1프랑에 150원이던 환율이 340원까지 올랐다. 생각보다 더 빨리 돈이 축나는 상황에서 그는 "내가 정말 공부 체질인가" 회의하기 시작했다."중학생 때부터 미학에 매료됐고 대학에 갈 때에도 부모와 싸워가며 미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랬는데 한국과 달리 어느 누구도 밀어붙이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면서, 내게 과연 학문적 자질이 있는지 심각한 회의가 들었어요.""계속 책상물림으로 사는 게 즐거울까" 자문하던 그의 눈에 요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집에서 유학생들이 모일 때마다 그가 족발, 잡채, 양장피 같은 요리를 척척 해내는 것을 보고 선후배들이 '박사 말고 요리사를 해보라'고들 농담하던 터였다."요리를 배운 적은 없는데 어디 가서 맛있는 걸 먹으면 집에 돌아와 그대로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해서 어머니가 장을 담글 때도 메주 찧고 손질하고 엿기름 곱는 일을 같이 했거든요. 오죽하면 고3때 시험이 내일모레인데 김장을 같이 담갔겠어요. 그게 제겐 자연스러웠어요. 결혼 이후에도 김치는 계속 제가 담갔으니까요."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아내도 반대하지 않았다. '르 코르동 블뢰'의 제과제빵, 요리, 와인 3가지 과정을 동시에 등록해 다니면서 "몸을 쓰는 다른 세계"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길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돌아와 한 달 간 설득 끝에 부모의 허락을 받았다."요리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나이 마흔에 무슨 환상이 있겠어요. 저는 가장이고 잘못하면 가족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불안하지요. 게다가 어떤 일이든 늦게 시작하는 건 절대로 유리한 고지가 아닙니다. 직업을 바꾸면 정말로 죽자 사자 매달려야 해요."● 항로를 바꿔도 갈등의 본질은 여전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가 요리를 배우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내 본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몸을 쓰는 구체성의 세계로 옮겨오니 자신이 오래 속해있던 추상성의 세계에서 해방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그는 9개월 만에 요리 과정을 1등으로 졸업한 뒤 곧바로 파리 레스토랑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며 도제식으로 요리를 배웠다. 아침마다 도마 수십 개와 요리 도구를 제 자리에 배치하고 수십만 마리의 닭 뼈를 씻어 기름 떼고 피 빼고 목욕탕 욕조 크기만 한 냄비에 넣어 육수를 끓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하루에 10여시간 서 있느라 자다가도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고 욕설이 끊이지 않는 거친 주방에서 자식뻘 되는 요리사들에게 욕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배수진을 친 그에겐 물러설 곳도 없었다.6개월 실습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는 강남의 부티크 레스토랑인 '라미띠에'와 '일 마레' 등을 거쳐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해보고 싶은 내 요리가 있는데 자본도 없고 독립의 어려움을 뛰어넘지 못했다"면서 "나는 모험을 피한 셈"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전환을 결심할 때의 갈등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 자신만의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과 생계를 위해 마뜩치 않은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사이에서의 갈등은 이전에 공부할 때 느꼈던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은 인생의 항로를 바꿔도 여전히 맞서야 하는 과제였다.● 삶 속에서 맛과 멋을 통합인생전환 이후 그는 "이전보다 더 오기가 생겼고, 자기 기술에 대한 애착을 갖고 일하는 사람,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요리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토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학 전공자의 해석, 그럴만한 여유는 잃었다.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생애의 경험들이 결국은 통합되어 간다고 느껴지진 않을까. 그는 요리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향신료 이야기'등의 책을 썼다. 미학 공부를 할 때에도 예술품을 미적 대상이라기보다 사회적 산물로 다뤘듯, 그는 음식 역시 문화적 산물이라고 믿는다. "별 볼 일 없는 음식에도 생애의 추억, 개인의 정서가 담겨 있고 시대, 문화를 볼 수 있잖아요. 음식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 작업이 내 삶에서 경험의 통합이라면 통합이겠지요."그는 '맛있다'는 개념을 시골에서 뜬 된장 같은 맛으로 정의했다. 발효식품처럼 기다리는 음식, 느린 삶이 후퇴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맞물려가는 삶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음식문화 개선을 위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슬로 푸드와 연관된 삶을 사는 방식을 현실화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 이기사를 읽고 실감이 났다 무엇인가 자기가 진실로 하고 싶고 좋아 하는 세계로 길을 바꾸어 감에 있어서 겪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고통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길에 들어 섰다고 해서 그 전의 삶이 다 쓸데 없는 쓰레기가 아니라 그 모든 경험과 공부 했던 것이 이제 새로운 안목으로 보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문에서 이야기 하기를 통합 한다는 것으로 이야기 했다 이것이 나에게 참 실감이 난다 이제 나이 40 중반을 넘어서 가는데 좋아 하는 길을 찾았다고는 하나 그 길에서 기초가 너무 부족 하다고 생각 하는데
지나온 삶을 새로운 길에서 새롭게 통합 할때 그것은 하나도 버릴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만 늦게 시작 했으니 엄청난 노력과 훈련 그리고 그 분야의 지식 습득이 보충이 되어야 그 하고자 하는것을 열매로 만들어서 생산 할수 있으리라고 본다 )

Thursday, March 12, 2009

손님 맞이(preparing for welcome to our vistors)

내일은 한국에서 세명의 손님이 온다 그래서 우리집 식구들은 각자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사모님은 4살 된 딸 아이에게 인사를 가르쳤다 " 안녕 하세요 우지용씨? 하고 윙크를 하도록 가르쳤다 민경이는 그대로 흉내를 내었다 얼마나 귀엽고 우스운지 모른다 민경이가 그 연습을 할때 마다 우리는 모두 웃으며 즐거워 한다 그런데 내일 민경이의 아빠 친구 우지용씨가 오면 정말 그대로 인사를 할수 있을지 우리는 모두 의심을 하고 있다
연습은 잘 해도 실제 닥치면 수줍어 하면서 그 인사를 하지 못하고 엄마 뒤로 숨을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난 정원과 마당 청소를 했다 요즈음에 바쁘다고 꽃들에게 물을 주지 못했었다 알로에나 그리고 다른 꽃나무 들이 따가운 햇빛에 말라 있었다 난 꽃들에게 미안 했다
우리집에 나 자신의 꿈으로서 시인인 내가 살고 있는데 자연이 이렇게 메말라 있으니 어떻게 내 영혼과 마음이 우주 만물의 소리를 들을수 있을까 생각하니 시인의 자격이 안된듯 싶었다
내 마음에 생각 하기를 진짜 시인이 살고 있는 집안 분위기는 어떨까?
내가 마당을 쓸고 정리 하는 동안 우리 집 정원은 아주 활기가 넘치고 시들하고 황량 했던 곳이 이제 봄을 맞은듯 여름을 맞은듯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마당과 정원으로 변했다
난 이렇게 항상 주위 사람들과 환경에 생기와 활력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고 싶었다
내가 청소를 할떼 주위에 활기와 생기가 솟아 나고 있음을 느끼며 귀빈이 온다고만 정리 하고 청소 할것이 아니라 늘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 자연 그리고 내 자신에게 이런 활력소가 우리의 주위에 공기가 되고 비가 되도록 해야 겠다고 생각 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사모님은 집안 방정리 옷장 그릇 정리들을 했다
헌옷들도 많이 정리 했고 방안의 가구들도 바뀌고 새로운 메트리스도 샀다 민경이가 좋아 하는 그림이 있는 메트리스다
그래서 집안이 더욱 밝아 졌다
선교사님은 내일 새벽에 시장에 가신다고 한다 식사를 대접 하려고

그들 중에는 국립 예술단에서 창 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는 토요일은 up 대학교에서 창을 하기로
계획이 되 있다 기대가 된다
나도 가서 잘 듣고 느껴서 시로 만들어 내려고 생각 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시를 공부하고 시인의 꿈을 갖다 보니 모든 것을 창작할 목적으로 생각이 움직이고 나의 안목이 글을 창작할 방향으로 보여 진다

Wednesday, March 11, 2009

즐거움과 힘이 있는 사람

나의 친구가 필드 리서치를 갔을때 극진히 도와준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마닐라에 올라 왔다고 했다 정부에서 하는 모임에 참석 하기 위해서였다
호텔 로비에서 얼마를 기다렸다 30분쯤 지나서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그가 왔다 옆에서 나이가 30은 넘어 보이는 긴머리 여자분이 같이 들어 왔다
얼굴은 30이 넘어보이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스처럼 보였다 얼굴이 피곤해 보이고 생기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가 우리에게 인사 했다 그리고 그 여자도 소개 시켜주었다
자기 남동생 여자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 친구 오늘 만난 분의 남동생은 이미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형이 그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도 그 여자는 그것과는 상관 없다는 듯이 이야기 했고 이미 서로 알고 있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아무렇지도 않듯이 공공연히 자기 남자 친구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다
도한번 필리핀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놀랐다

어쨋든 그는 아주 총기 보이는 스포츠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건강한 장년 으로 보였다 친구가 나도 소개 시켜서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 문예창작을 공부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방에 한번 방문 오셔서 글을 쓰세요 그리고 거기에 내 자서전도 조금 넣어 주세요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도 난 글 쓰는 사람의 눈과 귀를 소유했다
어디서든 남의 이야기든 나에 이야기든 난 귀담아 듣고 이미 그자리에서 난 글을 쓰고 있다
그 시간에도 역시 그가 내 친구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글로 옮기도 있었다
그가 이야기 했다 내가 5살때 난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었다 거리서 난 아주 인상에 확들어오는 형믈 만났다 그 형은 멋진 줄바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넙무 좋아서 어린 내 마음에 나도 ㄱ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이 나에 꿈이 되었고 훗날 난 그 이미지를 찾아서 나도 그대로 갖추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난꿈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9년 전에는 내가 그 지방에서 부시장에 출마 했엇다 그런데 난 덜어졌었다
그러나 난 그 때에 그 부시장 자리를 보면서 다음엔 내가 거기에 꼭 앉을 거라고 다짐 ㅇ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는 그 의자에 앉아서 그 일들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한가지 그는 거기에 앉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그 부서에 처음 서류를 낼때에도 자기는 그 많은 서류 중에서 자기가 꼭 될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그 심사 위원들에게 면접 보면서 이야기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묻기를 어떻게 그렇게 될것을 알았냐고 했더니 자기의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고 말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 줍니다
꿈이 네 속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동안에 나에 몸과 마음은 어느새 그의 자신에 차고 신념에 찬 말을 들으면서
그의 힘이 내 마음과 몸으로 서서히 선해 옴을 느끼며 진실고 그의 작은 자서전을 쓰기에 넉넉한 자료와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발견 했다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졀해 졌다
그는 마음에 힘이 있는 사람이어서 우리들이 그의 옆에 있으면 힘이 전해져 오고
그 분위기는 즐거움으로 팔짝 팔작 살아 있음을 느끼고 다시 만나보고 실은 사람으로
내 기억에 담아졌다 난 생각 햇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한국 사람 이야기

Tuesday, March 10, 2009

동아일보 중에서 발췌


영어 말하기대회에서 우승한 ‘국내파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어렸을 때 영어동화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한다. 조기유학 대신 집에서 영어동화책을 읽고, 듣고, 따라 말하며 영어를 배웠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영어동화책 읽기를 지도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언제부터, 무슨 책을,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30년간 미국 정규학교 교사로 일하며 유치원∼8학년까지의 학생들을 가르친 재클린 래드니액 씨(58·사진)를 만나 미국식 영어동화책읽기 지도법을 들었다. 퇴직 후 미국 23개 주에 있는 공·사립학교에 온라인 교육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교육기업 K12에서 일하던 래드니액 씨는 1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세워진 ‘K12 인터내셔널 아카데미’의 교수부장이 됐다. K12 인터내셔널 아카데미는 미국에 가지 않고도 미국 버지니아 주 학위 인증서를 딸 수 있는 온·오프라인 정규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하루 15분 온 가족이 책 읽는 ‘디어(DEAR)’ 시간 가져라○ 언제부터?“생후 한 달부터 영어동화책을 읽어주세요. 언어는 일종의 ‘자극’이라 일찍부터 자주 들려줄수록 효과가 크거든요.”래드니액 씨는 영어동화책 읽어주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부모가 영어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 아기는 영어 단어나 영어 문장을 그대로 따라 말한다. 부모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계속해 듣던 아기가 자연스럽게 옹알이를 하고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자녀가 말을 잘하게 됐다면 영어동화책을 자녀와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자. 부모의 발음을 듣고 따라 말해보면서 자연스레 영어 듣기, 말하기 실력이 자란다. 미국에서는 책을 잘 못 읽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방문해 영어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자원봉사자가 흔하다. 래드니액 씨의 아들도 고등학교 때 이런 자원봉사를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 자원봉사자도 있을 정도다. 영어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 영어로 읽고 쓰는 데도 도움이 된다.직접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지만 발음에 자신이 없는 학부모나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며 쉬고 싶은 학부모라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영어동화책에 딸린 CD를 틀어주거나 영어동화책을 읽어주는 무료 사이트(그래픽 참고)에 올라 있는 플래시 영어동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슨 책을?영어동화책을 고를 때는 아이의 레벨에 맞지 않는 책이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미국 엄마들은 아이가 자기 수준에 안 맞는 책을 골라도 “그건 네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읽어준다.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책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하던 아이도 화려한 삽화를 보고 엄마에게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용까지 이해하게 된다.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책을 읽어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래드니액 씨는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해 같은 영어동화책을 500번쯤 읽어줘도 질릴 줄을 모른다”며 웃었다. 연령대별로 적절한 영어동화책을 참고해도 좋다(그래픽 참조). 취학 전 자녀에게는 최대한 색상이 다채롭고 그림이 많으며 글이 거의 없는 영어동화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 그림을 보며 “이건 무슨 내용인 것 같아?”,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 거 같니?”, “이 장면에 없는 내용을 상상해볼까?”, “네가 이야기를 다르게 바꿔보면 어떨까?” 등의 질문을 던지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게 하면 아이의 상상력이 높아진다. 이런 질문을 던지려면 시리즈물로 된 영어동화책을 사주는 것이 좋다. 한 캐릭터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시리즈물은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초등학생 자녀에게는 교과연계독서를 시키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는 모든 과목 수업시간에 교과서 내용과 동일한 주제의 동화책을 읽는다. 래드니액 씨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아이들은 역사를 가장 싫어하는 과목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역사 시간에는 스페인에 관한 동화책을 읽는 등 교과서 주제에 맞는 오디오 영어동화책을 수업에 적극 활용한다. 이런 식으로 미국 초등학생이 한 해에 한 과목을 통해 읽는 영어동화책이 적어도 10권이다.○ 어떻게 읽힐까?미국 학교에는 ‘디어(DEAR·Drop Everything And Read)’라는 독서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만 되면 청소담당 직원부터 교장까지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읽는다. 하다 못해 잡지를 읽는 등 반드시 뭔가를 읽어야 한다. 미국 가정에서도 이 ‘디어’ 시간을 정해두는 일이 많다. 알람을 켜놓고 15분 동안 모든 걸 정지한 채 책만 읽는다. 텔레비전도 이때는 자동으로 꺼지게 설정해둔다.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따라한다. 매일 반복하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반사 작용처럼 책을 집어 들고 읽게 된다. 가족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북 클럽(독서 모임)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한 달 동안 읽을 책을 정하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각자 독서 감상문을 발표하는 가족 북 클럽을 만들어 참여하는 가정이 많다. 미국 학교가 진행하는 ‘쇼 앤드 텔(Show&Tell)’ 수업을 응용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쇼 앤드 텔은 미국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순서를 정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영어동화책을 학교에 갖고 와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책에 대해 애정이 생기고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래드니액 씨는 “영어동화책을 구하기가 어렵다면 부모들끼리 영어동화책을 서로 교환해 보는 ‘쇼 앤드 텔’ 그룹을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그가 가르치는 반의 학부모 5명도 이런 쇼 앤드 텔 그룹을 만들어 효과를 보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서로의 집에 돌아가며 모인다. 엄마와 아이가 한 조를 이뤄 연극하듯 그날 가져온 영어동화책을 사람들 앞에서 읽어준다.
**이 기사를 읽고서( My impression of this article) ***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4살 짜리 아이가 있다 나도 아이에게 늘 책을 읽어준자면 좋겠다 싶어서
내가 우리 책읽을래 하고 물어보면 곧 그 아이는 그러자고 한다 그래서 책을 가져 오면
결코 읽어주는 책을 수동적으로 듣고 있지 않다 몇분 지나지 않아서 자기가 읽겠다고 한다
아직 책을 읽을줄 모르는데 자기가 선생님 처럼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좋은 동화 책의 내용을 못 읽혀주고 만다 부모님과 읽을때는 곧잘 듣지만 그러나 이 아이의 성품은 워낙 독립적이어서 자기가 수동적으로 받고 있는것을 좋아 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남에게 하기를 좋아하는 능동적인 성품이다 이런 아이는 어떻게 책을 읽혀야 하는지 참 궁금하다어쨋든 미국에서는 이렇게 다른 책읽는 습관이 가정과 학교마다 있다고 하니 놀랍다 나도 창작을 공부 하고 좋아 하다 보니 이런 그룹을 만들어서 책읽고 대화 나누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교회 유치부 아이들과 일주일에 두번 정도 시도 해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새로운 일을 시도 하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은 나에게 즐거운데 꾸준히 할수 있을지가 문제다
아마도 내가 즐거우면 할수 있을 것이다 )

the way of creative writing from newspaper(동아일보 )




《“고등학교 2학년 때 개인 홈페이지에 소설을 연재한 적이 있었어요. 교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상상을 가미한 ‘황당한 스토리들’이었는데 300여 명의 동급생이 매일 접속해 읽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죠. 선생님과 학생 몇 명의 실명을 거론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할 뻔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제겐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됐어요(웃음).”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본명 이선웅·29·사진)는 대표적인 ‘엔터라이터(연예인과 작가를 각각 뜻하는 Entertainer와 Writer의 합성어)’다.》베스트셀러 소설 낸 가수 작가 타블로 “난 이렇게 썼다”사업하는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 미국 홍콩 스위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19세 때부터 3년 동안 미국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썼던 10편의 단편을 모아 자신의 첫 소설책인 ‘당신의 조각들’(달)을 펴냈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책은 넉 달 만에 16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미국 스탠퍼드대 창작문예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타블로는 “자신의 진솔한 생각이 담겨있다면 낙서도 랩도 한편의 시(詩)가 된다”고 말한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는 생각으로 쓰면 ‘글쓰기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놀이’처럼 글쓰기를 즐기게 된다는 게 그의 철학.타블로는 도대체 어떻게 글을 즐기는 사람이 됐을까? 4일 오후 그를 인터뷰했다.○ 셜록 홈스를 흉내 내다


타블로에게 글쓰기는 즐거운 놀이였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작가의 문체와 주인공의 말투를 흉내 내며 모방작품을 쓰곤 했다.일기도 즐기며 썼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죽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밤 꿨던 꿈이나 로봇들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의 장면을 글로 표현했다. 그에게 일기장은 조물주처럼 세상을 마음대로 만들고 움직일 수 있는 마술공간이었던 셈이다.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창작문예반에서 활동한 그는 공상과학 판타지소설 시 수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 이렇게 쓴 글은 감춰두지 않았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초등학교 3학년 때 캐나다의 학교를 다녔는데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친구들과 숱하게 싸웠죠. 하지만 그런 친구들도 제가 쓴 판타지 소설엔 열광했어요. 그 때부터 글쓰기라면 자신이 있었어요.”그에게 글은 장기이자 세상과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窓)이었다.○ 말 대신 글로 수다 떨어라“쉬는 시간에 친구와 수다 떨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할까 고민하지 않잖아요? 글쓰기는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예요. 말처럼. 자꾸만 억지로 꾸미려 하기 때문에 글쓰기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거죠.”타블로는 문법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글은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라고 믿어서다. 문장에 최대한 형용사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떤 글이든 쓰다보면 어휘력과 표현력이 늘기 마련. 글쓰기를 ‘지옥 같은 경험’으로만 여기는 학생들에게 타블로는 말한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를 원고지 대신 활용해보라고.“장르는 상관없어요. 좋아하는 글을 쓰세요. 글쓰기 자체를 즐기다 보면 글 쓰는 실력 자체가 길러져요. 그러면 논술처럼 형식이 정해져 있는 글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잘 쓸 수 있어요.”○ 메모는 ‘정신의 준비운동’타블로는 늘 메모를 한다. 책을 읽을 때나 수업을 들을 때, 그리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쭉 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할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언뜻 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이 메모는 글쓰기를 위한 그만의 ‘준비운동’이다. 그는 치밀한 개요를 세우기보단 이미지와 단어로 구성한 마인드맵을 기초로 글을 쓴다.“책을 읽을 때도 주인공의 이름이나 역사적 배경 같은 ‘사실’은 메모하지 않아요. 대신 나의 생각이나 느낌, 순간 떠오르는 단어, 이미지를 묘사해 놓죠. 그런 다음 메모한 종이를 훑어보며 필요한 내용들을 뽑아내 작사를 하고 글도 만들어 나가요.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타블로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 사람과 사물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그 이미지를 다시 언어로 풀어내 글을 쓴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이런 과정으로 태어났다. “문학시간이었는데 선생님한테서 술 냄새가 났어요. 선생님은 왜 이 시간에 술을 마셔야 했을까? 왜 수업에 늦게 들어오셨을까? 궁금했죠. 그 이유를 상상하다보니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 지더군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와 제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글쓰기가 재미없다고? 원문을 비틀어봐!하긴, 그에게도 글쓰기가 끔찍하게 싫었던 적이 있었다. 타블로는 “글쓰기가 재미없다면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했다.“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작가 에밀리 브론테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고 논문을 제출해야 했어요. 하지만 그들의 책에선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었죠. 너무 하기 싫었지만, 이왕 할 일이라면 재미있게 하자고 생각을 바꿨죠. 책 자체에서 재미를 찾기보단 재미있게 논문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발상을 바꿨다. 왜 이 작가들의 책을 읽어선 안 되는지, 왜 그들의 작품이 재미가 없는지를 매섭게 꼬집는 글을 쓰기로 타블로는 작정했다. ‘그들의 작품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자기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선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더 꼼꼼히, 더 철저히 내용을 분석하며 책을 읽게 됐다.노래가사를 쓸 때도 그는 신화나 성경에 등장하는 비유를 활용하곤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신 ‘제우스’에 맞서다 하늘을 두 어깨로 떠받치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거인 신 ‘아틀라스’, 그의 모습에서 이 시대 아버지들의 고된 자화상을 읽어낸 타블로는 이를 가사로 옮기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과 ‘햄릿’의 주인공 이름이 등장하는 가사도 있다. “음악도 문학도 모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창작물이란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세요. 이 세상에 좋은 글은 없어요. 솔직한 글만 있을 뿐이죠.”:타블로는 누구?:힙합그룹 ‘에픽하이 (Epik High)’의 리더.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DJ로도 활동 중이다. 3월 말엔 에픽하이의 새 앨범과 멤버들의 글이 수록된 책이 함께 묶여 나올 예정. 책 속엔 멤버들이 예술적 영감을 음악이라는 구체적 예술형태로 현실화시키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꿈꾸고 창조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놀이”라는 멤버들의 메시지는 에픽하이의 홈페이지 ‘mapthesoul.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내가 기억 하고 싶은것( Remind myself for the writing from this article)***


( 무엇이든지 글 쓰기를 훈련 하려고 그리고 이글에 나도 동의 하고 또 쓰는데에 비슷한 경험도 해보았다 그러나 난 이 사람에 비하면 아직 글 쓰기 시작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노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creative non fiction 과목의 과제물들의 경험을 통해서 이사람이 말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볼수 있고 즐길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그래서 이시간도 내가 쓰기를 연습한다 내일도 ...)

Sunday, March 8, 2009

동아 일보 기사 중에서 발췌 '신화는 인간을 단련시킨다'

Kim, Yong-ho 'Myth makes the people who is a soldier'
i copied this article from Korean newpaper.
신화 전사를 만들다/김용호 지음/·휴머니스트《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렵고 기댈 곳 없는 시절일수록 역경에 영웅적으로 대처한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법이다. 수천 년 전 신화 속에는 21세기 첨단과학 시대의 사람들도 새겨듣고 힘을 얻을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신화를 주제로 강의했던 저자가 동서양 신화 속에서 찾아낸 인생의 통찰은 전사(戰士)적 삶이다.》신화 속 주인공들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계시나 꿈이 비록 황당할지라도 목표를 실현할 의지로 승화시켰다. 꿈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고 고난의 상황을 회피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사사로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상을 위해 몸을 던졌다.

저자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이 책은 위기가 난무하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신화가 건네는 행동지침서로 읽힌다.신화 속 전사들은 꿈을 삶의 의지와 결합했다. 신라시대 문희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황후가 된 것은 단지 언니의 꿈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신화 속 꿈은 미래에 대한 소망이거나 예측이지만 그 자체로 실현되지 않는다. 서쪽 산에 올라 소변을 봤더니 경주에 소변이 가득 찼다는 꿈은 언니에게는 희한한 꿈 이상은 아니었다. 황후가 되겠다는 문희의 의지와 실력이 꿈과 합쳐져 목표에 대한 비전으로 변한 것이다.전사들은 꿈을 단단히 붙든 뒤에는 결코 놓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 물의 요정 키레네의 아들인 아리스타이오스는 꿀벌을 치는 데 달인이었다. 어느 날 그의 벌 무리가 전멸하자 아리스타이오스는 좌절한다. 어머니는 예언자 프로테우스를 찾아가면 이유를 알 수 있지만 쉽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로테우스를 잡아 사슬로 묶고 이유를 알려줄 때까지 사슬을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테우스는 아리스타이오스에게 잡힌 뒤 불, 강, 무서운 짐승으로 변신하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아리스타이오스는 죽을힘을 다해 사슬을 붙들었고 결국 벌이 죽은 이유를 알아냈다. 저자는 “예언자나 하늘은 해답을 쉬이 알려주지 않으며 쉽게 얻는 대답은 금방 잊혀진다”고 말한다. 전사는 또 고난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극복한다.그리스 신화 티탄족의 여신 레토는 제우스와 하룻밤을 보냈다가 헤라의 분노 때문에 임신한 채 곳곳을 방랑해야 했다. 온유한 그는 방랑 과정에서 겪은 거절, 추방, 모멸 상황에서 화를 내는 대신 온유의 힘을 훈련한 덕분에 해(아폴로)와 달(아르테미스)을 낳아 세상에 선물했다. 저자가 강조하는 전사의 또 다른 덕목은 무엇을 버려야 할지 안다는 것이다.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지혜의 샘을 찾아갔지만 샘을 지키는 거인 미미르는 샘물을 내주지 않았다. 샘물을 마시기 위해 오딘은 한쪽 눈을 내놓아야 했다. 오딘은 기꺼이 눈을 뽑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샘물을 마음껏 들이켰다. 오딘은 애꾸눈 신이 됐지만 눈을 버린 대신 사물의 본성과 진리를 아는 새로운 눈을 얻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극한의 정성을 다하는 것도 전사의 특징이다. 신라 승려로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는 비구가 되기 전인 사미 시절 스승에게서 미륵과 지장 두 성인 앞에서 직접 계를 받으라는 말을 듣는다. 열두 살인 진표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물일곱까지 명산을 다니며 수행했지만 두 보살을 만나지 못한 진표는 절벽에서 몸을 날리고 돌로 몸을 두드리며 참회를 계속했다. 손과 팔이 부러져 땅에 떨어지자 그제야 지장보살이 나타나 계를 받을 수 있었다.저자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라는 측면에서 동서양 신화의 공통 요소를 찾은 ‘신화, 이야기를 창조하다’(휴머니스트)도 함께 출간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사람들의 삶에 귀감과 영향력을 주는 영웅의 이야기를 우리는 좋아 하고 배운다
사람들이 절망하고 불간능하다고 할때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상황을 보이는 그대로를 믿지 않고 오히려 꿈으로 바꾸어서 희망을 만들고 그리고 그 희망을 향해 가는 자가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내가 꾸고 있는 희망의 끈을 절대 놓지 않고
희망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기어히 이루어 가야 겠다고 생각 하며 이 기사를 스크렙 하여 놓고 나자신이 읽으며 힘을 기르려고 한다 )

Saturday, March 7, 2009

Last blog for Assignment

At first time, to write on the blog was so exciting then I was eager to find topics and I tried to apply the principle of writing through learned every non-fiction classes.
Everyday when I woke up, I thought what I will write today? Or in the bed at night what I will write tomorrow?
I realized that through this practice; it makes me more sensitive thinker; my soul of ears always inclined to my mind and heart, and voice of peoples and overheard conversation in the house, in the commutes, news, and other people of stories.
As I practiced to write story, I became speaker in the story because I learned non-fiction, which can write base on true story but can create lie for literary genre. Also I strived to listen through my heart of ears to animal, natures and places.
I look back over my childhood stories and I tried to find the meaning of metaphors through conversation with other people for the writing.

And I must to write everyday I had time or no more time and I was tired or not tired nevertheless, I must to enter on the blog and must to write. It was just like war against writing world.
In the result, I discovered it was very interesting to me so I convinced more my life be a writer. Every day and when I was write, my senses, mind, and my soul of sight were become more sensitive.
It was just like puzzle game so I played with words, clause, and language. And also I discovered the problem, which is my writing through English it was discouraged me but I found good solution through teachers’ advice, ‘you write by your mother language’ because I want be not a English writer but I want be a creative writer. Then, I thought by oneself; ‘I have comfortable language or mother language so I can express freely on my creative writings. So language is no problem to write and no more discouraged me. But I will more study creative writing so I need English but for the writing is no language problem because I have language, which can feel sense and express freely through my mother language.’

Now I am imagine; this practice is like a first learned swim and I am a poor swimmer and I am swimming near the finish line for the swimming exam.
I could not swimming when I was college, swimming was my requirement subject, PE teacher taught us every classes how to swimming but I did not understood, sometimes I was falling down in the deep water so I did not breath for a while, I felt almost die. It was afraid on the water and I drank so much water of the swimming poor.

Teacher explained us for the midterm; ‘I will test all in the deepest water of the swimming poor.’ The length of water was over my head; at that time still I did not floating on the water but it was my requirement. It was so discouraged and afraid to me.
So I asked my friend to help for survive “Min He, who is my friend! Teach me how to swim?” So we went my school and other swimming pool to teach and learn but I could not still.
At last, she taught me; ‘you must inhale the air like fish if you contain air in your chest or mouth and you throw your body on the water. At first time you do not move and wait for your body will be floating on the water and plunge your head into the water.’
So I followed her instruction and at that time, immediately the miracle happened to my body. Wonderful! My body was floating on the water and I moved my hands and feet and I moved on the water like a fish or ship! Wou! That was wonderful for my lifetime.

To write on the blog is like learn to swimming; teacher brought us into the deepest water and he teaches us swimming on the water, where the water of length is over the our height and some are very good swimmer and i am not jet know very well swimming, perhaps no matter what it was very good practice to everyone; discipline own self for writing craft and training to sharpen thinking and sense.It is last day of writing on the blog for assignment, but I will continually write on the notebook and my blog.

Friday, March 6, 2009

Growing Pains

민경이라는 5살 짜리 조그만 여자 아이가 한시도 쉬지 않고 잘 뛰어 놀았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 언니들 오빠들이 다 민경이의 친구 였고 우리집은 늘 아이들의 동산 이었는데 요즈음은 너무 한적하다
늘 아프다고 하고 밖에 나가지도 않고 다리와 팔 그리고 배가 아프다고 한다 무슨 병은 아닌지 참으로 걱정 된다 이런 가운데 민경이는 늘 놀기를 좋아 했으니까 나도 여전히 늘 함께 놀아줄것만 생각 했었다

그러나 민경이는 밖에도 나가지 않으려고 하니 걱정이되어 인터넷을 찾아 보았는데 이런 증상은 주로 성장통이며 5-10살 사이에 흔히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증상이 계속 되면 질병이 오는것일수도 있으니 잘 살펴 보고 병원에 가서 체크도 해보야 한다고 했다

민경이가 아프다고 할때마다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난 인터넷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나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 사람의 전반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 당연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난 처음으로 성장통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도 어렸을 적 몹시 아팠던 기억을 상기해 볼때 아마 나도 그때가 성장통으로 심히 아팠던 때 였다는 것을 지금 알게되었고 그 당시 엄마의 손길과 마음이 생각 났고 이젠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 남았다

성장통은 뼈가 급히 자라는것에 비해 근육이 그 성장에 미쳐 따라가지 못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칼슘이나 단백질 영향 섭취를 잘 해야 하는데 식품으로는 우유 멸치 야채 고기 콩종류 두부 당근 사과 포도 등이 좋다고 한다

난 이것을 보면서 내가 너무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면
그 나이에 대한 특성과 심리적인것 신체적인것 그리고 필요한것들이 무엇인지 늘 공부해서
내가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것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난 옛날 그대로 변화가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젠 또다른 방법의 사랑 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늘 놀아줄것과 그리고 어디에 데리고 가는 것만을 가지고 사랑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 이 아이는 밖에서 놀지 않고 어디 가기도 싫어 하는데 맨날 2-3살적 해주었던 스타일만 가지고 사랑을 한다고 하면 이것은 그 아이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이는 모든 면에서 성장 하는데 난 항상 옛날 2살 3살 때 놀던 방법 을 사용 하려고 하니 이것은 벌써 과거가 되며 낡은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 분명 연구가 필요하고
우리가 누군가 사람을 사랑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많은것을 알아야 하는것이 당연 함을 알았다 이제야 난 이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이며 휴식을 갖도록 도와 주어야 하며 따뜻한
온수로 몸을 맛사지 하여 주어야 한다는 지식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즈음은 멸치 그리고 야채 콩 등의 식단을 좀더 열심히 챙겨 주지만 잘 먹지도 않는다
제발 이것은 민경이 에게 성장통일 뿐이지 절대 다른 질병은 아니것이라 믿고 이 성장통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고 도와 주고 있다
물론 민경이에게 더 지극히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있지만 나도 민경이를 사랑하니 내 스스로 나도 그 아이의 아픔에 안타까워 하며 돕는다
아프다고 울며 몸에 열이 있을때마다 내가 심난해 지며
마음이 다시금 근심에 잠긴다
민경이가 아프다고 말할때 마다
조그만 것이 그 아픔이 얼마나 힘들까 마음 조리며
내 몸이 저려온다


주여
민경이를 제발 도와 주소서
이것은 절대로 질병이 아니고
단지 성장통이며
속히 이 성장통이 지난 후에는
몸이 더욱 튼튼해져서
키가 자라고
마음과 지혜가
더욱 자라서
보다 큰 민경이가 되도록


주님
제발 민경이를 전적으로 도와 주소서
다시금 민경이가 아이들과
매일 즐겁게 뛰어놀며
자기가 좋아하는것들을 더욱 많이 배우며
사랑스럽게 자라나는 모습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우리에게도 씩씩하고 유쾌하게
잘 노는 민경이를
속히 볼수 있는 기쁨을 주소서

Thursday, March 5, 2009

Dr. Jose Antonio Abreu

Born in Valera, Venezuela in 1930, Dr Jose Antonio Abreu pursued a dual career in music and economics. 30 years ago the conductor, composer and economist Jose Antonio Abreu had the vision of combining social work and classical music. Abreu's goal was to tear down elitist structures in music education and make music a fundamental right of all the country's children.
In 1975, he began the work for which founding the Simon Bolivar Symphony Orchestra, and the National Symphony Youth Orchestra. His aims are “ the majority children and juveniles belong to the group, that are most vulnerable and excluded in all of Venezuelan Society.” Participating in the Orchestral movement has made it possible for them to set up new goals plans projects, and dreams,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way of creating meaning and helping them in their day-to-day struggle for better conditions of life through the variety of opportunities that the orchestral movement offers them.
For archiving a unique cultural renaissance, bringing the joys of music to countless disadvantaged children and communities.
Perhaps the most remarkable element about this orchestral System is that it is explicitly oriented towards lower-income social strata. It has been described as "a social movement of massive dimensions, that works using music as the instrument that makes the social integration of different Venezuelan population groups possible and supports the strata with low income."
National Symphony Youth Orchestra, which has given hundreds of thousands of Venezuelan children of low-income families access to music and education that improves their lives. All of this is help to create a positive self-image, a strong self-esteem a sense of confidence. And his efforts have inspired similar initiatives in other Latin American countries."
.

Wednesday, March 4, 2009


Visionary leader
Jim Yong Kim, M.D., Ph.D., has been elected the 17th President of Dartmouth by the College's Board of Trustees. Ed Haldeman '70, Chair of the Board, announced the appointment on Monday, March 2. Dr. Kim, 49, will take office on July 1, 2009. He will succeed James Wright, who previously announced that he is stepping down after 11 years as President of the College in June. "As a leader in the field of global health, Jim has helped to transform efforts to bring health care to the world's poor," Haldeman said.


Biography of Jim Yong Kim, M.D., Ph.D.

Dr. Jim Yong Kim, an internationally recognized physician and humanitarian and an accomplished educator and anthropologist, will become the 17th president of Dartmouth College on July 1, 2009.
Dr. Kim, 49, has had a profound impact on a wide range of organizations throughout his distinguished career, including, among others, the Harvard Medical School,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and Partners In Health, a non-profit organization that supports health programs in poor communities worldwide. He is widely respected for his leadership in the fight against HIV/AIDS, tuberculosis and other diseases.
Dr. Kim’s academic, humanitarian and global health work has earned him widespread recognition. He was awarded a MacArthur “Genius” Fellowship in 2003; was named one of America’s 25 “Best Leaders” by US News & World Report in 2005; and was selected as one of TIME magazine’s “100 Most Influential People in the World” in 2006. Dr. Kim is married to Dr. Younsook Lim, a pediatrician at Children’s Hospital Boston. The couple have two young sons.
Experienced and Visionary Leader
Dr. Kim brings to Dartmouth more than two decades of successful leadership experience at leading U.S. and global institutions. He is currently Chair of the Department of Global Health and Social Medicine at Harvard Medical School; Chief of the Division of Global Health Equity at Brigham and Women’s Hospital in Boston, a major Harvard teaching hospital; and Director of the François-Xavier Bagnoud Center for Health and Human Rights at the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He also currently leads a new Harvard University-based initiative in Global Health Delivery designed to discover and widely share knowledge about the effective implementation of health programs in poor communities.
Prior to holding these positions, Dr. Kim was appointed Director of the HIV/AIDS department at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in March 2004. He had previously served as Advisor to the WHO Director-General. As the head of WHO’s first major effort to promote treatment for AIDS patients worldwide, Dr. Kim oversaw all of WHO’s work related to HIV/AIDS, focusing on initiatives to help developing countries scale up their treatment, prevention, and care programs.
Dr. Kim also was a founding trustee and the former executive director of Partners In Health, which supports a range of health programs in poor communities in Haiti, Peru, Russia, Rwanda, Lesotho, Malawi and the United States. He co-founded the organization in 1987 with Dr. Paul Farmer and other colleagues while they were students at Harvard Medical School, and he continues to serve on its Board.
Committed and Accomplished Educator
Dr. Kim has been committed to educating young people since his first teaching experience more than 20 years ago at Harvard University. Since that time, he has taught undergraduate and graduate courses in anthropology, social analysis, social medicine, and global health.
Dr. Kim currently holds appointments as Professor of Medicine and Social Medicine at Harvard Medical School and as François-Xavier Bagnoud Professor of Health and Human Rights at the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In 2004, in recognition of his outstanding professional achievements and commitment to service, Dr. Kim was elected to the Institute of Medicine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 one of the highest honors in the fields of health and medicine.
He has published widely over the past two decades—authoring or co-authoring articles for leading academic and scientific journals, including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Lancet and Science, among others. He also has contributed to books on topics ranging from the global impact of drug-resistant tuberculosis to the inequality of medical access for the world’s poor.
Internationally Recognized Humanitarian and Anthropologist
Dr. Kim is renowned for his leadership in the global fight against HIV/AIDS, tuberculosis, and other diseases that disproportionately affect the world’s poorest people. While at WHO, Dr. Kim led an unprecedented initiative to expand access to HIV/AIDS treatment worldwide. By 2007, the initiative had helped provide lifesaving antiretroviral therapy to more than three million people worldwide and accelerated global efforts to fight other diseases such as tuberculosis and malaria.
While working in Lima, Peru, in the mid-1990s, Dr. Kim helped to develop a treatment program for 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 (MDR-TB) which was the first large-scale treatment of this disease in a poor country. Dr. Kim also spearheaded efforts that were successful in reducing the price of the drugs used to treat this form of tuberculosis by more than 90 percent. Prior to the efforts of Dr. Kim and Partners In Health in Peru, MDR-TB was a death sentence in developing countries. Today, treatment programs for 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 are in place in more than 40 nations around the globe.
♦♦♦
Born in Seoul, Korea in 1959, Jim Yong Kim moved with his family to the United States at the age of five and grew up in Muscatine, Iowa. His father, a dentist, also taught at the University of Iowa, where his mother received her Ph.D. in philosophy. Kim attended Muscatine High School, where he was valedictorian and president of his class and played quarterback for the football team. He graduated magna cum laude with a B.A. from Brown University in 1982. He was awarded an M.D. from Harvard Medical School in 1991, and a Ph.D. from Harvard University, Department of Anthropology, in 1993. He is actively involved in a variety of sports including basketball, volleyball, tennis and golf.
( i , dreamgrow, read the topic about 'Dr.Jim Yong Kim' from the Korean newspaper. He inspired me so i researched and copied his story from Dartmouth University's home Page.
He said to the Korean University students or young people "you do not look up or focus on only a prestige university, first of all ,you consider and service for the poor and alienated people. " Dr. Jim Yong Kim was influenced by Dr. Lee Jong-Wook, who was called 'Asia's Schweitzer.' They had beautiful relationship so i added Dr. Lee Jong -Wook's story a little )
김용 하버드대 교수, 한국인 첫 아이비리그 총장 내정
5세때 美 이민… 개도국 질병퇴치 활동 명성
2006년 타임지 ‘영향력 미국 아이비리그에 첫 한국인 총장이 탄생했다.


다트머스대 재단이사회는 2일 김용(미국명 짐 용 김·49)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사회의료과장을 1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임기는 7월 1일 시작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다트머스대 등 미 동부 8개 명문 사립대를 가리키는 아이비리그에서 지금까지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계가 총장에 선임된 적은 없었다. 240년 역사의 다트머스대는 작년 6월부터 400여 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선임 작업을 벌여왔다.김 교수는 다트머스대 총장 내정 발표 직후 뉴욕특파원들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5세 때 미국으로 이민왔는데 이제 아이비리그 총장을 맡게 돼 한국 이민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매우 영광스럽다”고 말했다.그는 한국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충고를 묻는 질문에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만 열심히 할 게 아니라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아시아계 가정이 딱 2가구에 그칠 정도로 낯설었던 미국 중부 아이오와 주 머스커틴으로 이민을 온 김 내정자는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의학 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년 넘게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그는 학자로 머물지 않고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서 에이즈와 결핵 등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 퇴치활동을 주도하며 인도주의적 활동과 국제 의료활동으로도 명성을 쌓아왔다.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으로 임명돼 전 세계적인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확대를 주도했다. 2005년에는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그를 ‘미국의 최고 25인 지도자’로 선정했고, 2006년에는 타임이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뽑았다.김 교수는 ‘앞으로 질병퇴치 활동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내 스스로 몸을 던져 질병퇴치 등에 나섰지만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차세대들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그는 2일 다트머스대에서 연설을 통해 “누구보다 부모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가장 실질적인 직업인 치과의사로 일했던 아버지는 내게 근면의 미덕을, 철학을 공부한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2006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저개발국 의료 지원에 너무 인색하다”며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도 눈을 돌렸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김용 총장 내정자는△1959년 서울 출생 △1964년 미국으로 이주 △1982년 브라운대 졸업 △1991년 하버드대 의대 졸업 △1993년 하버드대 박사(인류학) △1996년 하버드대 ‘감염질병 및 사회변혁 프로그램’ 공동과장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 △2005년 하버드대 ‘국제보건·사회의료과’ 과장 △2006년 타임, ‘2006년 세상을 변화시킨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2009년 3월 2일 다트머스대 17대 총장에 내정




Former Director-General: Dr LEE Jong-wook

LEE Jong-wook was nominated on 28 January 2003 by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s Executive Board for the post of Director-General of the agency and elected to the post on 21 May by the Member States of WHO for a five-year term.
Prior to his work as Director-General, Dr Lee was a world leader in the fight against two of the greatest challenges to international health and development - tuberculosis, and vaccine preventable diseases of children.
Dr LEE Jong-wook, WHO Director-General, died on the morning of 22 May 2006 following a sudden illness.
故 이종욱 박사-金 교수 ‘아름다운 인연’
李 박사 WHO 총장 재직때 WHO 에이즈국장 임명
金 교수 “李박사의 숭고한 삶 내인생에 많은 영향”▼

김용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다트머스대 신임 총장에 내정되면서 그와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사진)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2006년 타계한 이종욱 박사는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의 수장을 지낸 첫 한국인으로 전 세계 빈민들을 위해 의료봉사를 하면서 ‘아시아의 슈바이처’라는 명성을 쌓은 인물.김 교수와 이 박사의 만남도 의료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그는 1990년대 중반 페루에서 내성결핵 퇴치 활동을 벌였는데, 이때 페루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이 박사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를 만나게 된 것. 젊은 의학도의 봉사정신과 열정을 높이 산 이 박사는 2003년 1월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그를 총장 자문관으로 발탁했고, 이듬해에는 WHO 핵심 요직인 에이즈국장으로 임명했다. 이 박사는 뒤늦게 한글을 열심히 배우려는 김 교수의 모습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이 박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혁혁한 성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는 2006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박사의 숭고한 삶이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다.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Tuesday, March 3, 2009

Selecting Paragraph from the book of Creative Nonfiction

Forgetting about Correctness

Grammar, spelling, punctuation. none of these counts in a notebook as long as the writer can read the entries and remember what happened. If others read the notebook, they have no right to ask for clarity, full sentences, or sense. For works -in -progress headed for a public audience, yes. But in a notbook words are private, for the writer only.
In the notebook, we give ourselves permission to play with language in a kind of stream-of -consciousness prose that Peter Elbow calls "free writing" in a headlong , pell-mell rush into unforeseen meaning.

Recording plenty of details
Details, at the heart of all good writing, often fade with memory, so notebook entries need to be filled with specifics that can bring the experience back in all its fullness.

Capturing the small moments
The small moments of our lives- the anomalies the ironies - are often recast in conversation with friends and then forgotten. The notebook preserves them for future use. Even an everyday trip to the supermarket can become a springboard for an essay if you jot down what happened.

i selected above paragraph from Sondra Perl &Mimi Schwartz 'Writing True'
The Art and Craft of Creative Nonfiction

Monday, March 2, 2009

from Korian Drama 'Beethoven Virus'


우리나라에서 성황리에 종료한 베에토벤 바이러스 드라마를
cd 로 보았다 밤을 새서 꼬박 하루 만에 다 보았다 너무 재미 있었다
모두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에 요약을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고 그중에 기억에 남는 부분을 써보고 싶다
석란시의 시장이 바뀌면서 그 시장은 자기 취임식때 강마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 해주기를 바라고 요구 했다 그러나 강마에는 아첨 할줄 모르는 인품인데 더구나 정치인이 자기 예술을 그렇게 사용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 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시장은 이것을 알고 그의 단원들의 생활에대한 어려운 부분을 들고나와 요청을 했다 그래서 강마에는 연주를 하기로 약속을 해주었다
그런데 단원들과 그누구도 취임식 10분 전까지 악보를 받은 사람이 없고 전혀 연습도 없었다 그래서 그 시장 부하들은 난리 했지만 10분전에 악보를 나누어 주며 걱정 하지 마라 했다

취임식이 시작 되었다 강마에가 지휘봉을 들고 지휘 자세를 폈고 사람들은 숨죽인듯이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게 조용히 3분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 연주회는 끝을 맺었다
그 악보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없는 곡이었다
시장은 화가 나서 난리가 났다 시장님 3분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평화 부드러움? 화 욕설 ?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음악 입니다 강마에는 지휘단상을 내려왔다
그후 시장은 가마에와 둘이서 마주 앉았다
강마에가 말했다 시장님 내가 30초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3가지를 답 하시오 그래 무엇을 들었습니까 시장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강마에가 이야기 했다 내가 해 보겠습니다 30 초 후에 강마에는 수도 없는 비전을 이야기 했다 맑은 숲속에 바람이 일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새들이 노래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엄마 아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진을 찍고
그리고 어떤 소녀가 어느집 대문 앞에서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 여러가지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 낭만을 이야기 했습니다
보십시오 시장님 나는 이렇게 많이 들리는데 어찌하여 시장님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미움 증오 욕심 권력 이런 매마른 것들만 보입니까
당신 혼자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괜찮겠지만 당신이 사는 시의 모든 시민들을 그렇게 만들게 될까봐 난 그것이 두렵습니다
하고 강마에는 그 시장 앞을 떠났다
그렇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영혼으로 수도 없이 아름다운 것을 느끼고 보고 만질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메마른 사람은 마음과 영혼의 눈이 장님이 되고 귀가 먹어서 암흙 속에 있게 되는 거나 마찬 가지란 것을 느꼈다
이젠 메마른 나에 마음과 영혼과 귀를 잘 훈련하여
아주 많이 그리고 세심하게 아이처럼 잘 듣고 보고 만지고 느껴야 됨을 알았다
( i searched some informations of the drama from wikipedia and then i copied the informationin from Internet to here.
it was so inspired me and it was tremendous popularity in the society and the masses . it was impressed to the people.)
Title: 베토벤 바이러스 / Beethoven Virus
Genre: Romance, drama, comedy
Episodes: 18
Broadcast network: MBC
Broadcast period: 2008-Sep-10 to 2008-Nov-12
Air time: Wednesday & Thursday 21:55
Synopsis
Kang Gun Woo is an orchestra conductor in his 40's. He is an elite workaholic conductor who has a very bad reputation. He is known as someone who will do absolutely anything in order to create the very best music. However, due to his self-righteous and stubborn personality he thinks that only his thoughts are correct which makes him unable to form good relationships with those around him. He meets Du Ru Mi, a violinist, and a trumpet player who has the same name as him, and together they form a love triang
Awards
2008 21st Producers Awards of Korea: Best TV Drama
2008 The 45th Baeksang Arts Awards: Best TV Actor Kim Myung Min
2008 MBC Drama Awards: Grand Prize Kim Myung Min
2008 MBC Drama Awards: Drama of the Year Award
2008 MBC Drama Awards: Male Newcomer Award Jang Geun Suk
2008 MBC Drama Awards: Special PD Award Lee Jae Kyu
2008 MBC Drama Awards: Golden Acting Award - Supporting Actor Park Chul Min
2008 MBC Drama Awards: Golden Acting Award - Mid-level Actor Song Ok Sook
2008 MBC Drama Awards: Writer of the Year Award: Hong Jin Ah and Hong Ja Ram
2008 The 2008 Grime Award: Special Award Song In-hyuk and Hong Sung-wook
2008 The National Assembly Society of Popular Culture & Media Award: Most Popular Drama in 2008
2008 The 9th Broadcaster Awards: Best Performance in Broadcasting Kim Myung Min
2008 The 3rd Korea Drama Festival: Grand Prize Kim Myung Min

Sunday, March 1, 2009

기다림 (In Proper Time)

농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씨를 심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되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흙을 거름지게 하고풀을 메고 땅을 갈아 엎어서
고르고 부드런 좋은 땅으로 먼저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시기를 보며 기다렸다가 씨를 뿌린다
그 씨가 싹이 나기를 기다리고 싹이 난 후에는 김도 메주고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약도 쳐주어서
추수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모가 아이를 갖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리고
자식이 태어나면 온갖 좋은것으로 다 양육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어려서 그런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한다
그래도 어느정도 포기 햇는데 점점 아이가 철이 들기 시작하고 부모 말씀을 순종하고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낸다
그러니 아이가 그렇게 크기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오늘 4살 짜리 아이가 내가 집에 들어 오니 하는 말이 "이모 비 안맞았어 ?했다 " 이때까지
말 안듣고 고집 피워서 때때로 나를 삐지게 했는데 이 한마디가 나를 다 풀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생각 하기를
그래 우리는 다 때를 기다려야 하는 사랑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