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행사가 fath academy 에서 열리는데 선교사님이 가르치는 사물놀이 팀이 초대를 받아 갔다 그래서 나도 같이 동행 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세워진 학교인데 지금은 많은 세월이 지나서 여러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거기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학생들의 부모는 선교사 그리고 일반 가정의 자녀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 학교는 안티폴로 가는길 vally golf 라는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가 없는 집 자녀들은 그 학교에 다니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것도 그러거니와 학비가 보통 학교에 비해 좀 비싸니 차가 없을정도로 경제력이 안되는 집의 자녀들은 당연히 그 학교에 다닐수가 없겠다 싶었다
숲속에 있기 때문에 학교주위의 공기는 신선하고 학교에서 내려다 보면 필리핀 마닐라 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 여러나라 별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필리핀 국기가 꽂아 있는 코너에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준비 하고 있음이 보였다 벽에는 예쁜 장식을 달고 아이스크림 장사도 무료로 주문 했고 판싯 케익 그리고 많은 종류의 필리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미국 음식은 어떤거나 하고 가 보았더니 파스타 종류가 많았고 과일도 있었다 많이 있는 것중에 피자 비슷한 것과 여러가지를 고기와 해물을 넣어서 만든 볶은 밥
그리고 한국은 김치 김밥 그리고 팥죽이 있었으나 제일 정성이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 주 메뉴인 불고기와 잡채 떡도 없고 더욱기 장식은 더욱이 없고 부채와 코리아 라는 글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데 너무 썰렁해서 참 맘이 좋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사물놀이 팀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스케줄 소식을 들었고 어디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지 장소를 보게 되었다 공연 시간은 식사 시간 그리고 장소는 리셉션을 차려놓은 홀에서 하기로 되어있고 무대는 없이 그냥 바닥에서 하는걸로 되어있었다
단원들은 어처구니 없는 그들의 준비에 좀 놀래고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정도의 수준인가 하고 그공연을 바닥에서 그리고 남들이 밥 먹고 즐기는 시간에 할것인가가 그들의 갈등이었고 고민 이었다
예술가의 자존심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다고 했다
지도 하는 선생님도 단원주에 한국 무용과 창을 하시는 분을 생각 하니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지만 단원들은 선생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 자기들 표현을 했다 “우리는 괜찮으니 우리 환경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맘것 우리의 문화를 가지고 즐기며 사람들에게 보여 줍시다” 하고 의견을 전달해서 선생님은 그내용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회원 중에 자녀들이 거기에서 공부를 함으로 그 회원의 소개로 초대를 받았으니 그 회원의 얼굴을 보아서 공연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금새 모든 언짢은것들을 털어 버리고 밝고 즐겁게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그러는 가운데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거기도 역시 무대가 없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스코틀렌드 falkdance 를 선보였다 그리고서 다시 오디언스중에 참가 하고자 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모두 함께 즐겼다 그 행사의 취지를 알수가 있었다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을 만끽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알고자 하는 뜻이 청중인 나에게 전달되어왔다
그리고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오디언스 중에 다른 나라 사람끼리 짝을 지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짝을 찾아서 앞으로 나갔다 난 즐겁긴 하지만 항상 무언가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히 거기에 동참 할 수가 없어서 구경만 했다 그 사회자는 점점 그룹을 섞었다 세명이서 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 그룹을 만들어라 이렇게 계속 하여 9명까지 만들어서 한그룹에 9개의 나라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고 우승한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작 했다 ‘너의 나라의 가장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냐 였다 ‘
어리지만 똑똑 하게 잘들 대답한 사람도 있지만 쭈삣 쭈삣 대답을 못하고 자기나라와는 상관도 없는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다 이 필리핀이란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살고 있지만 자기 나라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그 한마디만 가지고도 알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겐 외국 생활에서 부모의 철학과 부모의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다음은 식사시간이 되어서 모두 홀안으로 들어 왔고 우리 사물놀이와 한국 무용 그리고 창의 순서가 되었다
한국 춤이 시작 되었다 한국 춤을 추시는 분은 한국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한 분인데 지금(주부가 된지 20년이 다됨) 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춤을 추신다 ‘마음은 하늘을 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은다고 했다 ‘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늙어간다는 흔히 있는 우리 말이리라 생각 했다
손 과 발 동작 그리고 급히 돌기고 하고 천천히 돌기도 하고 가볍게 뛰기도 하고 사뿐히 뛰기도 햇다 이 모든 동작들과 리듬이 한복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또한 무용수의 몸매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 서양춤과는 달랐다
모든 감성과 열정과 뜻과 우리나라 조상들의 한이 동작과 얼굴 표정 손짓 몸짓 속에 있으면서도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표현되고 있음을 느꼈다
가늘고 가냘픈 손끝의 떠림은 종달새가 나무 가지에서 날개 짓 하는듯 하고 그 속에 우리 조상들의 그리움과 아픔의 흐느낌이 있는듯 했다 그러다가 휙돌아 가슴을 조이는듯한 자태는 독수리가 먹이를 휙 물어채고 비행함과 같고 짥은 박자 긴 박자 그리고 사뿐히 뛰고 내려와 앞으로 갈 듯 다시 뒤로 돌아서는 걸음은 자기의 뜻을 쉽게 나타내지 않은 옛날 여인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귀엽고 앙징스런 아기의 모습과 같았다 무용수는 한복속에서 감추어진 리듬을 타고 밟는 육체는 우리의 한과 그 한이 승화된 조상들과 서민들의 마음이 춤속에 녹아진듯 했고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나타나는 듯 했다
고난을 몸으로 노래하며 승리한 승화가 빙빙돌기도 하고 휙돌며 또 사뿐히 뒤는 정열을 통하여 우리에게 한국인의 얼을 이야기 해주는듯 했다
그 다음은 창이 시작되었는데 서민들과 이웃들 그리고 어쩌면 양반들의 평화로히 자연과 하나 되어 인생을 즐기려는 풍류가 ‘뱃노래’ 에서 묻어나왔다
포수가 비둘기를 잡으려 할 때 노래하는 자는 자신을 비둘기에 비유해서’자기의 님을 잃은 서러움을 토해 내었다 ‘ 저건너 저 관솔 밭에 슬슬 기는
저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 나와 같이 님을 잃고 헤메노나’
나는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장구를 치면서 노래부르던 모습이 생각 났다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엄마는 장구를 메고 노래하던 그 모습이 어렸을때는 참 싫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즐거운 풍류 였는지 그 멋과 맛을 이제 깊이 느끼고 내 마음과 몸에서도 그 흥이 동화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하며 나도 북을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솔솔 일어났다
저번에도 사물놀이 선생님의 선배가 여기를 방문 했었다 그는 국립 예술단 에서 창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창을 들으니 오장 육부와 온 정신과 마음과 고뇌에서 우러 나오는 듯한 노래 였다
그의 노래 가락은 마치 긴 루프에 잘잘한 매듭이 맺혀져 있듯이 마디 마디 깊은 장에서 목에서 흘러나오고 때로는 매듭을 푸는듯 했다 그 창의 가사들은 우리들의 오장 육부와 가슴과 머리에 쏘나기를 시원히 쏟아 부은듯 해서 온신심이 샤워 하고 난 다음 처럼 개운해지고 시원했다
우리나라의 창이 이렇듯 깊고 깊은 맛이 있고 온몸을 음률과 가사로 씻어 내려주어서 속이 후련하고 심신이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다음은 사물놀이가 시작 되었다 박자와 리듬이 사람들의 흥을 매료시키었다 넓은 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사물놀이에 귀를 기우리더니 나중엔 모두가 숨을 죽인듯 조용하고 그 연주에 빠져 들엇다 그 홀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별히 노랑 머리 파란 눈을 가진 장정들의 얼굴엔 신비한 음악에 웃음과 환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 그 사물놀이의 박자와 리듬의 힘은 엄청난 것임을 그 청중들과 나 자신의 감흥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 아쉬운듯이 끝이 났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잘 들었다고 기쁘고 좋고 즐겁다고 연주자들에게 와서 정중히 표현 했다 그런한 관객들은 또한 기쁨과 즐거움의 공연과 행사를 같이 만들어 내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 중의 미국 할머니가 있었다 그의 명찰을 아주 특이해서 기억에 생생 하다 그녀는 I am American but in my heart a Filipina 이렇게 써있었다 난 그 명찰을 보면서 저 할머니가 얼마나 필리핀을 사랑하고 좋아 하는지를 단번에 알아 볼수가 있었다
사물놀이 한국 춤 그리고 우리의 창이 이 사막과 같은 이민 생활 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민족정신 한국인의 얼 그리고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더없이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문화 연구 회가 크게 발전하고 자리를 확고히 하여 이 필리핀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가치 그리고 정신과 예술을 을 바로 알리고 필리핀에 있은 후세들에게 자기 아이덴티티를 심어주어서 세계에서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이 없도록 일조를 할수있다는 장래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이일은
반드시 여기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새삼 느꼈다
특히 요즈음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자기나라의 문화 정신 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확한 확신이 없이는 세계의 넓은 바다에서 정처 없이 헤메고 떠다니는 나뭇잎과 같고 우뚝히 설수가 없다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빛이 되기위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 이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나라 말과 문화 정신 얼을 다 확실히 소화하고 영어도 잘하고 실력이 좋은 전문인이 세계의 정상에서 남의 문화와 예술도 존중하고 그래서그것을 잘 조화해 내는 인물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리라고 본다 아마도 세계가 오바마를 좋아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일것이라고 본다
그역시 청소년 시절에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자기는 흑인임을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나니 그때 이후부터 삶의 힘과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필리핀을 사랑하는 한 외국인으로서 장래의 모든 희망을 후손들에게 걸어 본다.
‘우리의 후손들 필리핀에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자기의 것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가진 재능들을 마음껏 키워 나가길 바라며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본다 ‘
Thursday, April 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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