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인풀루엔자가 세계각국으로 퍼져 가는가운데 걱정이 된다 지구는 일일권이 되었고 모든 물자들이 왜국에서 자국에서 수입과 수출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아침에 뉴스를 보니 더 많은 환자가 늘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숫자가 사망했다
음식에 위험이 있다면 안 먹으면 되는데 음식과는 상관 없이 공기를 통한 바이러스에서 감염 된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감염이 되니 얼마나 급한 상황인가
이런 가운데 오늘 아침 신문에서 왜 이런 질병이 생기게 되었는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결국은 인간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난 전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은 많은 생산을 이끌어 내기 위해 동물을 사육 하는데에도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넣어 놓고 그들에게 자연적 먹이를 먹이지 않고 만든 사료를 먹여서 빨리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물들이 병이 걸리면 인간에게만 쓸수 있는 항생재를 동물에게도 쓴다고 한다
물론 인간에게 쓰는 항생재는 동물에겐 금지 되어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도 상관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해서 병을 유발 시키고 그래서 그 이상한 바이러스가 발병되는 경우라고 한다
모든 유기농작물 그리고 자연스럽게 먹기 위해서만 사육 하는것이 아니고 사람의 욕심만을 위해서 모든 자연을 다스려온 결과라고 본다
Tuesday, April 28, 2009
Monday, April 13, 2009
대화의 기술
한여자 아이의 경희대 합격수기중 논설 부분에서 최 우수점수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녀는 친구들이 수능을 준비 할 때 자기는 늘 논설 쓰기를 준비 했다고 했다 주로 논설과 칼럼을 읽으면서 논지르 파악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빈노트에 글을 썼다고 했다
또 시를 읽고서 그저 암송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되어서 그것을 이해 했다고 했다
어느 장르에 상관 없이 글을 많이 읽었고 또 신문을 즐겨 읽었다고 했다
그 신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자기가 글을 쓸때도 그것들을 예화로 혹은 그 신문에서 읽은 것들이 자기 안에 내재 되어서
사시금 자기의 글로서 다시 나온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글 쓰기를 좋아해서 자기가 스스로 훈련을 했고
또 또 그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독서를 장르에 상관 없이 그리고
신문을 읽었다고 했다
나도 역시 이것을 참고로 읽고 쓰려고 한다
영구에서는 7살 먹은 여자 아이가 어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주는데 인기가 대단 하다고 한다 어느날 그 여자 아이가 방송에 나왔는데 거기에서 순간 위트와 재치를 너무 잘 발휘해서 그 방송국에서 이 여자 아이를 dj 로 채용해서 지금 진행하는데 인기가 폭발 이라고 한다
이 아이의 상담의 대답의 제일 초점은 직설법으로 대답을 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한다
23 살 먹은 여자가 자기 남동생이 잘 씻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남동생에게 이야기 하세요
여자들은 냄새 나고 더러운 것을 싫어 하니 만약에 계속 씻지 않으면 여자 친구가 없을 거라고 동생에게 알려 주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모두들 그녀의 직설 화법에 놀라고 재미 있어 한다고 한다
때로는 우리 대화의 기술이 직설법이 더 재치 있고 힘이 있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면 민경이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특히 같이 놀 사람을 너무 좋아 한다
어제는 세실이 (13) 이 민경이와 함께 집에 왔는데 엄마가 한국 말로 민경이 에게 이야기 했다 언니랑 같이 놀이 동산에 놀러 갈래? 민경이는 너무 좋아 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물어 보았다 do you want playhouse ? 물론 언니는 대답을 못했다 몇번이고 물었지만 겸언쩍어서 대답을 못 했다
자기는 그냥 같이 가고 민경이 엄마가 모든 비용을 져야 하니 그래도 중학생이라 미안 함도 있는듯 했다
내가 민경이에게 이야기 했다 너의 의사를 먼저 이야기 해라
민경이가 다시 물었다
아때 I want to go playhouse with you so can you go with me?
언니가 즉시 대답 했다 yes
이런 이야기 인듯 하다 내가 상대방과 대화 할 때 나는 이러한데 너는 어쩌니? 먼저 나의 의사와 마음과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다
난 이것을 선생님 에게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나역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내가 먼저 나의 의견과 그 아이를 향했던 나의 진실을 이야기 해서 다시금 그 아이의 결정을 듣곤 했었다
어쩔땐 내가 먼저 이야기 할 필요가 없지만 이것이 상대방과 대화 하는 직설 법으로서 그 상대의 마음문을 열고 또 간사함 없이 일을 처리 하고 제자를 양육 하는 길이라고 본다
그 녀는 친구들이 수능을 준비 할 때 자기는 늘 논설 쓰기를 준비 했다고 했다 주로 논설과 칼럼을 읽으면서 논지르 파악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빈노트에 글을 썼다고 했다
또 시를 읽고서 그저 암송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가 되어서 그것을 이해 했다고 했다
어느 장르에 상관 없이 글을 많이 읽었고 또 신문을 즐겨 읽었다고 했다
그 신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자기가 글을 쓸때도 그것들을 예화로 혹은 그 신문에서 읽은 것들이 자기 안에 내재 되어서
사시금 자기의 글로서 다시 나온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글 쓰기를 좋아해서 자기가 스스로 훈련을 했고
또 또 그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독서를 장르에 상관 없이 그리고
신문을 읽었다고 했다
나도 역시 이것을 참고로 읽고 쓰려고 한다
영구에서는 7살 먹은 여자 아이가 어른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주는데 인기가 대단 하다고 한다 어느날 그 여자 아이가 방송에 나왔는데 거기에서 순간 위트와 재치를 너무 잘 발휘해서 그 방송국에서 이 여자 아이를 dj 로 채용해서 지금 진행하는데 인기가 폭발 이라고 한다
이 아이의 상담의 대답의 제일 초점은 직설법으로 대답을 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고 한다
23 살 먹은 여자가 자기 남동생이 잘 씻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남동생에게 이야기 하세요
여자들은 냄새 나고 더러운 것을 싫어 하니 만약에 계속 씻지 않으면 여자 친구가 없을 거라고 동생에게 알려 주세요 라고 했다고 한다
모두들 그녀의 직설 화법에 놀라고 재미 있어 한다고 한다
때로는 우리 대화의 기술이 직설법이 더 재치 있고 힘이 있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면 민경이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특히 같이 놀 사람을 너무 좋아 한다
어제는 세실이 (13) 이 민경이와 함께 집에 왔는데 엄마가 한국 말로 민경이 에게 이야기 했다 언니랑 같이 놀이 동산에 놀러 갈래? 민경이는 너무 좋아 했다 그리고 언니에게 물어 보았다 do you want playhouse ? 물론 언니는 대답을 못했다 몇번이고 물었지만 겸언쩍어서 대답을 못 했다
자기는 그냥 같이 가고 민경이 엄마가 모든 비용을 져야 하니 그래도 중학생이라 미안 함도 있는듯 했다
내가 민경이에게 이야기 했다 너의 의사를 먼저 이야기 해라
민경이가 다시 물었다
아때 I want to go playhouse with you so can you go with me?
언니가 즉시 대답 했다 yes
이런 이야기 인듯 하다 내가 상대방과 대화 할 때 나는 이러한데 너는 어쩌니? 먼저 나의 의사와 마음과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다
난 이것을 선생님 에게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나역시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내가 먼저 나의 의견과 그 아이를 향했던 나의 진실을 이야기 해서 다시금 그 아이의 결정을 듣곤 했었다
어쩔땐 내가 먼저 이야기 할 필요가 없지만 이것이 상대방과 대화 하는 직설 법으로서 그 상대의 마음문을 열고 또 간사함 없이 일을 처리 하고 제자를 양육 하는 길이라고 본다
Thursday, April 9, 2009
international 행사가 fath academy 에서 열리는데 선교사님이 가르치는 사물놀이 팀이 초대를 받아 갔다 그래서 나도 같이 동행 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세워진 학교인데 지금은 많은 세월이 지나서 여러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거기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학생들의 부모는 선교사 그리고 일반 가정의 자녀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 학교는 안티폴로 가는길 vally golf 라는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가 없는 집 자녀들은 그 학교에 다니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것도 그러거니와 학비가 보통 학교에 비해 좀 비싸니 차가 없을정도로 경제력이 안되는 집의 자녀들은 당연히 그 학교에 다닐수가 없겠다 싶었다
숲속에 있기 때문에 학교주위의 공기는 신선하고 학교에서 내려다 보면 필리핀 마닐라 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 여러나라 별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필리핀 국기가 꽂아 있는 코너에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준비 하고 있음이 보였다 벽에는 예쁜 장식을 달고 아이스크림 장사도 무료로 주문 했고 판싯 케익 그리고 많은 종류의 필리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미국 음식은 어떤거나 하고 가 보았더니 파스타 종류가 많았고 과일도 있었다 많이 있는 것중에 피자 비슷한 것과 여러가지를 고기와 해물을 넣어서 만든 볶은 밥
그리고 한국은 김치 김밥 그리고 팥죽이 있었으나 제일 정성이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 주 메뉴인 불고기와 잡채 떡도 없고 더욱기 장식은 더욱이 없고 부채와 코리아 라는 글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데 너무 썰렁해서 참 맘이 좋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사물놀이 팀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스케줄 소식을 들었고 어디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지 장소를 보게 되었다 공연 시간은 식사 시간 그리고 장소는 리셉션을 차려놓은 홀에서 하기로 되어있고 무대는 없이 그냥 바닥에서 하는걸로 되어있었다
단원들은 어처구니 없는 그들의 준비에 좀 놀래고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정도의 수준인가 하고 그공연을 바닥에서 그리고 남들이 밥 먹고 즐기는 시간에 할것인가가 그들의 갈등이었고 고민 이었다
예술가의 자존심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다고 했다
지도 하는 선생님도 단원주에 한국 무용과 창을 하시는 분을 생각 하니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지만 단원들은 선생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 자기들 표현을 했다 “우리는 괜찮으니 우리 환경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맘것 우리의 문화를 가지고 즐기며 사람들에게 보여 줍시다” 하고 의견을 전달해서 선생님은 그내용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회원 중에 자녀들이 거기에서 공부를 함으로 그 회원의 소개로 초대를 받았으니 그 회원의 얼굴을 보아서 공연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금새 모든 언짢은것들을 털어 버리고 밝고 즐겁게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그러는 가운데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거기도 역시 무대가 없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스코틀렌드 falkdance 를 선보였다 그리고서 다시 오디언스중에 참가 하고자 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모두 함께 즐겼다 그 행사의 취지를 알수가 있었다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을 만끽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알고자 하는 뜻이 청중인 나에게 전달되어왔다
그리고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오디언스 중에 다른 나라 사람끼리 짝을 지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짝을 찾아서 앞으로 나갔다 난 즐겁긴 하지만 항상 무언가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히 거기에 동참 할 수가 없어서 구경만 했다 그 사회자는 점점 그룹을 섞었다 세명이서 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 그룹을 만들어라 이렇게 계속 하여 9명까지 만들어서 한그룹에 9개의 나라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고 우승한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작 했다 ‘너의 나라의 가장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냐 였다 ‘
어리지만 똑똑 하게 잘들 대답한 사람도 있지만 쭈삣 쭈삣 대답을 못하고 자기나라와는 상관도 없는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다 이 필리핀이란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살고 있지만 자기 나라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그 한마디만 가지고도 알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겐 외국 생활에서 부모의 철학과 부모의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다음은 식사시간이 되어서 모두 홀안으로 들어 왔고 우리 사물놀이와 한국 무용 그리고 창의 순서가 되었다
한국 춤이 시작 되었다 한국 춤을 추시는 분은 한국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한 분인데 지금(주부가 된지 20년이 다됨) 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춤을 추신다 ‘마음은 하늘을 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은다고 했다 ‘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늙어간다는 흔히 있는 우리 말이리라 생각 했다
손 과 발 동작 그리고 급히 돌기고 하고 천천히 돌기도 하고 가볍게 뛰기도 하고 사뿐히 뛰기도 햇다 이 모든 동작들과 리듬이 한복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또한 무용수의 몸매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 서양춤과는 달랐다
모든 감성과 열정과 뜻과 우리나라 조상들의 한이 동작과 얼굴 표정 손짓 몸짓 속에 있으면서도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표현되고 있음을 느꼈다
가늘고 가냘픈 손끝의 떠림은 종달새가 나무 가지에서 날개 짓 하는듯 하고 그 속에 우리 조상들의 그리움과 아픔의 흐느낌이 있는듯 했다 그러다가 휙돌아 가슴을 조이는듯한 자태는 독수리가 먹이를 휙 물어채고 비행함과 같고 짥은 박자 긴 박자 그리고 사뿐히 뛰고 내려와 앞으로 갈 듯 다시 뒤로 돌아서는 걸음은 자기의 뜻을 쉽게 나타내지 않은 옛날 여인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귀엽고 앙징스런 아기의 모습과 같았다 무용수는 한복속에서 감추어진 리듬을 타고 밟는 육체는 우리의 한과 그 한이 승화된 조상들과 서민들의 마음이 춤속에 녹아진듯 했고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나타나는 듯 했다
고난을 몸으로 노래하며 승리한 승화가 빙빙돌기도 하고 휙돌며 또 사뿐히 뒤는 정열을 통하여 우리에게 한국인의 얼을 이야기 해주는듯 했다
그 다음은 창이 시작되었는데 서민들과 이웃들 그리고 어쩌면 양반들의 평화로히 자연과 하나 되어 인생을 즐기려는 풍류가 ‘뱃노래’ 에서 묻어나왔다
포수가 비둘기를 잡으려 할 때 노래하는 자는 자신을 비둘기에 비유해서’자기의 님을 잃은 서러움을 토해 내었다 ‘ 저건너 저 관솔 밭에 슬슬 기는
저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 나와 같이 님을 잃고 헤메노나’
나는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장구를 치면서 노래부르던 모습이 생각 났다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엄마는 장구를 메고 노래하던 그 모습이 어렸을때는 참 싫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즐거운 풍류 였는지 그 멋과 맛을 이제 깊이 느끼고 내 마음과 몸에서도 그 흥이 동화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하며 나도 북을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솔솔 일어났다
저번에도 사물놀이 선생님의 선배가 여기를 방문 했었다 그는 국립 예술단 에서 창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창을 들으니 오장 육부와 온 정신과 마음과 고뇌에서 우러 나오는 듯한 노래 였다
그의 노래 가락은 마치 긴 루프에 잘잘한 매듭이 맺혀져 있듯이 마디 마디 깊은 장에서 목에서 흘러나오고 때로는 매듭을 푸는듯 했다 그 창의 가사들은 우리들의 오장 육부와 가슴과 머리에 쏘나기를 시원히 쏟아 부은듯 해서 온신심이 샤워 하고 난 다음 처럼 개운해지고 시원했다
우리나라의 창이 이렇듯 깊고 깊은 맛이 있고 온몸을 음률과 가사로 씻어 내려주어서 속이 후련하고 심신이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다음은 사물놀이가 시작 되었다 박자와 리듬이 사람들의 흥을 매료시키었다 넓은 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사물놀이에 귀를 기우리더니 나중엔 모두가 숨을 죽인듯 조용하고 그 연주에 빠져 들엇다 그 홀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별히 노랑 머리 파란 눈을 가진 장정들의 얼굴엔 신비한 음악에 웃음과 환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 그 사물놀이의 박자와 리듬의 힘은 엄청난 것임을 그 청중들과 나 자신의 감흥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 아쉬운듯이 끝이 났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잘 들었다고 기쁘고 좋고 즐겁다고 연주자들에게 와서 정중히 표현 했다 그런한 관객들은 또한 기쁨과 즐거움의 공연과 행사를 같이 만들어 내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 중의 미국 할머니가 있었다 그의 명찰을 아주 특이해서 기억에 생생 하다 그녀는 I am American but in my heart a Filipina 이렇게 써있었다 난 그 명찰을 보면서 저 할머니가 얼마나 필리핀을 사랑하고 좋아 하는지를 단번에 알아 볼수가 있었다
사물놀이 한국 춤 그리고 우리의 창이 이 사막과 같은 이민 생활 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민족정신 한국인의 얼 그리고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더없이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문화 연구 회가 크게 발전하고 자리를 확고히 하여 이 필리핀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가치 그리고 정신과 예술을 을 바로 알리고 필리핀에 있은 후세들에게 자기 아이덴티티를 심어주어서 세계에서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이 없도록 일조를 할수있다는 장래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이일은
반드시 여기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새삼 느꼈다
특히 요즈음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자기나라의 문화 정신 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확한 확신이 없이는 세계의 넓은 바다에서 정처 없이 헤메고 떠다니는 나뭇잎과 같고 우뚝히 설수가 없다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빛이 되기위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 이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나라 말과 문화 정신 얼을 다 확실히 소화하고 영어도 잘하고 실력이 좋은 전문인이 세계의 정상에서 남의 문화와 예술도 존중하고 그래서그것을 잘 조화해 내는 인물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리라고 본다 아마도 세계가 오바마를 좋아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일것이라고 본다
그역시 청소년 시절에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자기는 흑인임을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나니 그때 이후부터 삶의 힘과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필리핀을 사랑하는 한 외국인으로서 장래의 모든 희망을 후손들에게 걸어 본다.
‘우리의 후손들 필리핀에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자기의 것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가진 재능들을 마음껏 키워 나가길 바라며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본다 ‘
이 학교는 미국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세워진 학교인데 지금은 많은 세월이 지나서 여러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거기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학생들의 부모는 선교사 그리고 일반 가정의 자녀들도 있다고 들었다
이 학교는 안티폴로 가는길 vally golf 라는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가 없는 집 자녀들은 그 학교에 다니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것도 그러거니와 학비가 보통 학교에 비해 좀 비싸니 차가 없을정도로 경제력이 안되는 집의 자녀들은 당연히 그 학교에 다닐수가 없겠다 싶었다
숲속에 있기 때문에 학교주위의 공기는 신선하고 학교에서 내려다 보면 필리핀 마닐라 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 여러나라 별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필리핀 국기가 꽂아 있는 코너에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준비 하고 있음이 보였다 벽에는 예쁜 장식을 달고 아이스크림 장사도 무료로 주문 했고 판싯 케익 그리고 많은 종류의 필리핀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미국 음식은 어떤거나 하고 가 보았더니 파스타 종류가 많았고 과일도 있었다 많이 있는 것중에 피자 비슷한 것과 여러가지를 고기와 해물을 넣어서 만든 볶은 밥
그리고 한국은 김치 김밥 그리고 팥죽이 있었으나 제일 정성이 없어 보였다
우리나라 주 메뉴인 불고기와 잡채 떡도 없고 더욱기 장식은 더욱이 없고 부채와 코리아 라는 글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데 너무 썰렁해서 참 맘이 좋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사물놀이 팀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스케줄 소식을 들었고 어디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지 장소를 보게 되었다 공연 시간은 식사 시간 그리고 장소는 리셉션을 차려놓은 홀에서 하기로 되어있고 무대는 없이 그냥 바닥에서 하는걸로 되어있었다
단원들은 어처구니 없는 그들의 준비에 좀 놀래고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정도의 수준인가 하고 그공연을 바닥에서 그리고 남들이 밥 먹고 즐기는 시간에 할것인가가 그들의 갈등이었고 고민 이었다
예술가의 자존심으로서는 도저히 할수 없다고 했다
지도 하는 선생님도 단원주에 한국 무용과 창을 하시는 분을 생각 하니 도저히 용납이 안되어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지만 단원들은 선생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지만 그래도 선생님에게 자기들 표현을 했다 “우리는 괜찮으니 우리 환경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맘것 우리의 문화를 가지고 즐기며 사람들에게 보여 줍시다” 하고 의견을 전달해서 선생님은 그내용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회원 중에 자녀들이 거기에서 공부를 함으로 그 회원의 소개로 초대를 받았으니 그 회원의 얼굴을 보아서 공연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래서 금새 모든 언짢은것들을 털어 버리고 밝고 즐겁게 공연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었다
그러는 가운데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거기도 역시 무대가 없었다 그 학교 학생들이 스코틀렌드 falkdance 를 선보였다 그리고서 다시 오디언스중에 참가 하고자 하는 사람을 불러내어 모두 함께 즐겼다 그 행사의 취지를 알수가 있었다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을 만끽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알고자 하는 뜻이 청중인 나에게 전달되어왔다
그리고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오디언스 중에 다른 나라 사람끼리 짝을 지어서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짝을 찾아서 앞으로 나갔다 난 즐겁긴 하지만 항상 무언가 거침없는 자유스러움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히 거기에 동참 할 수가 없어서 구경만 했다 그 사회자는 점점 그룹을 섞었다 세명이서 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 그룹을 만들어라 이렇게 계속 하여 9명까지 만들어서 한그룹에 9개의 나라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최고 우승한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작 했다 ‘너의 나라의 가장 즐기는 스포츠가 무엇이냐 였다 ‘
어리지만 똑똑 하게 잘들 대답한 사람도 있지만 쭈삣 쭈삣 대답을 못하고 자기나라와는 상관도 없는대답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다 이 필리핀이란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살고 있지만 자기 나라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이 그 한마디만 가지고도 알수 있었다 어린 아이들에겐 외국 생활에서 부모의 철학과 부모의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다음은 식사시간이 되어서 모두 홀안으로 들어 왔고 우리 사물놀이와 한국 무용 그리고 창의 순서가 되었다
한국 춤이 시작 되었다 한국 춤을 추시는 분은 한국에서 한국 무용을 전공한 분인데 지금(주부가 된지 20년이 다됨) 까지도 열정을 가지고 춤을 추신다 ‘마음은 하늘을 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은다고 했다 ‘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늙어간다는 흔히 있는 우리 말이리라 생각 했다
손 과 발 동작 그리고 급히 돌기고 하고 천천히 돌기도 하고 가볍게 뛰기도 하고 사뿐히 뛰기도 햇다 이 모든 동작들과 리듬이 한복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또한 무용수의 몸매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 서양춤과는 달랐다
모든 감성과 열정과 뜻과 우리나라 조상들의 한이 동작과 얼굴 표정 손짓 몸짓 속에 있으면서도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표현되고 있음을 느꼈다
가늘고 가냘픈 손끝의 떠림은 종달새가 나무 가지에서 날개 짓 하는듯 하고 그 속에 우리 조상들의 그리움과 아픔의 흐느낌이 있는듯 했다 그러다가 휙돌아 가슴을 조이는듯한 자태는 독수리가 먹이를 휙 물어채고 비행함과 같고 짥은 박자 긴 박자 그리고 사뿐히 뛰고 내려와 앞으로 갈 듯 다시 뒤로 돌아서는 걸음은 자기의 뜻을 쉽게 나타내지 않은 옛날 여인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귀엽고 앙징스런 아기의 모습과 같았다 무용수는 한복속에서 감추어진 리듬을 타고 밟는 육체는 우리의 한과 그 한이 승화된 조상들과 서민들의 마음이 춤속에 녹아진듯 했고 한복속에 감추어져 은근히 나타나는 듯 했다
고난을 몸으로 노래하며 승리한 승화가 빙빙돌기도 하고 휙돌며 또 사뿐히 뒤는 정열을 통하여 우리에게 한국인의 얼을 이야기 해주는듯 했다
그 다음은 창이 시작되었는데 서민들과 이웃들 그리고 어쩌면 양반들의 평화로히 자연과 하나 되어 인생을 즐기려는 풍류가 ‘뱃노래’ 에서 묻어나왔다
포수가 비둘기를 잡으려 할 때 노래하는 자는 자신을 비둘기에 비유해서’자기의 님을 잃은 서러움을 토해 내었다 ‘ 저건너 저 관솔 밭에 슬슬 기는
저포수야 저 산 비둘기 잡지 마라 저 비둘기 나와 같이 님을 잃고 헤메노나’
나는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장구를 치면서 노래부르던 모습이 생각 났다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엄마는 장구를 메고 노래하던 그 모습이 어렸을때는 참 싫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이 얼마나 평화롭고 즐거운 풍류 였는지 그 멋과 맛을 이제 깊이 느끼고 내 마음과 몸에서도 그 흥이 동화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하며 나도 북을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솔솔 일어났다
저번에도 사물놀이 선생님의 선배가 여기를 방문 했었다 그는 국립 예술단 에서 창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창을 들으니 오장 육부와 온 정신과 마음과 고뇌에서 우러 나오는 듯한 노래 였다
그의 노래 가락은 마치 긴 루프에 잘잘한 매듭이 맺혀져 있듯이 마디 마디 깊은 장에서 목에서 흘러나오고 때로는 매듭을 푸는듯 했다 그 창의 가사들은 우리들의 오장 육부와 가슴과 머리에 쏘나기를 시원히 쏟아 부은듯 해서 온신심이 샤워 하고 난 다음 처럼 개운해지고 시원했다
우리나라의 창이 이렇듯 깊고 깊은 맛이 있고 온몸을 음률과 가사로 씻어 내려주어서 속이 후련하고 심신이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다음은 사물놀이가 시작 되었다 박자와 리듬이 사람들의 흥을 매료시키었다 넓은 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사물놀이에 귀를 기우리더니 나중엔 모두가 숨을 죽인듯 조용하고 그 연주에 빠져 들엇다 그 홀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별히 노랑 머리 파란 눈을 가진 장정들의 얼굴엔 신비한 음악에 웃음과 환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사진과 비디오를 찍었다 그 사물놀이의 박자와 리듬의 힘은 엄청난 것임을 그 청중들과 나 자신의 감흥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 아쉬운듯이 끝이 났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 잘 들었다고 기쁘고 좋고 즐겁다고 연주자들에게 와서 정중히 표현 했다 그런한 관객들은 또한 기쁨과 즐거움의 공연과 행사를 같이 만들어 내었다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 중의 미국 할머니가 있었다 그의 명찰을 아주 특이해서 기억에 생생 하다 그녀는 I am American but in my heart a Filipina 이렇게 써있었다 난 그 명찰을 보면서 저 할머니가 얼마나 필리핀을 사랑하고 좋아 하는지를 단번에 알아 볼수가 있었다
사물놀이 한국 춤 그리고 우리의 창이 이 사막과 같은 이민 생활 에서 우리 후손들에게 민족정신 한국인의 얼 그리고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더없이 중요한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문화 연구 회가 크게 발전하고 자리를 확고히 하여 이 필리핀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가치 그리고 정신과 예술을 을 바로 알리고 필리핀에 있은 후세들에게 자기 아이덴티티를 심어주어서 세계에서 방황하는 우리 아이들이 없도록 일조를 할수있다는 장래의 비전을 바라보면서 기쁘고 이일은
반드시 여기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새삼 느꼈다
특히 요즈음은 글로벌 시대인 만큼 자기나라의 문화 정신 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확한 확신이 없이는 세계의 넓은 바다에서 정처 없이 헤메고 떠다니는 나뭇잎과 같고 우뚝히 설수가 없다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빛이 되기위해서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 이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나라 말과 문화 정신 얼을 다 확실히 소화하고 영어도 잘하고 실력이 좋은 전문인이 세계의 정상에서 남의 문화와 예술도 존중하고 그래서그것을 잘 조화해 내는 인물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리라고 본다 아마도 세계가 오바마를 좋아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일것이라고 본다
그역시 청소년 시절에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자기는 흑인임을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나니 그때 이후부터 삶의 힘과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필리핀을 사랑하는 한 외국인으로서 장래의 모든 희망을 후손들에게 걸어 본다.
‘우리의 후손들 필리핀에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모두가 자기의 것을 분명히 하고 그들이 가진 재능들을 마음껏 키워 나가길 바라며 희망을 아이들에게서 본다 ‘
Monday, April 6, 2009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클래식 앨범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한테는 정말 의미가 큰 앨범이지요.” KBS 1FM '송영훈의 가정음악'의 진행자로, 예술의 전당이 매달 둘째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여는 '11시 콘서트'의 공동 진행자로 대중에게도 친근한 첼리스트 송영훈(35). 그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몇 번씩 약속을 옮겨 3주 후에야 겨우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180cm의 훤칠한 키, 단추를 두어 개 푼 셔츠에 청바지, 녹색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의 모습은 ‘미남 첼리스트’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았다. 그가 2006년 처음 낸 음반이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곡을 담은 '탱고'. 두 번째 음반이 브라질 음악가들의 명곡을 미국의 기타리스트 제이슨 뷔유와 호흡을 맞춰 연주한 이다. 송영훈은 피아졸라의 탱고에 내재된 관능미와 비애를 첼로의 깊은 소리로 절절히 살려 내 우리나라에 ‘탱고 열풍’을 몰고 온 연주자이기도 하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누가 들어도 마음 깊숙이 와 닿죠. 클래식, 팝, 재즈, 록 애호가 모두가 좋아하니까요.” 첫 클래식 음반에 어떤 곡을 담을까 고민하던 그가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를 들고 나온 데는 ‘첫 마음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음악으로나 삶으로나 저의 영원한 스승이신 차밍 로빈스 선생님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곡입니다. 제가 마지막 제자인데,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곡이기도 하고요. 그분께 바치는 마음으로 녹음했습니다. 음악가로서 처음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세이지요.” 아버지가 비올리스트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던 그. 한국일보 콩쿠르, 이화경향 콩쿠르 등 한국에서 치를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 1위를 하고, 열한 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하면서 ‘음악신동’으로 불렸다. 예원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들어갔고,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했다. 이때 만난 스승이 차밍 로빈스. “92세에 돌아가셨는데, 임종 직전까지 링거를 꽂은 채 하나라도 더 전해 주려고 하셨어요. 내가 떠나면 누구한테 가서 배워라, 누구를 만나라 등 세세하게 미래 계획을 세워 주시고.”
선생님의 유언대로 영국 노던 왕립음악원으로 옮겼는데, 그때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자신의 연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콘서트나 음반을 통해 좋은 연주를 들어온 ‘귀’가 있으니 스스로 어느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대치가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다섯 살 때부터 맹목적으로 달려온 길. ‘내가 왜 음악을 해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부닥쳤다. 그때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 “열세 살 때 집을 떠났으니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요. 10여 년 밀려 있던 이야기들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누었죠.” 아버지는 “세상에 나가서 연주하라”고 유언하셨다. “너는 세계적인 보물(International Treasure)이니 그 사명을 잊지 마라”라고 했던 스승의 유언과 같았다. 8개월 후 그는 정상급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의 멤버가 돼 뉴욕으로 갔다. 그리고 1년 6개월 후 핀란드 시벨리우스음악원에 들어갔다. “연주하다 보니 더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그때 시벨리우스음악원의 아르토 노라스 선생이 ‘난 전 세계에서 5명만 가르치는데, 나한테 지옥훈련을 받아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하셨어요. 그분한테 배운다면 아프리카라도 갈 생각이었죠.” 핀란드에서 그는 그야말로 ‘지옥훈련’에 들어갔다. 춥지, 아는 사람 없지 오로지 방 안에 틀어박혀 연습만 거듭했다. “뭐든 미치기 바로 직전까지 도전해야 새로운 경지로 넘어갈 수 있나 봐요.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두하는 시기를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제가 머릿속에 그리던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양탄자를 타고 공중에 뜬 것 같은, 마술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때부터 연주할 때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 황홀한 쾌감을 느낍니다.” 런던 연극무대에 여주인공으로 서는 아내 제니퍼 림그 후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활동을 펴 온 그는 지난해 4월 <송영훈의 가정음악> 진행을 맡으면서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연주와 방송진행, 음악수업 등으로 바쁜 일정인데도 그가 “내 모든 스케줄 가운데 최우선 순위”라며 주말이면 절대 시간을 바치는 데가 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해피뮤직스쿨’. “음악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로부터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활동은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해야 하는 거지요. 그 아이들이 ‘저도 커서 선생님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게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첼로를 연주할 때처럼 무아지경에 빠져요.” 20~30대 젊은 여성 팬들 사이에는 그가 결혼을 했는지, 했다면 아내는 어떤 사람인지도 관심사. 그는 “홍콩 출신인 아내와 5년 전 결혼했는데, 지금 미국과 영국에서 배우로 활동 중”이라고 말한다. 영화 '27 dresses'와 에 출연한 제니퍼 림. 송영훈 씨의 새 음반이 발매되는 2월 17일, 아내는 런던 소호 시어터에서 개막하는 연극에 여주인공으로 선다. “사귄 지 8년, 결혼한 지 5년 됐는데,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지난 설 연휴, 정말 오랜만에 사흘을 쉬게 돼 당장 런던으로 날아가고 싶었죠. 그런데 안 갔어요. 아내가 맡은 역할이 정신분열증을 앓는 어두운 캐릭터인데, 제가 가면 몰입에 방해될까 봐서요. 아내나 저나 예술하는 사람이니 먼저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부분이 많지요.” 이렇게 삶이 하나하나 쌓여 음악이 되어 나온다는 것. 그래서 “연주는 그 연주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심도 깊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연주에 대해 “감성적 표현이 풍부한 것 같다”고 하자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에요. 연주할 때 딴 생각은 안 해요. 오로지 어떻게 감정을 담아낼지에만 집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또 “음악은 서비스업이고, 저는 청중에 서비스하는 ‘뮤지컬 서번트’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한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비싼 티켓값을 내고 음악회를 찾아온 청중에게 무얼 선물해야 하나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회 전 애피타이저로 ‘청중과의 만남’ 시간을 만들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1시간 30분 전, 그를 미리 만나 그날 공연에서 연주할 곡과 작곡가, 연주자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대답하는 시간. “저 자신도 청중으로 음악회에 가면 너무 엄숙한 분위기에 눌리는 기분”이라며 “조금 더 편안한 음악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촬영을 위해 그가 활을 들고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을 꽉 채우는 깊고 풍부한 소리. ‘삶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악기가 아니라 그 자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그와 음악은 혼연일체가 되었다.
그는 또 “음악은 서비스업이고, 저는 청중에 서비스하는 ‘뮤지컬 서번트’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한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비싼 티켓값을 내고 음악회를 찾아온 청중에게 무얼 선물해야 하나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회 전 애피타이저로 ‘청중과의 만남’ 시간을 만들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1시간 30분 전, 그를 미리 만나 그날 공연에서 연주할 곡과 작곡가, 연주자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대답하는 시간. “저 자신도 청중으로 음악회에 가면 너무 엄숙한 분위기에 눌리는 기분”이라며 “조금 더 편안한 음악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진촬영을 위해 그가 활을 들고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을 꽉 채우는 깊고 풍부한 소리. ‘삶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그의 말처럼 악기가 아니라 그 자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 그와 음악은 혼연일체가 되었다.
( 이사람의 걸어온 예술가의 길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기에 한국 신문에서 스크렙을 해서 여기에 옮겼다 물론 가는 길은 다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미치도록 해보지 않는다면 그 분야에서 열매를 딸수가 없다는 것이 이사람들 통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세계의 정상에 선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이야기이다 이근래에 승리한 김연아도 그렇고.
우리 옛말에 호랑이라도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했듯이 좋아 하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온 심혈을 기울여 노력해야만 그것의 열매를 따서 모두가 먹을수 있는 즐거움을 맛 볼수가 있고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리라 본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사람의 결과는 단 열매를 많이 딸수가 있다 )
피아노 콘서트를 보고 나서 (after watching a piano concert)
지난 금요일 피아노 콘서트에 갔었다 우리 교회 학생이 이제 14살인데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와 함께 나도 피아노 콘서트에 초대해서 가서 보게 되었다 대학교 일학년 학생이 하는 콘서트 였다
연주 시간은 거의 한시간 반이었는데 악보 없이 다 외워서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그 프로그람은
Prelude and Fugue in Bb minor WTCI -J.s Bach
Sonata No. 10 in G --------------------J. Haydn
allegro Innocente
presto
Etude Tableau Op. 39. No. 6 -----------S. Rachmaninoff
April Morning ---------------L. Kasilag
Scherzo No. 1 in B minor --------F Chopin
Pagodes (from Estampes) ---C. Debussy
Piano Concerto no. 2. in G minor --------C. Saint-saens
Andante
Allegro Scherzando
Presto
그 학생은 이 곡들을 다 연주 했다 처음에 이 연주는 나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음악에 대히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고 난 피아노에 대해 꿈이 없고 단지 나의 학생이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하니 동참 한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계속 지켜보고 들었다
거의 한시간이 지나 가는데 그녀의 연주는 서서히 나의 무딘 마음에 대화의 힘을 발휘 했다
한시간 반을 연주 하는데 그 어려운 악보들을 다외워서 책이 필요 없고 또 피아노 건반 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그녀의 손가락은 나의 마음에 대화의 문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노력을 가히 상상 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하는지 알수가 있었다 그녀의 전공이 피아노 이기 때문에 그녀는 피아노에 프로 페셔날이 되기 위해서 저토록 노력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면 난 피아노가 전공이 아니지만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고 나의 전공이다
그렇다면 내가 몇개의 시를 외우고 있는가 얼마나 시를 읽고 외우고 쓰기 연습을 했나 내 자신에게 물어 볼때 너무 턱없이 부족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전공을 한다고 말할까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녀의 열정과 노력이 나의 길에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노력에 대답 했다 그래 나도 시에 대해 프로페션날이 되기 원한다면 저보다 더한 노력을 하자 이렇게 정리하며 저절로 그녀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마지막 곡은 두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것인데 한사람은 그녀를 도와 주려고 나왔다 그 역시 손가락이 안보이고 바람 같이 빨랐다 너무 놀라서 으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피아노를 조금 배운다 그런데 악보를 연습 해보지만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매끄럽게 안되는 데 저사람들은 한 곡을 몇천번 쳐 보았기에 손가락이 안보이고 바람 같은가 하는 짐작이 나도 노력에 도전 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날 피아노 콘서트 장을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를 도와주던 파트너가 그녀의 삼촌 이었다 이나라에서 피아노 혹은 악기를 친다 치면 부자집이다 그리고 그 악기를 어렸을때부터 배웠다는 것은 더욱기 부자다 그 아이는 부자부모를 둔것과 좋은 환경에서 훈련 받은것 또한 크겠다 싶었다 그러나 주님은 살아 계시니우리 교회 학생은 모든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단지 꿈과 자원 봉사하는 선생님을 가졌는데 그 역시 시작은 늦었지만 가히 그만한 노력이 있고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 해야만 그의 길이 열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아이의 장래를 생각 하니 참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믿으니 하면서 그아이와 콘서트를 보고난 감상을 이야기 나누며 기도 했다 진실로 피아노를 하고 싶냐고 했더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기도하고 계속 그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 그에게 꼭 성공 하기를 오늘도 바라며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 하지 않고 계속 힘있게 가게 해 달라고 기도 하며 마무리 했다
그래서 그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그와 함께 나도 피아노 콘서트에 초대해서 가서 보게 되었다 대학교 일학년 학생이 하는 콘서트 였다
연주 시간은 거의 한시간 반이었는데 악보 없이 다 외워서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그 프로그람은
Prelude and Fugue in Bb minor WTCI -J.s Bach
Sonata No. 10 in G --------------------J. Haydn
allegro Innocente
presto
Etude Tableau Op. 39. No. 6 -----------S. Rachmaninoff
April Morning ---------------L. Kasilag
Scherzo No. 1 in B minor --------F Chopin
Pagodes (from Estampes) ---C. Debussy
Piano Concerto no. 2. in G minor --------C. Saint-saens
Andante
Allegro Scherzando
Presto
그 학생은 이 곡들을 다 연주 했다 처음에 이 연주는 나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음악에 대히 너무 무지하기 때문이고 난 피아노에 대해 꿈이 없고 단지 나의 학생이 피아니스트가 된다고 하니 동참 한 이유 때문이리라 생각하고 계속 지켜보고 들었다
거의 한시간이 지나 가는데 그녀의 연주는 서서히 나의 무딘 마음에 대화의 힘을 발휘 했다
한시간 반을 연주 하는데 그 어려운 악보들을 다외워서 책이 필요 없고 또 피아노 건반 위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그녀의 손가락은 나의 마음에 대화의 문을 열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노력을 가히 상상 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하는지 알수가 있었다 그녀의 전공이 피아노 이기 때문에 그녀는 피아노에 프로 페셔날이 되기 위해서 저토록 노력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면 난 피아노가 전공이 아니지만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고 나의 전공이다
그렇다면 내가 몇개의 시를 외우고 있는가 얼마나 시를 읽고 외우고 쓰기 연습을 했나 내 자신에게 물어 볼때 너무 턱없이 부족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전공을 한다고 말할까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녀의 열정과 노력이 나의 길에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노력에 대답 했다 그래 나도 시에 대해 프로페션날이 되기 원한다면 저보다 더한 노력을 하자 이렇게 정리하며 저절로 그녀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마지막 곡은 두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것인데 한사람은 그녀를 도와 주려고 나왔다 그 역시 손가락이 안보이고 바람 같이 빨랐다 너무 놀라서 으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피아노를 조금 배운다 그런데 악보를 연습 해보지만 아무리 아무리 해도 매끄럽게 안되는 데 저사람들은 한 곡을 몇천번 쳐 보았기에 손가락이 안보이고 바람 같은가 하는 짐작이 나도 노력에 도전 하겠다는 결심으로 그날 피아노 콘서트 장을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생각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를 도와주던 파트너가 그녀의 삼촌 이었다 이나라에서 피아노 혹은 악기를 친다 치면 부자집이다 그리고 그 악기를 어렸을때부터 배웠다는 것은 더욱기 부자다 그 아이는 부자부모를 둔것과 좋은 환경에서 훈련 받은것 또한 크겠다 싶었다 그러나 주님은 살아 계시니우리 교회 학생은 모든 환경을 갖추지 못하고 단지 꿈과 자원 봉사하는 선생님을 가졌는데 그 역시 시작은 늦었지만 가히 그만한 노력이 있고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 해야만 그의 길이 열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고 그 아이의 장래를 생각 하니 참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믿으니 하면서 그아이와 콘서트를 보고난 감상을 이야기 나누며 기도 했다 진실로 피아노를 하고 싶냐고 했더니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기도하고 계속 그 어려운 길을 가야 하는 그에게 꼭 성공 하기를 오늘도 바라며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 하지 않고 계속 힘있게 가게 해 달라고 기도 하며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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