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6, 2009

He was a Great Leader and Star in the Korea



Left side of poem is written by Kim, Ji-Ha, who is a poet protested to dectatorship and a dectator president in the Korea. He devoted his poem to Him, who is Korea’s Stephen Cardinal Kim Sou-hwan , he pass away yesterday.

-김수환 추기경님 영전에









어디인지 모르고
저희들

여기 이리 서 있어요
동녘 하늘 밝아 오지만

가는길
아직도 몰라

님이여
우리 이렇게 아직도 서성입니다

부디
손짓해 주세요

손수건을 접고
이젠 걷기 시작 할래요

바람이
차요
이젠 쉬세요




김 지하 모심





He was a leader and star in the darkness period in the Korea. he pass away yesterday.



I read article, which he was pass away, from the newspaper.
He worked since 1950 until now for the oppress, the poor, and democracy in the darkness period in the Korea.
We had dictators as a president and all university students, intellectuals, the citizens against them but the dictators killed thousand of students and protests. They oppressed protest rally and demonstration. That time, he always together with them and protect them as a leader of the masses.
At that time, the dictator’s military killed the citizens so the students stayed his church, Meydong Church, and military went there, so he stood in front of church and he said “if you want oppress our students then first you trade on me and next there is Catholic priests so you trade them and third, there is nuns so you trade on nuns eventually you can oppress our students.
He worked for labors, the poor, the alienated, and foreign labors and he encouraged the masses he lived for the democratic society and nation especially darkness period in Korea.

All our people mourn for his death; people said our nation lost a strong pillar and falling down a bright star.
When a great leader come again in our nation we are expect a great leader. In this generation, like him, great leader absent in the Korea.

( 김수환 추기경이 어제 별세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격동기를 지내오면서 소외되고 가난한자들 인권이 잃은자들에게 힘 이 되었었고 민주 운동을 하던 암흑의 시대에 항상 앞장 서서 사회 운동을 인도 했던 인물이다
박정희 대통령 의 서슬 퍼러던 유신 정권때에는 그의 독재를 반대했었고 전두환 대통령의 정권에도 독재를 반대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내 주었던 지도자였다

그리고 독재에 반대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경찰 권력으로 탄압하려 할때도 그가 맡던 명동 성당은 그 학생들의 편에서 민주화의 성지가 되었다고 다
그당시에 경찰들이 탄압하려 할 때 학생들을 교회에 머물게 했고
경찰에 말 하기를 저 학생들을 탄압 하려면 제일 먼저 나를 밟고 그다음에 신부들을 밟고 그다음에 수녀들을 밟고 그리고 저 학생들을 탄압 하시오 했다고 한다

그는 실로 민주화와 노동자들 가난한자들 소외 받은 자들 그리고 외국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일했고 항상 그들 곁에서 또 국민들의 곁에서 나라의 위로자 지도자의 삶을 살ㅇ았다고 모든 책과 신문 그리고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이제 연로 하셔서 같지만 우리나라의 기둥이 없어 진듯 하고 우리나라의 어른을 잃은 안타까움에 모든 국민들 각계각층의 인사들 그리고 외국에서도 모두들 안타까워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



]The following article is a newspaper clipping from Korea Heard, which newspaper in English;

Korea’s Stephen Cardinal Kim Sou-hwan passed away yesterday. He was at 87.
Kim is a senior Cardinal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the former Archbishop of Seoul, South Korea.
The Gangnam St. Mary's Hospital in southern Seoul announced that the cardinal passed away at 6:12 p.m.
Kim had been hospitalized since last August and fallen into brief comas several times, the hospital said. Kim reportedly promised to donate his organs after death.
Stephen Cardinal Kim Sou-hwan was appointed by Pope Paul VI in 1969, becoming the first Korean to hold the title. Kim retired as head of the Seoul Diocese in 1998.
Kim has been one of the most revered religious leaders in South Korea. He has expressed his opinions about sensitive political issues such as pro-North Korea and anti-U.S. sentiments in South Korea.
He has also taken the lead in helping the poor and underprivileged people.
Having reached the age of 80 in 2002, he did not participate in the ensuing conclave as he was no longer eligible to vote in papal elections. At the Papal Inauguration of Pope Benedict XVI, he did discharge the duties of the Cardinal protopresbyter.
Kim was born in Daegu and studied philosophy at Sophia University in Tokyo and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from 1947-1951. He later traveled to Germany to study sociology.
Cardinal Nicholas Cheong Jin-suk succeeded Kim as Korea's second cardinal in 2006



It is also a press cutting from newspaper in Korea, The Hankyoreh ;
“군사독재에 강하게 저항했던 인물,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 인물, 인권신장에 기여한 인물, 정신적 지도자 ….”
16일 전세계 주요 언론들이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긴급 타전하면서 받친 ‘헌사’들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김 추기경의 삶의 궤적을 상세히 소개한 뒤, “김 추기경이 250만 한국 가톨릭 신자의 지도자로서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 사이에서도 국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존경받아 왔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 추기경이 주교로 있던 기간에 “서울 한복판에 있는 명동성당은 민주화 투사들의 성지로서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일례로 그는 1987년 “학생들을 잡아가려면, 나를 먼저 체포하라”고 말하며 군사정권의 요구에 불응한 채, 성당을 학생 운동권 지도부의 피난처로 제공했다고 전했다.
<에이피>(AP) 통신도 “한국 최초의 가톨릭 추기경의 선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 추기경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인물이었고, 군사독재에 강하게 저항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 역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추기경이 타계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 추기경은 든든한 인권의 수호자이자 수십년 동안 군사정권이 지배해온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인물 중 하나”라고 전했다.
영국의 <비비시>(BBC) 방송은 김 추기경이 “자신의 지위를 인권을 향상하는 데 썼다”고 높이 평가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The following scripture is one of article from Korean newspaper, The Hankyoreh,"His Analects":

김수환 추기경은 과거 개발독재 시절 정권에 맞선 ‘시대의 양심’으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는 광주항쟁,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양심의 소리를 대변해 왔다. 어록을 통해 그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 광주항쟁 “공권력이란 본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며 이를 탄압하고 말살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공권력이 인권 탄압에 쓰여지면 이것은 공권력이 아니요, 오히려 폭력입니다. … 광주 사태에 대해서는 군에 의한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진압이 도에 넘침으로써 군경을 포함하여 학생과 시민 등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데 대해 정부는 깊이 사과하고 그같은 엄청난 유혈 사태를 일으킨 책임자를 정부는 엄단해야 합니다.”(1980년 ‘광주 유혈사태에 대해 정부는 사과하라’)

■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모르는 일입니다’하면서 잡아떼고 있습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1987년 1월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 6월항쟁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먼저 저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다음 신부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수녀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저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를 밟고 가십시오.”(1987년 당시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 사형제 관련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인해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 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까?”(1993년 평화방송·평화신문 새해 특별대담 중 사형폐지를 주장하며)
■ 남북문제 “또 평양교구의 교구장 서리로 있기 때문에 정말 목자로서 가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고 또 의무입니다. 사실은 … 가봐야 하는 게 의무인데, 그걸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히 안타깝습니다.”(1998년 평화방송 신년대담 중)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16일 선종하자 외신들도 긴급히 소식을 타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추기경 타계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든든한 인권 수호자이자 수십년간 군부정권이 지배해 온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인물 중 한명인 김수환 추기경이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또 김 추기경의 개인 홈페이지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는 항상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큰 관심을 표명했고, 정치적 억압에 대한 의견 표명을 망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한국 최초의 가톨릭 주교 선종'이라는 제목의 긴급기사를 통해 "김 추기경은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대표적인 인물이자 동아시아의 첫번째 추기경"이라고 소개했다. AFP통신도 "한국 최초의 가톨릭 추기경이자 민주화 운동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인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타계했다"면서 김 추기경을 "250만 한국 가톨릭 신자의 리더로서, 한국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가톨릭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존경 받았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승국 기자 inklee@asiae.co.kr <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http://www.asiae.co.kr/)

Pleasure Maker

I cooked Pansit for the little girl, 4 years old likes it so much.
교회 아이들이 소풍갔던 날 어떤 아이가 플라스틱에 판신을 싸왔었다 그때 민경이(네살)는 그판신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더욱이 플라스틱에 담겨 있었던 그 판신이 너무 좋아 보였고 자기도 꼭 그렇게 담아가지고 먹고 싶다고 했다
소풍에서 돌아 오던 길에 나에게 얘기 했다 이모 판신 만들수 있어 ? 나도 그 아이처럼 그렇게 플라스틱에 담아서 먹고 싶어 이모 나도 그렇게 해줘!
그래 내가 판신 만들어서 그 아이 처럼 플라스틱에 넣어 줄게 알았지! 와 이모 고마워 !

그다음날 민경이는 나에게 또 판신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민경아 내가 만들어 줄게 해놓고 그냥 잊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민경이가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 했다 그냥 괜 찮겠다 했는데 계속 열이 나고 학교에도 갈수가 없었다
그날이 발렌타인 날인데 학교도 못가고 민경이의 엄마 아빠가 음악을 가르치러 가야 하기에 민경이는 나와 함께 집에 남게 되었다 민경이는 아파서 힘이 없고 얼굴도 창백했다 입술도 부르터 있었다
어린 아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기쁨을 만들어 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오늘이 발렌타인 날인데 쵸코렛을 주자 생각하고 어제 친구에게 주려고 사다 놓았던 큰 초코렛을 민경이에게 건네 주었다
민경아 해피 발렌타이 이모가 너 줄려고 사왔어 !
이거 내거야? 나줄려고 사왔어 ? 아프면서도 내 얼굴을 보고 환히 기쁘게 웃으며 이야기 했다
응 이모가 너줄려고 사왔어( 친구 줄려고 사 놓았기에 조금은 거짓말이지만 ) 사랑해 하고 포옹해 주었다
사랑은 늘 마음에 담아 있어서 말과 행동으로 나왔지만 오늘은 이렇게 직접 내가 사랑한다고 말을 하니 그 아이에 대해 더욱 사랑의 마음이 증거가 되어 내 마음에 남아서 내게도 행복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민경이의 몸도 다 낳았지만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게 됬다
민경이는 한시간도 쉬지 않고 아이들과 뛰어 노는 아이인데 오늘은 하루 종일 어떻게 시간을 보낼것인지 이것 또한 이 아이에게는 지루한 일이다
오늘 학교도 안가고 집에 있는 날인데 어떻게 하면 즐거움을 만들어 줄 것인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 아이가 판신이 먹고 싶다고 했던 몇일전 일이 생각 나서
민경이를 불렀다 민경아 오늘은 이모가 판신을 만들어 줄게 했더니 와우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 플라스틱에 담아줘 알았지 했다

가게에 가서 비혼을 사면서 확실지 않은 면은 그 아줌마에게 물어 보았더니 친절히 가르쳐 주며 웃었다
빨간 당근과 양배추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씻고 썰으면서 토끼에게 주려고 조그마한 조각도 남겨 놓았다 토끼는 항상 우리 식구들의 머리속 구석지에 살고 있어서 야채가 있으면 조금씩 떼어 놓았다 준다
그다음엔 양파와 그린 빈을 씻어서 썰어 놓았다 제법 필리핀 집에서 엄마들이 판신을 만드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남비에는 닭을 삶았다
부엌에서 요리를 할때면 씻고 썰으며 준비하는 손놀림 몸놀림과 그 소리들이 모두 합해서 항상 삶의 활기를 느껴지게 는 곳이다 만드는 이도 활력과 활기가 날 뿐 아니라 집안의 분위기도 즐겁게 만드는 곳이 부엌이라고 생각 한다
나의 어릴때도 그냥 집에서 놀았던 때와 엄마와 몇 사람들이 부엌에서 요리 를 할 때 들리던 칼과 도마 소리 두런 두런 이야기 하던 소리 그리고 거기에서 스며 나오는 양념 냄새 요리가 익어가면 나는 냄새
이런 가운데서 여기 저기 달려 다니며 놀았던 때가 나를 항상 더 신바람나고
기쁘게 만들었다
난 그 기분으로 모든걸 준비 해서 판신 만드는 방법을 기억에 따올리며 만들었다 간장이 너무 많은 것 같고 재료에 비해 비온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다 만들었는데 모양은 판신인데 맛은 아닌듯 했지만 접시에 정성것 담고 그리고 민경이에게 줄 판신은 플라스틱에 넣어서 주었더니
다시금 얼굴이 환해 지면서 그 판신을 한손에 들고 너무 좋아 했다
민경이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 했다 너무 맛있다 필리핀 깐띤을 하나 열어도 되겠다고 이야기 하며 모두들 즐거이 먹었다
오늘도 난 판신 하나로 네사람이 즐거워 하는 기쁨을 만들어 낸 요리사가 되었다
난 시니강도 만들수 있고 피낙벳도 만들수 있고 띠놀라도 만들수 있는데 내가 이것들을 다 만든다면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만들수 있고
깐띤을 하나 차린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 와서 즐거움을 맛볼까 하는 생각에
깐띤 ? 아니 레스토랑? 그리고 수입 ? 진실로 맛있을까?
하 하 하 하 …